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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스텔로 Aug 10. 2023

잿빛의 고향


잿빛의 고향



나는 유치원생 시절부터 구구단을 외우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체벌을 받아야 했다. 이후에도 영어 회화 비디오를 건성으로 시청한다며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영어 회화집의 독해를 틀릴 때마다 한 대씩 맞았다. 흐릿한 기억에 50대 정도를 맞았는데, 며칠 뒤 목욕탕에서 어떤 아저씨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어디서 다친 거냐고 물어보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그 가혹한 체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그냥 무섭기만 했다. 마음의 병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것이 사랑과 관심의 산물이 아니라 가부장적 폭력의 일환이며 다분히 일차원적인 감정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다. 말하자면 초등학생 때 아버지는 그냥 무서운 존재였을 뿐 삶에 그렇게 큰 장애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의 나는 지금과 달리 모험심과 호기심이 왕성해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고, 가보지 않은 곳을 탐험하거나 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해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심지어 허구한 날 아버지에게 맞고 맞던 일상은 자성과 통찰이랄 게 없는 그때의 나에게 외려 나보다 덩치가 큰 친구나 형들에게 재지 않고 덤빌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때는 정말이지 겁이 없었다. 세상 모든 일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서울 토박이인 내가 ‘고향’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다소 지엽적인 감이 있지만, 내게 초등학생 시절의 영등포구 대림동은 꿈속에서 초현실적 공간의 무대로 자주 재현될 만큼 애틋한 마음의 고향이다. 나는 그곳에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나왔고, 근처 빗물펌프장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웠으며, 체육공원에서 축구와 피구를 즐겼다. 또한, 피아노 학원에 다녔고, 태권도장에서 신체 능력을 유감없이 뽐내며 2단 심사에 합격했다. 방과 후나 하원 후에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놀이터에서 지옥 탈출, 도둑과 경찰 등의 놀이를 했고, 주변 상가 근처에서는 메이플 스토리 딱지와 요요, 탑블레이드 팽이 등을 가지고 놀았다. 초등학생들의 랜드마크인 문구점 앞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불량식품을 사 먹으며 오디션, 삼국전기, 메탈슬러그, 봄버맨 등의 게임을 즐겼다.


그러다 별안간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 서초구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형의 대학 진학을 위해 결정된 사안이었다. 서초구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해 그 치열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것이 대학 진학에 유리하리라 판단한 것이다. 선택권이 없던 나는 한 마디로 서초구로 끌려간 셈이었다. 친한 친구들과 짧은 작별 인사를 하고 어느 이삿짐 트럭에 앉아 지금 사는 집으로 향할 때의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내 삶은 초등학교 6학년 때를 전후로 완전히 분리되었다. 공교롭게도 곧 중학생이 될 나이였기에 교육열은 더욱 높아졌고, 자연스레 체벌의 빈도는 잦아졌으며 강도는 더욱 세졌다. 그런 일상이 몇 년간 이어지자 행복이란 단어는 나와 상관없는 어느 공상과학 영화의 유물인 듯 여겨졌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우연한 기회로 다시 대림동에 갈 기회가 생겼다. 아버지의 차를 타고 그곳으로 향할 때, 나는 과거의 풍경에 빠져 그때의 기분 좋은 기억 속을 유영할 심사로 벅차올랐다. 그러나 그곳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거리와 거리 사이는 좁디좁았고 건물은 허름했으며 길거리는 잿빛 카펫이 깔린 듯 음울했다. 그곳은 내가 알던 곳이 아니었다. 일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듯 마음의 고향이 내 육신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생경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럴 리가 없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지. 미디어와 책, 그리고 숱한 예술 작품을 통해 과거는 미화되는 거라고, 인간의 기억은 온전치 않을 뿐더러 쉽게 왜곡되는 거라고 배우긴 했지만, 그것을 실감하며 체화한 건 처음이었다. 나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내 삶에서 유일하게 행복이라는 걸 느꼈던 그때의 시공간이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간의 삶 자체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해졌다. 이 기이한 현상에 대해 숙고하다 보니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마음의 고향이 있다는 건 현재에서 도피할 수 있는 출구가 조금이나마 확보되어 있다는 걸 뜻한다. ‘그래도 그때를 생각하면 참 행복했지, 맞아,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어.’ 다만, 이러한 도피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현재를 불우하게 느끼는 것은 현재가 적어도 과거보다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은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 과거를 소환하여 추억에 잠기고 거기서 느껴지는 안온함과 다정함으로 현재를 잊으려 애쓴다. 그러나 과거의 영상이 반복 재생될 때 그 추억은 외려 현에 대한 과격한 불행으로 변환될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망 또한 어둡게 만든다. 말하자면 마음의 고향은 핑계다. 적어도 현재가 행복하면 고향이란 개념은 아스라한 추억, 기분 좋은 그리움 정도로 남는다. 거기에 사무치는 건 그만큼 현재가 불행하다는 방증이다.


과거가 그리 찬란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 현의 무거움은 덜어진다. 현의 어려움을 잊으려고 과거로 도피하는 일도 줄어든다. 그러면서 모든 초점이 현재로 모인다. 오직 현재만이 내게 적용되는 유일한 시제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런 연유로 나는 마음의 고향이 잿빛으로 물든 지금의 사태가 너무 만족스럽다. 설사 지금 불행하더라도 과거와 비교하며 더 초라해질 일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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