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막으로 규칙적인 경보음이 잔잔히 들려오고 나는 스르르 잠에서 깨어났다. 뱅글뱅글 돌았던 눈앞의 잔상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천근같은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리고 천천히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살펴본다. 흐리멍텅한 초점으로 보이는 세상은 온통 하얗게 보였다.
나는 몸을 일으키기 위해 허리에 힘을 주지만 끔찍할 정도로 기운이 없다. 대신 팔을 짚어 일어나려는 순간, 양 손이 묶여 있음을 깨달았다.
천장의 눈부신 하얀 조명 주위로 인간의 형상을 한 하얀 괴물들이 움직인다.
- 그렇다, 난 외계인들에게 납치당해 실험을 당하고 있다.
'도와주세요!' 그러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제야 나는 입에서 목까지 통하고 있는 이물감을 느꼈다.
숨은 계속 차올랐다. 목에 꽃힌 관은 파란색 흰색 두가닥의 관을 따라 시야 밖 어디론가 향한다. 외계인들은 내 들숨을 지배하고 있었다. 당황한 나머지 코를 벌름이지만 왼쪽 콧구멍에도 불쾌한 이물감이 느껴진다. 사지에 힘이 점점 돌아오면서 나는 모든 것을 쥐어뜯고 탈출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외계인들이 한눈을 판 사이, 나는 등을 최대한 구부려 억제된 손을 최대한 뻗어 코에 있는 줄을 낚아챘다. 외계인은 소리쳤다.
"엘튜브!!"
"환자분! 빼시면 안돼요!"
외계인들이 달라붙어 나를 힘으로 제압한다. 놔라 이것들아!
"님벡스 끈 지 얼마 안됐는데 바로 깨네."
"델리움 뜬 거 아니겠죠?"
"레미, 포폴 얼마죠?"
"레미는 영 점 일, 포폴 영 점 삼이요."
"포폴 영 점 육으로 올려주세요."
외계인들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암호 같은 의사소통을 했다.
"포터블 찍었어요?"
"네. 교수님"
"...렁 더 안 좋아졌는데...피에스비 걸테니까 열 시에 비지에이 돌려주세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오가고 한 외계인이 내 눈 앞으로 다가왔다. 투명한 플라스틱 판 너머로 마스크를 착용한 인간의 안면을 한, 외계인의 인자한 눈웃음이 보인다.
"환자분, OOO님 맞으세요??"
OOO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가.
모르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분 폐가 더 안 좋아졌어요. 산소포화도 수치도 안좋고. 인공호흡기 떼려면 힘들 것 같은데 해볼거에요. 본인이 심호흡 잘 해야돼요. 알겠죠?"
그는 다른 외계인에게 말한다.
"석션 잘 해주시고요, 환자 셀프 없으면 레미 영 점 영오로 낮춰주시고, 주치의한테 말 할 테니깐 비지에이 나쁘면 컨트롤로 돌려주세요."
"네. "
"오 번 환자 에크모 준비됐나요?"
"심교수님이 응급오피중이라 조금 늦을 것 같아요."
'교수님' 이 멀어지고 남은 외계인이 가까이 다가와 말한다.
"환자분 폐에 가래 좀 뺄 테니까 힘들어요!"
그 순간 내 폐를 강제로 팽창시키던 힘이 사라지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질식해 죽을 것 같다는 공포가 엄습한다. 외계인은 목으로 연결된 관으로 무언가를 쑤셔넣더니 빨아댔고 그 고통에 나는 자지러지는 기침을 토해냈다. "조금만 참으세요!" 기계의 불길한 경보음은 내 폐와 연결되고 이내 가라앉았다.
"환자분, 한시간 뒤에 다시 들어올게요."
그들은 내 곁을 떠났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던 무기력함 대신 몽롱함이 점점 엄습한다. 포폴 영 점 삼에서 영 점 육? 나는 그 의미를 곱씹어본다. 잠이 몰려오는 찰나에 머리속을 지나가는 파편화된 기억들 -
'인공호흡기 치료 동의서', '신체보호대 동의서'를 설명하던 주치의,
국가지정격리병상으로 나를 인도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들을,
마스크를 벗은 채 손잡고 노래를 부르던 순간을...
2020년 7월 1일 기준으로 코로나19를 100% 치료하는 치료제는 없습니다. (덱사메타손 주사와 7월 1일자로 도입된 렘데시비르 정도가 부분적이나마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결국 코로나19 치료는 대증 치료입니다. 폐가 안 좋아지면서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니 폐를 돕기 위해 인공호흡기 치료를 하거나, 아예 폐를 쉬게 하기위해 에크모까지 시술합니다.
인공호흡기 치료를 위해선 Endotracheal tube(E-tube)로 기관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와 연결합니다. 인공호흡기가 환자의 호흡을 대신하기 때문에 환자가 기계의 호흡에 맞춰 숨쉬기 위해서(이를 Ventilator fighting이라 합니다) 인공호흡기/에크모 치료 동안에는 진정 약물을 사용합니다. 상식적으로 맨 정신으로 입에서부터 폐까지 관이 꽃히는데 환자 입장에서는 괴로운 일입니다.
환자에게 진정약물을 너무 고용량을 쓰면 안되기도 하고, 격리병상 특성 상 의료진이 재빠르게 환자에게 다가갈 수 없기에 부득이하게 신체보호대 동의서를 받고 양 손에 억제대를 적용하기도 합니다. 보호자 분들에겐 안타까울 수 있지만 기관삽관이나 중심정맥관을 환자가 약기운에 무의식적으로 쥐어뜯으면 재삽관도 문제지만 기관삽관이 빠지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양쪽 다 마스크를 쓸 경우 전염률이 2% 미만, 바이러스 보균자가 마스크를 쓰면 30%까지 전염률이 낮아진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접촉하는 공간이라면 꼭 마스크를 쓰시기 바랍니다.
코로나 병동에서 일하는 수많은 의료진들의 헌신에 감사를, 그리고 격리병상에 사랑하는 이를 맡긴 가족들께 심심한 위로와 쾌차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