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섀도우 Aug 03. 2019

해제 : 산업사회와 그 미래

시어도어 카진스키의 네오 러다이즘 선언

유나바머(Unabomber)로 알려진 시어도어(테어도어) 존 카진스키의 네오 러다이트 선언서.


조숙한 천재였지만 대인관계에 서툴렀던 그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수학과 조교수가 되지만 국가의 비밀 사회 실험으로 지목받아 정신적 학대를 받았고, 2년 만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자연으로 은둔한다. 몬태나의 자연인으로 살아가던 그는 거대 기업들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연경관을 파괴하자 그는 테러리스트 유나바머로 각성한다. 그 후로 20여 년 간 사제 폭발물이 대학과 공항 등으로 수십여 건 배달됐고 수많은 인명을 살상했다. 유나바머는 언론사에 자신의 사상을 정리한 선언문 '산업사회와 그 미래'를 게시하면 테러를 중단하겠다고 제안했고 수십 년 간의 수사의 난항을 겪었던 FBI와 정부기관의 항복으로 그의 선언문이 기고된다. 그러나 그의 특유의 문체를 알아본 그의 친동생 데이비드가 제보하면서 그는 체포된다.


 카진스키는 이 3만 5천여 자의 선언문에서 좌파의 특성, '권력 과정'이라는 인간의 욕구 발현, 기술과 인공지능의 발전이 사회를 더욱 집약하고 구속함을 역설했다. 그 해결 방안으로 탈-기술주의(네오 러다이즘)를 설파했다.



좌파주의(Leftism)에 대한 비판


 카진스키는 글의 서두에서 현대 좌파(신좌파)와 좌파주의(Leftism)를 언급하면서 문제의식을 환기했다 [6]. 그는 현대 좌파주의의 모순과 광기를 열등감과 지나친 사회화로 정의했다. 현대 좌파주의는 소수 집단에 대한 권리 운동에서의 병적인 과민 반응과 열등감을 지적한다 [11].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을 추구하는  좌파는 '약함(여성, 유색인종)', '패배(인디언)', '역겨움(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으로 표현 가능한 소수 집단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동일시하나 정작 그 '소수 집단'을 다수에 비해 열등하다고 간주한다는 점에서 좌파의 '선민의식'을 꼬집었다 [13]. 그는 현대 좌파의 열등감이 강하고 성공하고 좋은 것들에 대한 증오와 반발로 표출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과 서구가 강하고 성공했기 때문에 현대 좌파가 미국과 서방 국가에서 유래된 세계의 질서를 부정한다고 생각했다 [15].


 카진스키의 좌파에 대한 혐오감은 선언문 말미에서 좌파주의와 테크놀로지 간의 연관점을 언급하면서 다시 한번 드러난다. 좌파는 집단주의적, 전체주의적이고 '계획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이를 위해 테크놀로지와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고 비판했다 [214]. 그는 볼셰비키의 예를 들어, 러시아 혁명 당시 볼셰비키는 이름과 달리 비주로 세력이었으며 차르 치하의 검열과 비밀경찰에 대해 격렬히 저항하고 소수 민족의 자율성을 외쳤지만, 혁명 이후 정권을 잡은 볼셰비키는 더욱 철저한 검열과 정적 숙청, NKVD와 KGB로 이어지는 잔혹한 비밀경찰 제도를 승계했다 [216]. 또한 좌파가 권력을 잡으면 독재적으로 변한다고 주장했는데, 프랑스 혁명기의 로베스피에르, 볼셰비키, 스페인 내전의 공산주의자, 쿠바의 카스트로 일당 등을 예시로 언급했다 [217]. 좌파 주의자들의 이중적인 태도 또한 비판했는데,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비판과 대조되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침묵과 변명을 볼 수 있다 [225].



인간의 권력 과정과 실패


 카진스키는 인간의 욕구 달성을 '권력 과정'이라는 목표, 노력, 목표 달성, 자율성이라는 네 가지로 설명했다 [33]. (권력 과정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진다면 메슬로우의 욕구 이론, 혹은 '목표 성취'로 치환하자). 모든 사람은 권력 과정을 통해 성취하며, 권력자와 갑부와 같은 무산계급 - 물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은 부정한 것으로 타락하기 쉬움을 역설했다 [34]. 가까운 사례로는 연예인들의 원정도박 파문, 19년도 초부터 한국 사회를 뒤집었던 버닝선 게이트의 추한 모습을 예시로, 그리고 수많은 독재 권력자와 기업가, 정치가들이 비도덕적으로 부패한 모습이 좋은 예시다.


 또한 그는 인간이 권력 과정이 실패했을 때 나타나는 반응에 대한 현대사회의 야만적인 대응을 지적했다 [146]. 권력 과정의 실패로 불안하고 우울증을 겪는 사람에게 사회는 항우울제를 처방하거나 [145], TV와 영화 등 오락 프로그램, 섹스, 스포츠와 같은 전통적인 '3S 산업', (카진스키의 시대에는 없었던) SNS와 (모바일) 게임, 인터넷 방송 등이 현대인들의 불안심리에서 도피처이자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대리만족의 수단으로 제공된다 [147]. 사회가 제공하는 이러한 오락거리들을 권력 과정에 실패한 인간 개개인을 보상한다고 볼 수 있다.



교육과 언론


 스스로가 수학과 조교수였던 카진스키는 시스템 유지를 위한 획일화된 교육 또한 비판했다. 그는 사회 체제는 체제의 유지를 위하여 과학자와 수학자와 엔지니어를 요구하며 어린이들에게 수학과 과학기술과 같은 '쓸모없는' 획일화된 교육을 강요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어린이들이 바깥에서 뛰어노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임을 설파했다 [115]. 또한 그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피라미드화 된 교육이 사회에 규격화된 일꾼을 훈련하고 배출하며 사람을 통제한다고 지적했다 [148]. 체제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체제의 욕구에 맞춰 수정하며, 테크놀로지 사회에서 사람들은 사춘기 청소년들이 지긋지긋한 과목을 억지로 공부하는 게 비인간적인 상황인지 의문을 품지 않으며 숙련공이 기술 진보에 떠밀려 직업을 잃고 '재훈련'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119].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실패자'들(사회보장 연명자, 반항아, 갱, 에코 파시즘 등)이 사회의 혼란을 야기함을 암시한다 [149]. 한국의 고등학교와 대학들이 직업학 교화되고 젊은이들이 공무원과 대기업 채용과 같은 취업경쟁으로 내몰리며, 이러한 경쟁에 적응하지 못하고 밀려난 젊은이들은 N포주의 와 같은 절망, 일베나 워마드 같은 극단주의로의 일탈, 대학원생 폭발물 테러와 같은 '외로운 늑대'의 반사회적 행동 등으로 분출된다.


 카진스키는 권력화 된 언론, 매스미디어의 부패 또한 비판했다. 소위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개개인이 소책자나 인쇄물을 출판해봤자 매스 미디어의 쏟아지는 홍수 같은 정보로 뒤덮인다 [98]. 물론 21세기 들어 기업형 언론의 신뢰도 하락과 카진스키의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SNS의 발전으로 개인방송과 독립출판이 활성화되었다. 그럼에도 중국과 같은 국가적인 언론 통제와 특정 유튜브 셀럽들에 의한 편파 된 정보의 전파, SNS 특유의 휘발성과 선동 등의 문제는 변하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언론의 파워가 기존의 언론-매스미디어 사업체에서 셀럽, 개인-소규모 사업자로 분배됐을 뿐이다. TV조선이나 홍카 콜라와 정규재 TV 등 편향되고 왜곡된 시야로 가짜 뉴스를 선동하는 개인 미디어의 예시는 많다.



조직 의존형 테크놀로지 사회


 카진스키는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결과적으로는 인류의 자유를 서서히 침탈한다고 주장했다 [125]. 자동차의 발명 초기, 자유롭게 걸어 다니던 사람들은 자동차를 통해 더 먼 거리를 자유롭고 빠르게 여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 자동차의 보급으로 교통 법규와 면허증과 같은 제약이 생길 뿐만 아니라 도시의 발전과 맞물려 직장과 시장, 휴식시설들이 자동차에 의존하도록 변했고,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으로 사람을 수송하게 된다 [127]. 현대 사회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인류는 웹 상에서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는 순기능을 누릴 수 있지만, 반면에 기존의 물리적 방식으론 불가능했던 고도화된 전산화와 중앙집권화로 인해  초국가적인 기업들이 경제적으로 중소 상권을 파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의 이마트, 코스트코 같은 대형 마켓과 쿠팡, 옥션과 같은 전자상거래가 기존의 영세 소매점과 전통시장을 '저렴함'으로 압도하는 것을 보라. 인공지능의 발달로 자율주행 차량이 등장하면서 택시와 대리운전기사들은 직장을 잃을 것이다.


 그는 선언문 말미에서 산업사회를 파괴해야 함을 주장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기아문제와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고 건강한 미래를 만든다던 기술 숭배자들의 프로파간다를 산업혁명 이후로 이백여 년 간 인류의 삶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었다고 반박했다 [170]. 그는 테크놀로지 사회의 다음 단계로 유전자 공학과 인공지능의 발명을 예시로 들었다. 인공지능이 발명된다면 인류의 주도권이 기계로 넘어가서 기계에 종속적으로 변하거나 [173] 기계의 통제권을 극소수 엘리트가 독점하는 통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174].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류의 노동이 불필요해지면서 낙오된 인류를 말살하거나, 프로파간다나 심리적, 생물학적 기술을 활용해 인구를 인위적으로 줄이거나 엘리트들이 목자가 되어 그들을 가축으로 기를 것이라고(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분석했다. 설령 인공지능이 발명되지 못하더라고 기계의 접목은 심화되고 업무는 세분화되고 파편화되며 끊임없는 경쟁을 부추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175]. 마치 현대의 신자유주의 이후의 무한경쟁 체제와 같이 말이다.


 그는 이러한 '조직 의존형 테크놀로지' 사회의 지속이 향후 수십 년 간 경제 문제와 환경문제, 인간의 심리적 문제(소외, 반항, 적대감 등 심리적 장애)에 직면할 것이며, 이것이 체제를 무너트리는 원동력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34]. 카진스키는 프랑스와 러시아의 혁명의 구체제 파괴를 예시로 들며 현대 산업사회를 파괴하고 [182] 이상향으로 자연으로 회귀를 피력했다 [183]. 산업사회의 붕괴의 충격은 크겠지만 더 늦기 전에 현재의 조직 의존형 테크놀로지를 붕괴시키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인류의 재앙을 줄이는 일임을 역설했다 [167].





 카진스키는 급진적인 네오 러다이즘을 폭탄테러로 표출했다. 그의 기술에 대한 혐오감과 탈기술주의에 대해 공감할 수 있지만 그의 테러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테러 행각으로 인해 환기된 3만 5천 자에 달하는 장문의 선언문은 공개 이후로 많은 사람들에게 시사점을 주었다.


 금세기 현대 사회에서의 기술의 발전은 카진스키가 예언한 것처럼 매우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90년대 도스 컴퓨터의 성능보다 더 작고 좋은 성능의 스마트폰을 한 손에 쥐고 있다. 테슬라모터스의 오토파일럿 기능, 시리와 구글 어시스턴트의 음성인식 기술, 빅데이터 수집,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와 채굴 붐, 블록체인 기술 등. 현대인들은 이미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기술의 범주에서 아득히 벗어난 첨단기술의 파생 기술을 누리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기술 발전에 대한 인류의 공포는 수많은 테크노-디스토피아 미디어를 통해 표출된다. 카진스키의 급진적인 네오-러다이즘은 이러한 통제 불가능한 기술에 대한 공포감에서 기인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권력 과정(인간의 목표 성취)에 대한 카진스키의 통찰력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메슬로우의 5단계 욕구 계층 이론을 떠올려보자. 인간이 욕구 달성에 실패하게 되면 최상위의 자아실현 욕구에서 존경의 욕구, 사회적 욕구, 안전의 욕구, 생리의 욕구 순으로 충족 조건이 떨어지는데, 현대인들은 사회적 욕구의 결핍에 대한 보상심리로 위에서 언급한 연예인(가수), 스포츠로 대표되는 대중문화(Popular Culture)를 통해 동질감을 느끼려고 시도한다. 특히 한국과 같이 타인에 대한 시선과 소속감에 강박적인 사회에서는 남과 다르다는 사회적인 고립에 대한 공포감이 강하며 (오타쿠, 컬트, 인터넷 밈 등의) 서브컬처의 이미지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때로는 혐오감을 표출한다. 메인스트림 대중문화를 누리는 자들의 서브컬처에 대한 '선민의식'은 소수 박해를 통해 일종의 우월의식과 심리적 안정감을 얻으려는 보상 심리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은 안전의 욕구에서의 박탈감이 유독 심한데, 극심한 빈부격차와 97년 IMF 이후의 구조조정과 비정규직과 같은 고용불안, 부동산 투기로 인한 터무니없는 집값 등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상당한 압박을 받는다. 사회 구성원들은 사회 구조적인 병폐를 개인의 능력 - '노오력'의 문제로 치부한다. 생존의 욕구에서 박탈된 젊은이들은 딩크와 비혼 주의, N포 세대 등으로 자기 자신을 폄하하고 자포자기한다. 혹은 그 박탈과 좌절의 분노가 일베와 워마드와 같은 익명성의 극단주의 집단에서 희생양을 만들어 제물로 삼는다 - 마치 유럽의 마녀사냥과 드레퓌스 사건과 같은 반유대주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배후 중상설과 나치 집권기 유대인, 집시들에 대한 낙인, 현대의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범죄와 같이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민족주의의 대두와 이민자와 LGBT와 같은 소수에 대한 배척이 심화되는 원인 중 하나로 카진스키가 언급한 권력 과정의 실패가 집단주의와 같은 부정한 방법으로 투영됨을 시사한다.


 한편, 카진스키의 선언문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좌파주의에 대한 불신과 공포다. 그는 선언문의 서두와 말미 상당 부분에 좌파주의에 대해 비판했다. 좌파주의의 가학성과 열등감, 모든 불평등에 대한 강박적인 교정 심리, 좌파주의가 권력을 탐닉했을 때의 부패와 테크놀로지와의 결탁에 대해 그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논리적인 비약과 허점 또한 존재하며 그 스스로도 좌파 중의 '현대 좌파(신좌파)'에 한정하고 좌파의 스펙트럼이 다양함을 인정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불거진 소위 SJW(Social Justice Warrior, 프로 불편러), 신좌파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ctness)을 맹신하는 극단주의, 선민의식과 무관용의 배척은 건전한 사회 발전을 저해하며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대표적으로 래디컬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에서 드러난 이분법적 논리와 배척 성을 생각해보자. 여성 우월주의와 남성 혐오의 스텐스를 취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이 남녀평등이라는 온건 페미니즘 운동마저 배척하는 모습을 보인다. (본문의 필자 주석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이 사회, 경제적으로 차별을 받는 부분이 있지만, 그 차별을 해소하고 평등함을 위해 노력하는 선에서가 아닌, 역차별과 상대방의 배척으로 역전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브런치로 옮겨 수십 번 첨삭을 해도 다듬어지지 않은 모난 돌처럼 느껴집니다.

다분히 공격적이고 부족한 글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https://blog.naver.com/shadowstar_/221577141239





매거진의 이전글 해제 : 바이마르공화국의 해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