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앱 제시단어 : 실망
[제단글 : '제시단어로 글쓰기'의 준말. 제시 단어를 앱(RWG)을 통해서 받으면 그 단어를 주제 또는 소재로 하여 글을 쓰는 것.]
- 앱 제시단어 : 실망
- 그림 : chatGPT 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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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나는 부모님께서 항상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들으며 살았다. 계속 그런 얘기를 들으며 크다 보니, 다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사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럼 나의 부모님들께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셨기에 그렇게 말씀하셨던 걸까? 사실 그렇게 말하기에는 쉽지 않은 세대이시긴 하다. 아버지 46년생 어머니 50년생. 기억이 나던 안나던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분들이다. 그러니, 그런 순간에도 공부를 강조할 만한 시기는 아니었을 수 있다.
어쨌든,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두 분 모두 공부를 통해서 인생을 바꾸셨던 분들은 아니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적어도 세상을 살고 보니 결국 공부를 통해 인생을 버틸 수 있고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생기더라는 경험을 하셨던 게 아닐까 한다. 자신들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주변에서는 그런 사람이 보였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 경험은 물론 소중하다. 자신의 경험이 아닐지언정, 적어도 좀더 좋은 방향을 알게 되어 그걸 자식들에게 전해줄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좋은 교육의 방향 설정은 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요즘 생각해 보면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야 하는 건 그런 삶의 방향성이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지혜가 아니었을까. 이 길이 좋다고 하며 그 길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그 '좋다는 길'을 자신이 판단하고 찾을 수 있는 지혜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마치, 물고기 보다 물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 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아이가 뭔가를 실패하는 걸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어떤 부분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어떤 부분에서 실패하고 실망하는 지를 경험하는 걸 두고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경험을 통해 옳고 그름을 체득한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효율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일 테니까 말이다.
그게 아니라, 부모가 이거 하라 저거 하라 는 식의 지시를 그대로 이행한 아이들은 결국 그 지시가 사라지면 자기 자신의 판단도 사라져 버린 반쪽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의 대학 중반 까지의 삶이 딱 그 반쪽자리였다. 그래서, 더욱 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까지 부모님의 지시에 의한 삶을 살았다면, 대학 이후 연애와 고시 실패를 통해 늦은 사춘기를 경험한 나자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회사를 입사하고 2년차에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실망과 실패의 아픔이 없다면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다. 그게 내가 배운 세상의 이치였다. 그러니, 아이의 효율적 성공을 위해 부모로서 아이에게 좋은 길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효율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특히,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지혜와 관련한 것이라면 말이다.
실패.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인생의 가장 좋은 비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