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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섀도우 Jul 26. 2019

시시포스 신화

세 번의 취업 낙방. 그리고 시시포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극적인 이야기를 뽑으라면 '오이디푸스'나 '오디세이아'같은 극적인 이야기가 많지만 필자는 '시시포스'의 신화를 떠올린다. 시시포스는 제우스의 불륜을 폭로하고 자신의 목숨을 취하 온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감금했으며, 결국 죽어서 하데스를 만나 '부인에게 자신장례를 치르도록 말하고 오겠다'며 뻔뻔하게 부활하고 평생을 벙어리로 살았다. 그는 항상 운명을 거슬러 신에 저항했고, 이를 괘씸하게 여긴 신들은 지옥에 떨어진 시시포스를 높은 산의 정상에 돌덩어리를 굴려 올려놓도록 저주한다. 산의 꼭대기는 편평하지 않아서 애써 굴려온 돌은 정상에 걸터앉지 못하고 반대편으로 굴러 떨어지는데, 시시포스는 다시 내려가서 돌을 밀어 올린다.


 그리스 신화는 서양의 인문학과 철학, 문화예술 등의 분야에서 그리스도교와 함께 막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고대 그리스 당대에도 신화뿐만 아니라 문학적, 철학적 사조가 나타났으며, 중세의 침체기를 깬 르네상스 이후에 화려하게 부활한다. 종교에 억압되었던 인간의 본성이 터져 나오면서 수많은 예술적 시조와 철학적 사유가 터져 나왔고, 서양의 근대를 이끌었다. 이때, 시시포스는 신들을 이용하고 기만하는 사기꾼에서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며 이룰 수 없는 목표에 도전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재평가받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가? ​이러한 사상적 고뇌는 철학적인 사색으로 이어져 내려왔지만 어느 누구도 확답을 내리지 못했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에서 촉발된 서양 철학의 사조는 중세의 암흑기에 종교 교리의 절대자적 신에 대한 찬미로 우상화되었지만, 르네상스 이후에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로 부활하였다. 근대의 수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이라는 주제에 대해 심오하게 사색하고 기록했고, 후대에 전수되어 지금까지 전해져 올 수 있었다. 인간 본질에 대한 모든 사색과 탐구는 시시포스가 뾰족한 산봉우리에 돌을 올려놓으려는 것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노력이 헛되다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도전으로 우리는 다양한 사고와 가치관을 얻게 되었다. 자유와 민주주의, 보편적인 인류애, 평등, 평화와 같은 들 말이다. ​이러한 긍정적 가치관들이 이루어 세계를 흔히 '유토피아'라고 칭한다. 유토피아는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의 세계이자 우리가 끊임없이 추구하고자 하는 보편적인 행복과 같다.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낙원이라는 개념이 바로 이루어질 수 없는 절대적 평화, 안정, 행복에 대한 환상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우리의 현실은 이상향과 동떨어져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인문학이나 철학을 공부하면서 절망감에 부딪히곤 한다. 책을 읽을수록 공부할수록 스스로가 하찮고 먼지처럼 허무했다. 한참을 방황하고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문득 떠오른 것이 바로 이 시시포스 신화였다. 영원히 돌을 굴리는 잔혹한 운명. 끊임없이 도전하는 비극의 굴레에서 오히려 나는 위안을 얻고 그럴 때마다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




  년 전, 간호장교로 복무하고 전역했더니 모교 대학병원은 올해 졸업생만 뽑았다. 간호장교 군 복무는 '경력직'이란다. 병사로 군대를 갔다 온 동기들은 멋지게 합격했다. 다음 해를 기약하며 작은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절치부심하고 작년 신규 간호사 블라인드 채용에 지원해서 시험까지 당당히 합격했다. 그러나 면접을 앞둔 며칠 전, 인사과로부터 '경력자'는 뽑지 않는다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고 면접 기회를 박탈당했다.

 올해 경력직 채용 공고가 뜨면서 다시 도전했지만 종합병원 경력이 없다면서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경력직 티오 정족수 백 한 명의 반도 못 뽑은 시험 공고문을 보면서 세 번째 낙방한 자신과 시스템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침울해진다.


 문득 옛날 글을 뒤적이다 과거의 시시스 사랑을 발굴해 냈다. 부조리한 기암절벽에 돌을 굴려 올리는 시시프스의 모습에서 병상련을 느며,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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