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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스텔로 Apr 04. 2023

<드라이버>, 카체이싱 영화의 원조


<드라이버>, 카체이싱 영화의 원조



언젠가부터 카체이싱 장면은 드라이빙과 추격 자체의 재미보다 그것을 감싸는 화려한 스펙타클에 천착하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차량을 어떻게 따돌릴지에 대한 근본적인 설계보다 차량이 어디에, 어떻게 부딪쳐야 충돌 효과가 크게 나타날지 먼저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월터 힐의 <드라이버>는 카체이싱의 본질을 따르는 귀한 영화다. 후대에 끼친 영향도 상당한데,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는 사실상 <드라이버>의 리메이크와 다를 바 없고, 에드가 라이트의 <베이비 드라이버>도 그 자장 속에 있는 영화다. 실제로 에드가 라이트는 <베이비 드라이버>를 만든 뒤 <드라이버>에 존경을 표했다. 적어도 내게는 <드라이버>의 카체이싱 장면이 <블리트>, <프렌치 커넥션>, <매드 맥스>의 그것보다 더 황홀하게 느껴졌다.


<드라이버>를 보면 마치 할리우드로 넘어간 장 피에르 멜빌이 샘 페킨파와 협업하여 찍은 카체이싱 영화처럼 느껴진다(실제 월터 힐은 장 피에르 멜빌, 샘 페킨파를 존경했다. 영화에서 의문의 여자가 도박장을 털고 달아나는 드라이버의 얼굴을 보고도 보지 않았다고 경찰에게 진술하는 대목은 장 피에르 멜빌의 <고독>과 거의 똑같다). 특유의 고독감과 비정한 분위기. 침묵으로 말하고 여백으로 화면을 채우는 식의 구성. 월터 힐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 그 흔한 배경 음악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운전 솜씨와 엔진의 굉음, 타이어의 마찰음 등을 내세워 사실적인 카체이싱을 선보인다. 또한 이런 류의 영화에서 많이 끌어들이곤 하는, 여자와의 뒤틀린 성적 욕망이나 동료에 대한 동정 등의 사족 따위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세계는 오직 믿음과 배신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만 추동되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드라이버>는 일종의 현대식 서부극으로도 읽힌다(월터 힐은 본인의 영화들을 전부 서부 영화로 규정했다). <드라이버>는 프로페셔널한 주인공이 고독하게 돈을 좇으며 자기만의 무법 세계를 살아가는 도심 서부극이다. 여기서 자동차는 정통 서부극의 핵심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말과 권총, 카우보이 의복의 총체적 결합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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