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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산은 Aug 15. 2019

생명의 공간인 텃밭에서

널리 이로운 실천적인 활동으로 텃밭을 생각한다

서너 평 텃밭을 시작했다. 유학시절 텃밭을 한 적이 있었는데 30여 년 지나 다시 하는 것이다. 당시 대학에서 학생들이 텃밭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특별했다. 학생들의 바쁜 시간을 고려하여 밭을 갈고 거름을 주고 구획을 정리하는 일은 기계로 일괄 서비스해 주었으니, 우리가 할 일은 씨 뿌리고 물 주고 풀 뽑고 수확하고 나누는 활동이면 충분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며 학업이나 연구를 해야 하는 정신적으로 힘들 수 있는 상황에서 생명을 키우고 가꾸는 활동을 통해 스스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프로그램이었다고 본다.

글로벌 경영 현장에서 스무 해 이상을 나름대로 치열하게 보냈다. 다양한 문제나 어려움을 원만하게 풀어간 의미 있고 밀도 있는 시간을 마무리하고 업무를 인수인계하며, 변화 속에서 새로운 시간을 열어갈 때 작은 텃밭이 떠오른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다 깨어나는 텃밭의 기억과 느낌, 그 숙성의 시간 속에서 텃밭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본다.

텃밭은 생명의 힘이 분출하는 공간이다. 들깨, 고추, 상추 그리고 방울 토마토를 서너 개씩 심었는데 한 가족에게 넘치는 양이된다. 작은 모종에서 그렇게 왕성한 힘이 분출하며 성장하고 잎과 열매를 키워가는 모습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생명의 경이가 넘치는 현장에서 생명은 생명에게 또한 말을 건넨다.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상상할 수는 있는 것이며, 생명이 건네는 기운이라면 파동이 되어 교감하고 스며들 것이다.

텃밭은 상쾌한 땀의 현장이다. 내 관심과 정성이 그대로 반영되는 현장인데 작은 관심에도 훨씬 매끄럽게 정돈되고 풍성한 모습이 된다. 한편, 다른 일로 바삐 보내다 보면 금세 잡초에 둘러 이고 선머슴 머리카락처럼 어수선해진다. 장화를 신고 모자를 쓰고 텃밭에서 땀을 흘린다. 무섭게 자란 잡초나 덩굴식물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들깨와 고추 그리고 토마토가 가볍게 바람에 흔들릴 때, 시린 우물물을 한 바가지 둘러쓰기 전에도 흘린 땀은 언제나 상쾌하다.

텃밭은 감정을 부드럽게 하는 위무의 공간이다. 눈길과 손길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면 번잡한 생각은 아침안개 걷히듯 사라지고 만다. 어떤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몸을 움직이며 자연과 생명의 에너지를 느끼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 적절히 줄기를 잘라 주고 묶어 주며 풀을 뽑아주고 물을 주면서 느끼는 것은 내 마음과 마음의 공간을 가꾸고 있다는 생각이다.

텃밭은 자연 순환의 공간이기도 하다. 커피를 내린 찌꺼기나 음식 쓰레기도 그곳에서는 귀한 거름이 된다. 잘 가려 쓰면 유용한 순환자원이 된다는 생각인데, 환경문제를 풀어가는 작지만 근본적인 시도일 수 있다. 유기물의 환원이면서 화학비료를 절감할 수도 있다. 도시적 삶은 편리하지만 땅과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엄청난 쓰레기로 환경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생각인데, 작지만 깊이 생각해볼 순환의 가치가 텃밭에 있다.  

텃밭은 자족이며 건강이다. 관심을 나누며 작은 수고로 싱싱한 야채를 마련한 식탁에서의 느낌은 각별하다. 작은 모종에서부터 이렇게 자란 과정을 세세히 아는 먹거리에 대한 애틋한 느낌인데, 작지만 내 손과 내 땀으로 마련한 먹거리가 주는 자족의 느낌은 자체로 완전하며 건강한(wholesome) 것이다. 체험해 보기를 권하는 소중한 느낌이고 가치다.    


꽤 지난 일이지만 오랫동안 시골에 사시던 부모님을 도시로 모셨다. 작은 연못과 화단이 있는 주택이었는데 어느 날 가서 보니 연못과 화단을 텃밭으로 바꾸셨다.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하고 내심 안타까운 마음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텃밭이 주는 유익함이 훨씬 컸을 것이고 그런 결정에 충분히 공감한다.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는 혼란의 시대다. 개인적인 욕망의 충돌은 물론 사회적인 이념의 충돌 그리고 국가간 이기심의 충돌이 어지럽게 펼쳐진다. 모두 좋지 않은 감정의 충돌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실천적 방법으로 텃밭의 의미를 떠올려 본다. 생명의 힘과 교감하고, 상쾌한 땀을 흘리며, 맺힌 감정을 위무하고, 자연 순환으로 환경을 살리며, 자족과 건강의 느낌이 살아 있는 현장이 텃밭이다. 작은 활동이지만 전혀 작지 않은 의미로, 자기만의 텃밭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과 주위의 사람들 그리고 환경까지 이어지는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고귀한 가치가 텃밭에 있다. 일상에서 홍익인간의 마음을 키워갈 수 있는 실천적 활동으로 텃밭이 다가온다. 찾으려 하면 어디에서도 작은 공간을 마련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수확한 오이를 건네주시던 이웃에게 막 따온 방울 토마토를 함께 나눈다. 건강한 미소가 햇살처럼 피어난다. 혼란을 극복해 내는 건강한 사회나 공동체는 결국 땀 흘리며 생명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구현되지 않을까?


2019년 8월 14일


이 산은 (李 山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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