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2
비가 갑자기 쏟아진다.
폭우에 가까운 비였다.
이대로 두면 텐트가 떠내려갈 것 같았다.
텐트 옆으로는 계곡 물이 무언가를 집어삼킬 듯
큰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나는 텐트 안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주변에 있던 물건들을
만지작거리며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서는 네 살쯤 되었던 동생이 엉엉 울고 있었다.
텐트 안에서 동생과 나란히 앉아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괜찮아.
괜찮아.
부모님의 빠른 판단으로 우리는 텐트를 철수했고,
더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
엄마는 라디오를 켜며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텐트 안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왔고,
나는 텐트 밖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그 노래를 듣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늘 엄마 취향의 노래만 흘러나왔다.
수많은 여행 중에서도
이 장면은 부모님과의 여행 중
가장 또렷하게 떠오르는 기억이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나와 여동생을 데리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셨다.
산과 계곡, 강과 바다.
발이 닿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다.
어떤 날은 고속버스를 타고,
엄마 아빠 키만 한 배낭에
텐트와 캠핑 용품을 가득 짊어지고
설악산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고,
동생은 네 살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도 부모님은 여행을 가면
산과 계곡, 바닷가에 텐트를 치며
‘낭만 여행’을 하셨다.
집을 떠나 굳이 불편함을 선택하고,
고생을 선택하는 이유를
그때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어릴 때 여행은 소용없다고,
커서 기억하지도 못한다고.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은 사실 많지 않다.
그럼에도 조각처럼 남아 있는 기억들은 분명히 있다.
좋은 기억은 잔잔하게 남고,
힘들고 고생스러웠던 기억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남는다.
등산을 좋아하셨던 부모님은
전국의 산이란 산은 거의 다 데리고 다니셨다.
가기 싫다고,
힘들다고 울면서 산을 오르던 날들이 많았다.
돌아갈 수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는
목적지만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걸어갔다.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정상은 아직 멀었나요?” 하고 물으면
모두 같은 대답을 했다.
“다 왔어요.”
“얼마 안 남았어요.”
“조금만 가면 돼요.”
그 말을 믿고 다시 걸음을 옮기지만
정상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오를 때는 그렇게 힘들었지만
내려올 때는 웃으며 내려왔다.
산은 아래에서 바라보는 것으로도 충분한데
왜 굳이 올라가야 하는지.
어차피 내려올 텐데 왜 고생을 선택해야 하는지.
10대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님이 들이신 수고에 비하면
내가 붙잡고 있는 기억은 아주 작은 조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것 앞에서 조금 덜 두려워하고,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는 용기는
분명 그때의 여행이 내게 남겨준 선물이다.
따뜻하고 안전한 집을 두고
흙바닥 위에 작은 집을 짓고,
밥을 해 먹고 잠을 자는 일.
걷고 싶지 않아도 멈출 수 없는 순간을 지나가는 일.
그렇게 고생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내가 배운 여행의 모습이었다.
여행 덕분인지 나는 환경이 어떻든
비교적 잘 적응하는 사람이 되었다.
더러움을 보면 눈을 감을 줄 알고,
불편함 앞에서는 그러려니 하며
그 상황을 받아들일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어쩌면 고생을 선택한
여행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