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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섀도우 Oct 11. 2021

죽은 신들의 사회

신앙에 대한 존중

Song. G.S.


 일흔의 여인은 기계환기와 ECMO를 적용한 지 열흘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같이 확진된 그의 셋째 딸은 회복하여 퇴원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어머니는 우리 의료진들의 손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열 시 바이탈을 재고 주사약을 주고 있던 도중, 호흡기내과 영(Young)교수가 들어온다.

 "멘탈(의식은)은 어때요?"

 "어제 sedation(진정약물) 다 끄고 질문에 끄덕거리고 - obey 다됐다고 하네요."

 "지금 얼마 들어가죠?"

 "레미펜타닐 0.15, 포폴(propofol) 0.6이요."

 "포폴 0.6이죠? 0.3으로 줄입시다. 컬쳐(균배양검사)에서 klebsiella pneumoniae(폐렴막대균)가 나왔으니깐 메로페넴 양을 늘리던가 조절할게요. 빨리 주면 ECMO clot(혈전) 생길 수 있으니깐 세네시간 동안 천천히 주고. 덱사(dexametason)도 끊고. 오늘 아이오(I/O, 섭취배설량)는 net-zero(0)로 봅시다."

 영 교수가 먼저 탈의하고 나와 큰 따님께 전화로 환자가 패혈증으로 인해 상태가 안좋을 수 있음을 설명한다.

나는 물품 구매와 동의서 작성 설명을 위해 다시 전화를 걸었고 수화기 너머 따님의 목소리가 유독 떨렸다. "혹시 면회를 할 수 있을까요?" 나는 교수님들과 상의하고 알려주겠다고 했다.


 오후 한시 반, 비강영양을 위해 방에 들어왔을 때 풀려있던 그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걸어본다.

 "환자분, 제 목소리 들려요?"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지 곳곳에 동맥관과 정맥관에 흉관, 굵은 ECMO관, 목구멍을 통해 성대와 기도를 누르는 기관내관... 모든게 불편할 것이다.

 "이거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

 내가 기관내관을 살짝 잡고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전 우연히 열어 보았던 서랍에서 묵주를 보았기에 의식이 어느정도 돌아온 그에게 말을 걸었다.

 "환자분, 성당 다니세요?"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할머니 지금 폐가 너무 안좋은데 목덜미에 있는 에크모 관 때 문에 살아계신거에요. 다 끝나고 묵주 채워드릴 테니까 입에 있는 거 때문에 힘들텐데 참으셔야 해요."

 두터운 라텍스 장갑위에 비닐장갑을 끼고 기관내관으로 객담배출(suction)용 PVC관을 꽂아 가래를 빼낸다. ECMO 혈전이 생기지 않기 위해 오랬동안 헤파린을 써서 그런지 폐에서 옅은 분홍빛 가래가 쏟아져 나온다.

 "할머니 폐가 완전 물통이에요 물통!" 

 무자비하게 그의 기관지를 들쑤시는 내 손길이 야속하겠지만, 살아나야지.

 뒷정리를 하고 꽁꽁싸맨 신체보호대 위에 조심스레 묵주를 채워드린다.


그는 무슨 원죄를 지었기에 끔찍한 역병에 걸려 코로나병동으로, 기관삽관을 하고 기계환기와 ECMO를 달게 하고, 흉관을 꽂아 폐에 찬 피를 뽑아내고, 기관절개관으로 목에 구멍을 뚫고, 기도를 통해 피를 토해내도록 고통스럽게 하는 걸까. 

그의 정맥관으로 흐르는 진정 약물들이 그를 덜 힘들게 하길 바랄 뿐.




 하루짜리 짧은 오프가 끝나고 나이트 근무. 격리실에 들어오니 상두대에 귀여운 시럽병에 담긴 무언가가 놓여있다. 인계받은 내용은 이랬다. "보호자분이 성수를 주시더니 환자 입에 넣어달라고 해서 감염 위험성 때문에 안된다고 설명했거든요. 그랬더니 그러면 근처 테이블 위에라도 놓아 달라고..."


 병원 내 가톨릭 교구가 철수해서 신부님이 계시지 않았기에 성당의 신부님을 모셔올 수도 없는 노릇. 성수는 병마와 싸우는 그의 곁에 온전히 놓여 있었다.

 이런 건 못 참지.

 무신론자인 내가 성유물을 만지는 게 옳을 지 모르겠지만, 손조차 잡을 수 없는 격리실에 아픈 환자를 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의 바람을 들어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입에 기관내관이 꽃혀 있는데 성수 한 모금 입으로 축인다고 폐로 넘어가진 않으니. 


 "할머니, 제가 교리 공부만 하고 세례를 받지 않아서 그렇지만. 어떻게든 해볼게요."

 나는 환자의 기도와 입의 가래를 빼내 깨끗이 하고 병을 집어들었다.

 "하느님 아버지. 환자가 병마와 싸워 이겨내길 바라고 고통스럽지 않길 바라며. 환자가 낫기를 기도하는 가족들 모두를 생각해서라도, 의료진들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환자가 나아지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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