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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언트 Sep 29. 2020

연남동에 살러왔다

연남동 에어비앤비가 좋은 이유



긴 연휴에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어디로든 떠나야 했고, 코로나 때문에 멀리 갈 수는 없었다. 서울에서, 한적하지만 아기자기한 카페와 맛집이 많은. 깨끗하고 조용한 동네를 찾았다.



그렇게 한 달 전에 예약한 연남 에어비앤비. 한적한 주택가를 따라 걷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길 한복판에 귀여운 집 한 채가 있다.



사진으로 봤던 것과 똑같은, 어쩌면 그보다 더 아늑하고 감성적인 공간. 연남 4박살이로 딱 모든 게 적당했던 에어비앤비였다. 깨끗하고 깔끔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좋은 공간.



침대가 있는 방 하나에 화장실 하나, 주방에 딱 어울리는 식탁이 하나 있다. 천장이 낮지 않아서 작아도 크게 답답하지 않은 기분.



집에서부터 바리바리 챙겨 왔던 뮤슬리프루타 시리얼과 캠밸 수프. 마켓컬리에서 해본 첫 주문인데 이래서 컬리컬리 하는구나. 너무 편하고 좋다. 그래, 결혼해도 되겠어!(?)


암튼, 인테리어용으로도 한 몫하는 예쁜 식량들. 맛이 조금 없더라도 용서해줄 수 있는 결정적 이유가 생겼다. 주방을 생기 있게 만들어준 귀여운 소품.


맛은 조금 이따 보기로 한다.



이렇게 드는 해는 언제 봐도 매력적.

어떤 사진이든 감성적이게 만들어준다. 따뜻하고 분위기 있게. 그래서 오후 3-4시쯤에 드는 해를 제일 좋아한다.



집 구경을 다 끝내고 동네슈퍼를 가려고 나왔다. 물이랑 요거트를 사야 해서.

낯선 동네가 주는 신선한 기분을 마시며 주변의 예쁨을 담는다. 각자 자기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이방인이 나를 반겨주는 느낌.



걷기 너무 좋은 날씨. 진짜 동네주민처럼 한껏 편하고 여유 있게 걸었다. 유럽에서 온 힘을 다해 꾸미고 다녔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드디어 16:00에 먹는 첫끼. 첫 식사!

캠밸 수프는 그냥 물을 좀 넣고 팔팔 끓이면 되는데,

흔히 생각하는 수프처럼 걸쭉하지는 않고 살짝 토마토 파스타탕? 같은 국물이다. 맛있지만 조금 짠 건 사실. 레스토랑에서 주는 식전 빵이랑 같이 먹으면 딱 좋을 것 같은 맛이다. 뮤슬리푸르타는 그냥.. 건강한 맛. 그래도 크렌베리가 듬뿍 들어가 식감은 좋은 편. 예뻐서 봐주기로 했으니까, 이 정도면 괜찮은 걸로.




이곳을 고른 이유 중에 큰 부분을 차지했던 건 하루 종일 돌려보는 TV 대신 빔프로젝터로 넷플릭스를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그것도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재미있는 경험! 오랜만에 섹스앤더시티를 다시 틀었는데, 여전히 좋다. 모던패밀리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인생 미드.


이제 호스트분이 추천해줬던 이 집의 또 다른 자랑(?) 오코노미야끼를 먹으러 간다. 집에서 200m? 가까워서 더 좋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허름(?)하고 오래된 외관이었는데, 가게 내부는 진짜 오사카에 있는 듯한 느낌. 항상 웨이팅이 있는 곳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굉장한 맛집이라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 시간 정도 후에 픽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친절했던 사장님, 근처에 살았다면 완전 단골이 됐을 것 같다.



다시 봐도 감탄이 나오는 비주얼.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엄청났다. 14,000원에서 10원도 안 아까운 맛과 양. 일주일에 한 번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맥주가 없었으면 당황스러울 뻔했다. 오코노미야끼의 안주가 맥주일 정도. 이게 바로 (맥)주객전도.



다음날.


딱 1년 전 파리를 닮은 날씨였다. 반드시 테라스에 앉아야 하는 날씨. 오래전 봐 두었던 <콘하스 합정점>으로 향했다. 당장이라도 프랑스어가 튀어나올 것 같은 프렌치 감성이 가득한 테라스를 품은 콘하스.



운명처럼(?) 오늘이 마지막 영업날이었다. 이제 한남으로 이사를 간다고(10월 중 오픈예정). 이제야 이런 곳을 알게 된 게 아쉬울 만큼 멋진 공간. 한남점이 오픈하면 바로 달려가기로 마음먹었다.


무화과와 블루베리잼이 아낌없이 들어간 크로와상의 맛도 잊을 수 없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즐기기 딱 좋은 맛.



내가 앉았던 콘하스에서 제일 멋진 자리.



세 시간 정도를 앉아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한 시간. 나를 위한, 나의 시간.


딱히 뭘 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유독 이럴 때 시간은 자꾸 더 빠르게 흐르고 흘러 결국 넘치고 만다. 주워 담을 수 없는 기억의 조각들로.



집 앞 산책을 나갔다가 반가운 과일트럭을 만났다.

친절한 사장님 덕분에 다디단 샤인머스캣에 와인 한 잔 할 수 있는 선물 같은 밤이 찾아왔다.



이후 난 두 번의 밤을 더 보냈다.


홍대역 근처 아인슈페너가 유명한 곳인데, 시그니처 커피인 리틀윙과 하나로도 충분한 꾸덕한 쿠키가 메인이다. 야외 공간은 꽤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내부는 살짝 어둡지만 편안한 음악이 흘러 릴랙스 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귀여운 책들로 가득 채워진 오브젝트의 꼭대기로 가면 포스터를 붙여놓은 것 같은 뷰를 보면서 독서를 할 수 있는 작은 서점이 있다. 오래 머물고 싶어 지는 잔잔하지만 임팩트 있는 공간.



반지하가 이렇게 예쁜 적이 있었던가. 보정한 것 같은 바깥 풍경의 색감에 한눈에 반해버렸다. 거기에 커피는 또 얼마나 맛있고. 커피를 이렇게 빨리 마셨던 건 인생 처음이다.



이렇게 연남 에어비앤비에서의 3시간 40분 같은 3박 4일이 끝이 났다. 처음 굉장히 대단한 걸 이루고 가겠다는 비장한 다짐과는 다르게 소소한 하루하루를 보내다 집으로 돌아가지만,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는 '다 경험이니까'를 몸소 실현했던 날이 아닐까.




연남동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온전히 누리고 느끼다 간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았던 알맞은 시간들. 따뜻하면서, 작고 소중했던 연남동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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