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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더언니 Sep 23. 2015

공허함, 그 씁쓸함에 대하여 ​

외로움을 친구로 두는 법.

David, 내가 성경에서 제일 좋아하는 다윗 이야기.

또 좀 따분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31장이나 되는 사무엘상에는 다윗의 쫓기는 인생 이야기가 반을 차지한다.

제사장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Anointing, 넌 곧 왕이 될거란다. 라는 징표)

ㄹ루룰룰랄라 로또 맞은 것처럼 해피할 일만 생길줄 알았던 다윗의 인생이 본격적으로 꼬이게 된다.

질투에 미친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들자, 다윗도 사람인지라 자기를 위로할 사람들을 찾아 헤멘다.

처음에는 다윗의 첫사랑 미갈.
그리고는 다윗의 절친 요나단.
그 다음엔 다윗의 멘토와도 같은 아히멜렉.

그렇게 자신과 함께 있을 자들을 찾아헤메지만, 미친 사울의 추격은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다윗의 주변인들만 괴롭게 만들었다.


결국 다윗은 침을 질질 흘리며. 온갖 바보 짓을 하며 사람들 앞에서 쇼를 한다.

'난 미쳤어요!! 제발 좀 나를 내버려두세요!!!'



당신은 이같은 발악을, 이 쇼를 인생에서 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차라리 미친다면 얼마나 좋을까.
차라리 죽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나 이렇게 미치기 직전이니까.

나 좀 내버려두라고.
나는 그냥 힘들다고.
나도 외롭다고.

인생이 한 없이 조여오고,
힘이 들어서 내 마음을 위로해줄만한 모든 사람들을 찾아보았지만, 내 마음을 채워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 때 이 발악을, 이 쇼를 했었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하였고, 모든 것을 다 해보았지만 만족함이 없었다.



다윗은 마침내 아무도 없는 조용한 굴에 들어간다.

그냥 포기했다.

이젠, 자신을 위로해줄 사람 찾아 헤매기를 그만 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다윗은 지금 껏 만났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인연들을 맺기 시작한다.

이제까지는 다윗이 직접 찾아 헤매서 만나게된 사람들이었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들어간 굴에서는 다윗과 같이 상하고 자신 없고 잔뜩 웅크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에게로 저절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강해진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관계와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노력해도 얻어지지 않는 관계가 있다.
노력해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결과를 마주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최후의 발악.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고, 내가 가진 변명을 다 늘어놓고 나면,

조용히 굴에 들어갈 마음이 생긴다.


억울한 마음이 들 수도, 답답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변명하지 않는다.

하소연하지 않는다.

내 편을 들어주고 나에게 위로를 주는 사람을 찾는 것을 그만둔다.



잠시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굴에 들어가 외로움과 직면하기로 한다.

그런데 굴에 들어가니 참 신기하게도, 기대하지 않았던 다른 인연들을 마주하게 되며, 꽁꽁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거칠었던 인연이 한 껏 부드러워져 나타난다.


이 과정.

어렸을 때엔 집착이 있었기에... 굴에 들어가기까지 참 길고 힘들었지만 점점 나이가 들수록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는 방법을 알게되므로 포기가 쉬워진다. 얼른얼른 알아서 굴에 들어가게 된다.

굴에서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내려놓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새로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인연에 감사할줄 알게 된다.


그리고 다시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상해.


한 없이 화려하고 사람들이 넘치는 이 곳에서 나는 조용히 굴에 들어가기로 작정하였다.
사실, 나는 굴에 들어가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인연들을 마주하고 있다.

아직도 나는 서툴지만.

기대하지 않고, 다만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다.






15년을 친구로 지내며 나의 모든 인생 스토리를 아는 그녀. 몇 년동안 소식이 끊겼던 그녀로부터도 정말 갑자기 연락이 왔다.


프랑스 출국하는 날 갑자기 사기 당해서 오갈 곳 없었을 그 때에도 연락이 와서는 '야, 나는 너 걱정이 안돼' 하며 뜬금없는 한 마디를 던지더니.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갑작스런 이 한마디가. 그리고 그녀의 존재가 나에겐 굴에서 만난 한 줄기의 위로로 느껴진다.


바쁜 일을 어느 정도 다 마치고,
정신 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친구들과 미친듯한 즐거운 일상이 반복되고.
그런 더할 나위 없이 안정된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여지는 인생.

누가봐도 괜찮은 인생.



그런데 텅빈 집에 불을 킬 때면.
그렇게 자리에 누울 때면.




그 때 마주하게 되는 공허함 하나 쯤은 누구나 다 가지고 살아가지 않나.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서 더 많은 것들에 눈을 돌리기도 하지만.


외로움은, 공허함은,
반드시 다시 찾아온다.


아직 발악이 끝나지 않았나.

이미 다 해봤는데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면 굴에 들어가자. 공허함에 직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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