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앱 제시단어 : 트레이너
[제단글 : '제시단어로 글쓰기'의 준말. 제시 단어를 앱(RWG)을 통해서 받으면 그 단어를 주제 또는 소재로 하여 글을 쓰는 것.]
- 앱 제시단어 : 트레이너
- 그림 : chatGPT 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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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살이 잘 찌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와이프가 보기엔 적어도 나의 경우엔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정신승리에 가깝다는 주의다.
"오빤 많이 먹고, 먹는 걸 참 좋아하는 사람이야."
솔직히 할 말 없다. 먹는 것 자체는 즐거운 게 맞으니까. 게다가, 중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운동을 좋아하던 나는 운동한 만큼 많이 먹기도 했었으니, 먹는 양도 상당했다.
그나마, 그때는 운동량이 많았으니 어느 정도 몸이 유지가 되었지만,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몸무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지금은 몸이 좋았을 때보다 15kg 정도는 늘어나 버렸으니, 거울을 보는 나 자신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운동을 하고 식이요법까지 병행하면서 다이어트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고는 있는데, 나이가 들면서 생긴 어깨나 발등 부상 같은 것들 때문에 생각보다 몸을 움직이는게 쉽지 않다. 그래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나의 이런 살이 잘 찌는 체질(다른 말로 먹성)은 어릴 때에도 여전했던 것 같다. 열심히 먹어대는 통에 초등학생의 아랫배가 볼록 튀어나왔던 것이다. 나는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어느날 나에게 "아랫배가 나와서 보기가 싫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난 아버지를 따라서 새벽 6시에 일어나 동네 길을 뛰게 되었다. 학교 운동장을 뛴 적도 있었고 뒤쪽 야산에 나있는 도로를 따라 뛰어본 적도 있었다. 얼마나 뛴 것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기에 네이버 지도로 대략 가늠을 해보니 왕복 1.5 ~ 2km 정도를 매일 뛴 듯 하다.
사실 난 죽을 맛이었다. 새벽에 일어난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성인인 아버지는 나에 대한 배려는 별로 없이 저만치 뛰어가고 계셨다. 물론, 그 정도 속도도 날 위해서 일부러 속도를 줄이셨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젠 더이상 그걸 여쭤볼 수 없는 곳으로 가셔서 확인할 길은 없다.
러닝이 끝나면 아버지를 따라 '냉수마찰'을 하는 것도 정말 나를 괴롭혔다. 특히, 겨울엔 가장 하기 싫었던 것이 그 '냉수마찰'이었다. 나로선 운동한 이후라 몸에서 열이 올라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빨이 덜덜 떨릴 정도의 샤워 방법이어서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나에게 그걸 거부할 권리란 존재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아버지와 운동을 한 이후 나의 몸은 꽤 슬림해 졌고, 달리는 행위가 내 성장판을 자극했는지 2달 동안 7cm 정도가 커버리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그또한 아버지와 단 둘이 했던 일이라 나에겐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생애 만나본 최고의 트레이너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어리광도 전혀 받아주지 않고 운동을 위해서 해야할 일들을 포청천처럼 칼같이 실행에 옮기셨다.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아버지의 독주(?)에 나는 하릴 없이 아버지의 뒷모습을 따라 뛰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으셨음에도 거대해 보였던 아버지의 그 뒷모습이 생각난다.
오늘따라 아버지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