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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섀도우 Oct 28. 2021

죽은 신들의 사회(2)

떠나야 할 자를 고통스럽게 잡지 않기를

http://www.nibp.kr/xe/news2/145554


Grandma



"의료진 중 한 사람으로서 더이상 치료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영(Young)교수의 말에 가족들은 탄식을 삼킨다. 

"일주일 전에 의료진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고 환자분 의식은 있는데 폐가 좋아지지 않아서 면역억제제도 써보았지만. 환자분의 폐는 좋아질 기미가 없습니다. 저희가 진정 약물을 쓰고 있음에도 환자분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고 온 몸이 붓고, 장으로 가는 혈류가 줄어서 혈변을 보시기 시작하면서 욕창도 심해지고 아프고. 매일매일 수혈을 하는데 혈압 유지가 안 됩니다."


 영 교수는 또박또박 냉정하게 환자의 상태를 알려준다. 환자가 코로나19로 격리중이었기에 지금껏 전화통화로 큰따님에게 설명해왔지만 이렇게 오프라인으로 - 가족들이 직접 교수님과 대면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호흡기내과 영 교수는 의료진으로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하고 있었다. 은퇴를 앞둔 60대 노구의 감염내과 교수는 복잡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보호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나를 포함한 간호사들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숨죽여 영 교수의 말을 듣는다.


 "한달 넘게 보호자분들께서 정서적으로 환자분 지지도 잘 해주셔서 저희도 감사합니다만. 이제는 보호자들께서 상의를 해보시고 연명의료를 중단하실지 여부를 결정해주시기 바랍니다."

 평소에도 냉철한 그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기계와 같이 차분한 모습이었다.

 "결정하게 되면 저는 모르핀과 미다졸람 같은 진정제를 써서 환자분이 아프지 않고 편안히 주무실 수 있도록 해드릴 겁니다. 환자분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달고있는 게 에크모라는 - 체외로 피를 빼서 산소화를 해 주는 기계가 있고, 입으로 꽂은 관으로 폐를 숨쉬게 하는 기계환기가 있고, 혈압을 올리는 승압제를 쓰고 있는데. 결정하시면 저는 에크모를 먼저 줄일 겁니다."


 무서운 정적이 잠시 흐르고 남편이 입을 열었다.

 "...그래유... 그렇다면 보내야겠쥬." 

 

 그러나 신실한 믿음을 가진 자녀들은 환자분의 임종을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자녀들이 우유부단하게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해 시간을 까먹는 동안, 우리는 2시간마다 들어가 기관지에 말라붙은 분홍빛 가래를 빼내고 선홍빛 혈변을 닦아내고 회음부 욕창부위를 소독하고, 환자는 고통스럽게 찡그리고 움츠러들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환자는 의미없는 고식적인(palliative) 현상 유지에 고통받을 뿐. 

. 하루 두 번 보호자들과 이뤄지는 영상통화가 늦는다고 불평하면서 정작 고통에 몸부림치는 환자를 두고 스마트폰 너머 보며 기도를 한다. 

 그러나 당신들의 신은 환자를 부르고 있다. 환자와 가족들에게 이미 한 달이 넘은 시간이 주어졌고 의료진들은 최선을 다했으며, 보호자들은 최선의 지지를 해 주었다. 

그리고 떠나야 할 때는 떠나야 한다. 




  아버지의 묘사를 빌어, 나의 할머니는 큰 체격에 뚱뚱했고 고혈압이 있었는데 내가 태어났을 즈음 풍(뇌졸중)을 맞아 한쪽 편마비가 와서 드러누웠다고 한다. 어머니는 지독하게도 삼 년 가까이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들었다. 지금에야 웃으며 말하지만 똥기저귀가 그리도 고역이였다고... 그건 지금 간호사 일을 하는 나도 마찬가지지만. 

 할머니는 불편한 한 쪽으로 그렇게 나를 어루만지고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다 내가 세 살 즈음 두번째로 풍을 맞아 -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입실한 것으로 보아 지주막하 출혈(SAH)이었는지 - 예후가 안좋았다고 한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온 아버지는 물론이고, 병든 시어머니를 삼 년 가까이 수발한 어머니도 선뜻 할머니의 생사를 결정하지 못했다. 

 젊은 부부가 결정하지 못하고 시름하고 있을 때, 이모할머니가 말했다고 한다.

 "갈 사람은 가고 살 사람은 살아야지."




 온가족이 모인 토요일, 연명의료중단을 위해 가족들이 모였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진정 약물과 진통제가 투여되고, 영 교수가 에크모의 세팅값을 줄였을 것이다.

이 시간을 위해, 환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가족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주말'을 위해 며칠을 더 고통스럽게 살아만 있도록 치료를 유지한 건 지 모르겠다.

 가족들의 아리송한 결단에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감정이 메말라 버린 괴물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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