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착각하면 안 된다

심슨 가족 시즌8 34화 <호머의 적> 후기

by 얕은생각
Go4CGyOb0AARXo3.jpg 출처: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호머의 적 (Homer's Enemy)>라는 이름의 심슨 가족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온갖 불행 속에서도 꿋꿋이 노력해 온 발전소 신입 프랭크 그라임스의 시선으로 호머 심슨의 삶을 조명하는 에피소드인데요. 자기는 평생을 개처럼 일해도 갖지 못했던 것들을 (번듯한 이층집, 자동차, 정상 가족, 고급 옷, 저녁 메뉴가 랍스터 등등...) '저 멍청하고 게으른 호머'가 전부 가지고 있는 것에 불공평함과 인지 부조화를 느끼다 점점 미쳐가는 묘사가 굉장히 섬뜩하죠.

Go4DDC-aUAAQPMY?format=jpg&name=large 출처: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그런데 이 에피소드를 지금 와서 다시 보니까 프랭크가 미칠 수밖에 없던 이유도 알 것 같았습니다. 프랭크는 호머 심슨 그 자체를 '적'으로 규정하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죠. 호머는 이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고, 불합리한 시스템 내에서 자기 같은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사기꾼이라고요.


그러나 호머를 비롯한 주변인들은 중산층 황금기 시대를 잘 타고난 행운의 세대일 뿐, 사기꾼은 아니죠. 호머처럼 '멍청하고 게으른' 인간도 얼마든지 적당히 먹고살 만한 부를 축적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요. 그러니 "저렇게 멍청하고 게으른 인간이 나처럼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보다도 잘 먹고 잘 사는 게 이상하지 않냐?"라고 아무리 일갈해도 다들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Go4DA4WaUAA-d2G?format=jpg&name=large 출처: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인간은, 아니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누구나 불공정을 싫어합니다. 내가 10만큼 노력해서 10만큼 버는데, 내 옆의 얘는 1만큼만 노력해서 100을 가져가는 것처럼 보이면 당연히 분노가 솟구치죠. 그러나 그 분노를 격렬히 표출하기 전, 스스로에게 하나의 질문은 꼭 던져봤으면 합니다. '정말 얘가 나의 적인가?'라고 말이죠. 적을 혼동하고, 잘못된 적의 파멸에 온 인생을 바치다 보면 결국 사람은 미치고 말 테니까요.

fwy48R.gif
"일단 말해두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네가 싸울 상대가 아니란 말이지.
적을 착각하면 안 된다?"

- <봇치 더 록!> 중
keyword
작가의 이전글디즈니가 더 이상 <빌런 송>을 만들지 않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