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 킹>의 이인자 스카
<인어공주>의 사악한 마녀 우르슬라
<미녀와 야수>의 마초 망나니 개스톤 등
과거의 디즈니 뮤지컬 영화에는 아주 뚜렷한 메인 빌런이 등장함과 동시에, 그들의 특색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시그니처 '빌런 송 (Villain Song)'들이 있었죠. 그러나 2010년대 들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겨울왕국, 모아나, 엔칸토 등의 작품들에서는 이런 부류의 노래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졌는데요. 당장 2023년에 개봉했던 영화 '위시 (Wish, 2023)' 속 악당 매그니피코 왕의 테마곡이 '라푼젤 (Tangled, 2011)' 이후 자그마치 12년 만에 나온 메인 빌런 송일 정도였습니다.
왜 디즈니는 더 이상 악당 노래를 만들지 않는 걸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하죠. 세상이 변한 만큼 영화가 변했고, 영화 속 빌런도 변했기 때문입니다.
고전적인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악당 대부분은 공통적인 성격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건 무조건 가지고 말겠다는 욕심,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이기심이죠. 이는 꿈과 사랑의 메시지가 메인인 디즈니 영화 주인공의 안티테제로서 가장 정석적인 선택이었을 텐데요. 그리고 이 악당이 얼마나 사악한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 얼마나 안하무인이고 못됐는지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써 빌런 송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곤 했죠. 이 자가 바로 주인공의 최대 위협이자, 반드시 무찔러야 하는 악역이라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공표하는 목적으로요.
그러니 절벽으로 떨구든, 함선으로 찌르든, 아니면 잘 나가는 왕자 만나서 계급 차이로 눌러버리든, 이 악역만 해치우면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게 고전적인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이야기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디즈니 영화에서 다루는 갈등의 형태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겨울왕국 (Frozen)' 시리즈가 대표적인 사례죠. 겨울왕국 1편과 2편의 주된 갈등은, 지금까지 익히 봐왔던 통칭 '디즈니 빌런'이 원인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1편의 이야기는 통제 불가의 힘에 괴로워하는 엘사와 그를 돕고자 애쓰는 동생 안나의 관계가 메인이었고, 한스 왕자는 그 상황을 이용하려 하는 서브 악역 포지션 정도였죠. 2편은 아렌델과 마법의 숲에서 벌어진 모종의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 일행이 이야기의 주축이었으며, '빌런'이라고 할만한 캐릭터는 아예 없다시피 했고요. 디즈니 영화에서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핵심 갈등의 원인이 '소수의 악당'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로 옮겨간 것입니다. 물론 주인공의 여정을 방해하는 서브 빌런, 뒤에서 갈등을 조장하고 이득을 취하는 흑막 캐릭터는 존재하기 마련인데요. 그러나 주제곡까지 따로 붙여줄 정도로 깊은 서사와 캐릭터성을 보여주는 메인 악당은 더 이상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왜 디즈니의 이야기는 이렇게 바뀌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사는 현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야기는 현실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법. 디즈니를 비롯한 최근 영화들의 갈등 구조가 악당 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 바뀌게 된 건, 그만큼 현대의 시대상이 변했기 때문일 테니까요.
사람들은 흔히 자신들을 괴롭히는 소수의 악당이 존재하며 그들을 물리침으로써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곤 합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현실 빌런', '참교육' 등의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이 심리를 여실히 알 수 있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은 그렇게 악당 하나 해치우는 걸로 모두가 해피엔딩을 맞는 옛날 동화처럼 흘러가진 않습니다. 심지어는 명확한 악역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죠. 때로는 선조들의 잘못으로 인해 죄의 당사자가 아닌 후손들끼리 갈등을 빚기도 하고,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에 예기치 못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며, 더 큰 대의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니까요.
이러한 세상에서 당장 내 눈앞의 '악당 같은' 인간 몇 명 해치우는 것만으로는 결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빌런을 솎아내고 '참교육' 한다 해도, 갈등의 껍데기라는 구조적 문제가 그대로 남아있다면? 그 틈을 비집고 악당은 계속 등장할 것이며, 갈등을 이용하고자 하는 '진짜' 빌런들 또한 끊임없이 활개를 칠 테니까요.
그런 세상 속에서 최근의 미디어 작품들은 시청자와 관객들에게 이전보다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싸우는 걸까?
저들은 정말로 우리의 적인 걸까?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 걸까?
내가 하는 행동은 정말 정당한 걸까?
더 많은 질문이 나올수록 더 많은 답이 나올 것이며, 더 많은 답은 갈등 그 자체를 깨트리는 무기이자 그 속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방패가 되어줄 테니까요.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달콤한 감언이설과 멜로디로 현혹하는 그림자 속 빌런들이 그득한 세상에서 진짜 해피엔딩으로 향하는 방법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