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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섀도우 Feb 27. 2021

소리없는 아우성

성악가의 목소리를 빼앗아 간다는 것은

B.G.H.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성악가에게 병마가 덮쳤다. 루게릭병은 그의 몸을 서서히 마비시키고 옥죄기 시작했다.

등이 굽고 두 발로 걷기 힘들 정도로 증세가 심해지고 호흡근마저 마비되기 시작하자 그는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나마 증상이 호전되었을 때 그는 교회에서 무릎꿇고 하나님께 간증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듣지 못했는지 그의 숨통을 조였다.

오랫동안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자 호흡부전으로 응급실로 실려왔고, 기관내관을 삽관한 채 중환자실로 올라왔다.

당장은 숨쉬는 게 힘들고 호흡 교정을 해야 하니 인공호흡기 치료를 어느정도 지속하고, 서서히 인공호흡기를 떼는 연습(weaning)을 했다. 언제는 기관삽관을 빼고 인공호흡마스크(NIV)를 끼고 버텨보지만 동맥혈검사의 혈중 이산화탄소(pCO2) 농도가 차오르면 다시 기관삽관을 한다. 희망고문인지 모르겠지만 인공호흡기와의 질긴 악연 때문에 교수님들은 기관절개관(Tracheostomy)를 고려했다.


그는 음악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병마와의 고된 싸움에서 음악이 재활 의욕을 붙잡아 준다. 잠깐의 면회 시간, 그의 부인은 그가 건강했던 시절 슈베르트의 가곡을 부르던 영상을 틀어준다. 나는 가곡을 잘 모르지만 가브리엘 포레가 샹송의 창시자라고 말하자 그는 매우 기뻐했던 걸로 기억한다.




월요일을 낀 2 오프가 지나고 돌아오자 그는 이미 기관절개술을 하고 가정용 인공호흡기(Home-vent)로 위닝한 상태였다. 산소줄이 달린 목젖 아래 절개관을 닫을 때까지 그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오랜만에 나를 본 그는 보드판에 떨리는 손으로 구불구불 글씨를 쓴다.


[저 살아날 수 있지요?]

나는 숨쉬는 게 나아지면 하나 둘 씩 기계를 떼어낼 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는 울퉁불퉁하게 글씨를 써 내려가며 마임(Mime) 마냥 입모양을 만들었다.


[목에 있는 거, 계속 갖고 있나요?]

호흡근이 점점 마비되고 숨을 쉬기 힘들어지기에 기관절개관을 닫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 했지만 그는 초조했다. 소리없는 아우성에서 필사적인 절박함이 보였다.


...나는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성악가의 목소리를 뺏어가는 신을 믿지 못하겠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환자들을 보면 볼수록, 그리고 어느 때보다 편집증적인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의 시대에 살고있는 만큼, 표현의 자유보다 자가검열이 옥죈다.

글을 쓰기 너무 어려운 시대다.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쓰는 일 만큼 힘들고 무서운 일이 없다.

졸업식에서 선서를 할 때 '환자를 간호하면서 알게 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정에 비밀을 엄수함'을 서약한다.

'비밀'이란 광의하게 해석될수도, 엄격하게 해석될 수 있다. 관심종자인 나는 엄격하지 못한 편이다.


이런 글을 쓰는 건 남의 불행으로 내 인기를 얻으려는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어긋난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를 공개해도 될까?" 라는 고민일 때는 올리지 않는 것이 옳다. 두고두고 후회한다.


그럼에도 힘들게, 이렇게나마 부족한 글을 남기는 건 그분들에 대한 소중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병마와 힘겹게 싸우는 환자와 가족들의 강인한 투지가 있음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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