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군산에서 시간을 걷다

Part 1. 속도를 내려놓는 연습

by 샬롬유shalomU

여행을 준비하며 짐을 챙긴다.


꼭 필요해서 챙기고,

필요할 것 같아서 챙기고,

혹시 모를 상황을 떠올리며 또 챙긴다.


그러다 보니

서른 날의 여행을 준비하는데

캐리어 하나로는 부족하다.

영양제 가방, 소모품이 들어있는 가방까지

짐은 여러 개가 된다.


겨울 숙소는 찬 공기가 스며들지도 몰라

원터치 방한텐트까지 챙겼다.

서른 날의 여행은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다.


아이와 여행은 늘 그렇다.

내 옷은 몇 벌 되지 않는데

아이 옷은 캐리어를 가득 채운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영양제와 비상약.

종류별로, 넉넉하게 챙긴다.

예쁜 옷 대신 영양제와 아이 옷으로

가득 찬 가방을 들고 떠나는 여행.

지금의 나를 가장 잘 보여주는 모습이다.


2017년 겨울, 군산 여행을 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6년,

여덟 살 아이와 함께 군산에서 시간여행을 시작했다.


서른 날의 여행 중 첫 여행지 군산

낭만 있고, 분위기 있고,

역사를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 도시.

잔잔하고 따뜻한 이 도시를 첫 여행지로 선택했다.


군산으로 가는 길에 망향휴게소에서

돈가스와 떡라면을 먹다가 문득 생각한다.

추운 겨울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왜 하필 이 겨울에 여행을 시작했을까

괜찮을까, 이 여행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손난로를 꺼내서 아이 주머니,

내 주머니에 하나 넣는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괜히 마음도 조금 움츠러든다.


그때 종알종알 쉬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를 듣고서야 여행의 의미를 다시 떠올린다.

차갑던 마음이 조금씩 풀린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3박 4일 머물 방의 문을 연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고, 바닥은 뜨끈하다.

첫 여행지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

그제야 모든 짐을 내려놓는다.


짐을 풀고 동네를 천천히 걸어본다.
여행지에서는
골목의 간판 하나, 건물의 벽, 전봇대마저
괜히 소중해 보인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진다.


여행은 일상의 것들을 다시 사랑하게 만들고,

평범했던 일상이 소중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소품 가게에서 해리포터 피규어를 발견했다.

가격은 이십삼만 원쯤.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아이는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사고 싶다고 말한다.

서른 날 동안 해리포터와 함께 여행을 할 수는 없어서

우리의 여행을 군산에서 끝내면

피규어를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아이는 서른 날의 여행을 선택했다.


ㅣ말랭이 마을

천천히 골목을 걸으며 벽화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바람 불고 추운 날

말랭이 카페에서 아이스캐러멜마키아토를 주문했다.

하루 종일 춥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던 나였는데

따뜻한 공간에 들어오자 추웠다는 사실을 금방 잊는다.


ㅣ초원사진관

2017년 사진을 찍었던 그 자리에서

이번에는 아이의 모습을 담는다.

시간은 우리에게 추억을 건넨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에 대해서.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도

초원사진관을 찾는 이유는

시간을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ㅣ테디베어박물관

춥기도 했고 잠시 몸을 녹이고 싶었다.

사람이 없어 마치 우리만 있는 공간처럼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아이의 표정을 보며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은 무언가를 했는가 보다

누구와 함께 여행의 이야기를 만들었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저녁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가려던 식당이 5시에 문을 닫았다.

6시 반 밖에 되지 않았는데 거리에 사람이 없고 어둡다.

숙소로 걸어가는 길에도 사람이 다니지 않았고

가게들도 문을 닫았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구운 계란, 소시지, 과자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문을 여는 순간 바닥이 뜨끈한 바닥의 온기가 느껴진다.

추위에 굳어 있던 몸이 천천히 풀린다.


낯선 도시에서의 첫날,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는

보이지 않는 책임감이 따라온다.

작은 방 하나가 건네는 따뜻한 쉼 덕분에

마음이 조금 느슨해진다.


군산 거리를 걷는데

추운 겨울 날씨 때문인지 쓸쓸함이 마음에 스며든다.

초록이 가득한 뜨거운 여름을 문득 떠올려 보지만

아직 오지 않을 시간을 미리 기다린들

무슨 소용일까 싶어진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붙잡고 있을 이유는 없다.

오늘을, 지금을 살아내는 일로 충분하다.


군산은

걷는 거리마다 역사가 느껴지는 도시다.

언젠가 누군가가 걸었을 길 위를

지금의 내가 걷고 있다.


그래서 군산이 좋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으니까


서른 날의 여행이 끝나면,

여행 그림을 그려볼 생각이다.

지금은 오늘의 여행에 머물고,

시간이 지난 뒤 이 시간을 다시 추억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