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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섀도우 Jan 14. 2021

Arrest, 첫 환자를 떠나보낸 날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너무 자책하지 않기를.

Wisdom. L



독립한 지 한 달, 토요일 아침 아홉 시 사십분.


 전날 말기 말기 암환자를 전원보내고 새로 받은, 원인불명 심정지로 심폐소생술 후 소생한 환자. 인공호흡기의 산소 FiO2는 100%였지만 모니터에 표시된 산소포화도는 35... 34...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노령에 심정지를 겪으며 장기부전이 왔는지 대퇴정맥으로 투석관(Hemocath)를 잡아 CRRT(지속적신대체요법)를 돌리고, 혹여나 혈압이 더 떨어질랴 혈액과 알부민을 걸고 Norpin(노르에피네프린)며 Vaso(바소프레신)며 Dobu(도부타민)며... 강심제나 말초수축제나 모두 최대 용량으로 달고 있었지만, 혈압은 점점 떨어지고 EKG의 녹색 리듬은 불길하게 춤추었다. 

 모니터의 알람 소리가 지속되고 주치의는 화면을 응시하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CPR칠게요."

 간호사 선배님들 포함,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환자에게 달라붙는다. 하나는 전화기를 들어 CPR 방송을 친다 - 코드블루, 응급센터 삼층 내과중환자실. 코드블루, 응급센터 삼층 내과중환자실.


 제세동기의 EKG lead를 붙이고 종이를 출력한다. - PEA(무맥성 전기 파동)인가? 맥박이 촉지되지 않는다.

 방송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온 인턴이 심장압박을 교대하고 침대위에 올라간다.

 "에피주세요." 

 "BGA 나가주세요."

 "CRRT 그만 돌릴까요?" "아뇨, 유지할게요."

 "보호자 불러주세요."

 "BGA 결과 나왔어요. 페하(pH) 칠 점 일이요."

 "NB(중탄산) 세 개 bolus로 주세요."

 나는 중탄산 바이알을 까다 앰플에 손을 베였지만 알콜로 살짝 닦아내고 장갑을 꼈다. 환자에게 달라붙은 의료진들 사이로 파고들어 정맥관에 중탄산을 투여한다.

 침상머리에서 다른 인턴 선생님이 올라와 손을 바꿔 심장압박을 계속한다. 모니터의 산소포화도는 삼십 퍼센트 선에서 내려앉고 제세동기의 EKG 리듬은 진동하고 있었다 - 그의 심장은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BGA 나가주세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보호자들이 도착했다. 곧이어 중환자실 담당 교수님이 도착하여 보호자들에게 설명한다.

 "삼 분 지났습니다." "에피 하나 더주세요."

 누군가 BGA 기계에서 결과지를 떼 온다.

 "우선 NB 두 개 더주세요." 주치의는 결과지를 힐끗 보며 말했다.

 "에피 들어갔어요." 유리아 쌤은 내가 잰 NB를 건네받아 bolus로 투여한다.

 산소포화도는 20%, 15%, 10%,

 EKG 리듬은 마지막 물결을 추고 있었다.

 "... O월 O일 열 시 삼십 오 분." 일자형 파형을 그은 제세동기의 EKG 결과지를 들고 주치의가 차분하게 말했다. "사망하셨습니다."



 잠시 애도를 위한 시간, 커튼이 드리워지고 보호자들의 슬픔이 터져나온다. 유족들 중 그나마 정신을 부여잡고 있는 분께 환자 주소와 장례 절차를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보호자들이 잠시 퇴실하고, 인턴 선생님이 나타나 그를 이승에 잠시 붙들어 두고 있던 라인들 - 중심정맥관과 동맥관, Hemocath 등을 제거한다. 

마지막으로 장의사 분이 나타나 먼 길을 떠난 그에게 하얀 천을 덮어드린다.


 그를 떠나보낸 빈 자리를 청소하며 - 슬픔과 두려움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다른 환자를 입원받기 위해 빨리 정리해야 겠다는 복잡한 생각이 교차하면서.

...첫 임종은 그렇게 불현듯 찾아왔다.





일 년여 동안 서랍장에 넣어 둔 글.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전문용어가 도배된, 위선적이고 현학적인 - 스노비즘(Snobbism) 같은 글이고,

그리고 남의 불행을 소재삼아 나를 유능한 사람처럼 포장하는 글을 쓰는건지 두렵다.


자신이 담당하던 환자가 돌연 세상을 떠났을 때의 그 황망함? 허탈감 같은 감정이 한참동안 있었지만 

기억은 서서히 잊혀진다고.

일 년여 만에 서랍장에서 열어본 이 글은. 지금은 조금 거리가 느껴진다.


신규 선생님 중에 6개월만에 그만둔 선생님이 있었다.

성실하고 똑똑한 신규 선생님이었는데 돌연 그만둔다고 해서 다들 아쉬운 마음에 조촐한 송별회를 열었다.

그는 중환자실에서 자신이 맡은 환자가 안좋아지는 게 너무 무서웠다고 울었다.

저런...

어디서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마는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너무 자책하지 않기를.


임상에서 환자를 떠나보낸 슬픈 경험이 있는 다른 간호사 선생님들께 작은 공감이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임상에 첫 발을 내딛는 신규 간호사 선생님들께.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너무 자책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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