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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섀도우 Mar 12. 2021

학생간호사

더욱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아직은 매서운 찬바람이 부는 2월, 삭막한 병원에 그들이 나타났다.

저마다 개성있는 실습복에 마스크와 흰 가운을 걸친 학생 간호사들이 옹기종기 모여다닌다. 형형색색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학생들을 보노라면 론디니움 광역에 그렇게 간호대학이 많은 줄 모른다.

사실 정규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아닌, 2월, 빠르면 1월부터 실습생들이 나타나는 건 그만큼 간호대학이 많고 한 학급의 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힐링던의 모 대학은 한 학년이 300여명에 달한다. 출산률 저하로 학령인구가 줄어들어 정원 미달 소식이 들리는데 간호대학은 예외인가 보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 물어보니 모두 4학년 학생들이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비대면 실습을 했고 올해가 첫 현장 실습이라고 한다. 저런... 3학년 때 현장실습을 나가면 '아 간호사가 내 길이 아닌가보다...'하고 더 빨리 그만 둘 수 있었을텐데... (매몰비용이 2년이니까!)




돌이켜보면 실습만큼 재미없고 힘들었던 기억이 없다.

학생들은 임상으로 내던져진다. 커리큘럼 상 환자 사정이나 간호를 미처 배우지도 못한 채 실습을 돌고 5일만에 케이스스터디를 해서 금요일마다 교수님한테 탈탈 털리기 일쑤였다.


여성(간호학)이나 노인간호 실습을 채우기 위해 동네 여성병원, 시골 요양병원으로 가기도 한다. 론디니움의 지하철이 닿지 않는 근교까지 실습을 가야 한다면 차를 끌고다니는 동기, 언니 오빠들의 신세를 져야 할 때도 있다.


병동은 실습하러 온 학생들이 간호사보다 몇 배나, 종종 환자들보다 많았다. 의도치 않게 학생들은 움직이는 짐짝 취급이었다. 수선생님이 빈 방을 내주고 학생들을 넣어주면 그나마 잘 챙겨주는 축에 속했다. 하루종일 벌서듯 서있는 게 그렇게나 힘든지. 활력징후를 재거나 혈당을 재거나, 환자 이송 때 따라가는 작은 일이라도 생기면 쪼르르 달려가 하는 게 전부였던 것 같다.


실습을 나갔던 병원마다 간호사들은 너무 바쁘고 여유가 없었다. 선배들은 학생들을 지도하기는 커녕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기도 벅찼다. 서투른 신규 간호사는 학생들보고 따라오지 말라고 한다.

임상은 학생들이 보기에도 아슬아슬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학생들은 '태움'으로 알려진 직장내 폭력, 파벌싸움, 환자들의 성추행 같은 불편한 현실을 목도한다. 신규에게 일감을 몰아주고 뒷방에서 티타임을 즐기는 모습이나, 간호사들에게 큰소리로 역정을 내다 의사 앞에서 비굴해지는 보호자들의 추태, 수술방에서 화를 내고 메스를 집어던지는... 부끄러운 모습이 고스란히 학생들의 눈에 비친다.


실습이 끝나면 우리는 저마다 실습했던 병원과 파트에 평가를 내리고 정보를 공유했다. "저긴 절대로 가지 말이야지." 학생들의 눈은 무섭다.


간호관리학에서 배우는, 서비스 마케팅용어 중 하나인 내부고객이란 개념이 나오는데 학생들이야말로 객관적인, 훌륭한 내부고객이 아닐까?

학생들이 있어 더욱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세모꼴 뽀글머리 남학생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꼰대같지만, 학생들에게 미처 말해주지 못한 몇가지

- 사람을 소중히 대하고 사람을 돌보는 일이라는 보람을 갖고 일할 것.

- 소명의식을 갖고 항상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고민할 것.

- 항상 조금이라도 배우고 공부할 것. 고달퍼도 큰병원에서 배운 게 피가되고 살이된다.

- 태움과 부조리가 있으면 절대 죽지 말고 때려치고 나올 것. 나쁜 직장에 소중한 목숨 던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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