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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더언니 Sep 23. 2015

눈에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 ​

마음 지키기

5년 전, 8월 13일.  
샤르드골 출국.

이 날이 정말 나에게 오다니.
내가 정말 프랑스에 가다니.
달력에 표시하며 오래 전부터 꼬박 기다렸던 그 날.


프랑스에 갈 날만 기다리며.. 1년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히, 그리고 열심히 알아보았던 집. 그렇게나 열심히 시세를 조목조목 따져가며 알아보고, 계약금까지 걸었는데... 

이럴 수가..

....사기였다....
집주인이라고 믿었던 그 놈이 사기꾼이었다.
(웨스턴유니온으로 돈 부쳐달라는 사람은 무조건 의심하세요.......)

그 것도 출국 세 시간 전에 알게되버린.....


말도 안통하는 그 곳,
아무도 나를 반겨주지 않는 그 곳.
아는 사람이 단 한명도 살고 있지 않은 그 낯선 땅. 나는 갑자기 길바닥에 자야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늘 그렇듯이, 거기서 죽으면 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떠나는 나에게는 말레이시아를 경유하는 편도 티켓밖에 없었고, 내 주머니에 현금이라곤 달랑 20불이 전부였다.



그래도 나는 가야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내가 이 프랑스 학교에 어떻게 합격했는데....
내가 이 프랑스 비자를 어떻게 받았는데...

나에게는 이미  돌아갈 곳도 없었다.

이미 그 땅이 내가 속해야할 곳이었다.



그 와중에 나에게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한 가지 사실은, 비지니스 석이 부럽지 않게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앞자리' 였다는 것.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은 날씬한 여성이었다는 것. (덩치가 있는 분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긴 비행이 괴롭다ㅠㅠㅠ)

보통 이렇게 긴 비행을 할 때엔 억지로라도 전날 밤을 새어서 비행기 안에서 숙면을 취하는 편인데, 이번엔 아무리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어도, 걱정에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이윽고 기내식이 나왔다.

식사 기도를 그렇게나 간절히 해본 적은 정녕 처음ㅎㅎ 

'하나님, 도대체 어쩌시려고 이러시나요....'

옆에 앉아 있던 말레이시아 여자가,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기도하는 나를 조용히 기다리다가 도저히 궁금했는지,

'당신은 크리스천이군요!' 라고 말을 걸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녀는 이것 저것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기도를 할 때마다 나는 항상 이렇게 간절한지,
하나님은 왜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도 들어주시지 않는지,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는지,
왜 나는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는지 등등.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지금 나의 노답인 상황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그 분을 신뢰하고 있으며, 만약 길바닥에서 자게 되더라도 감사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을하자.. 그녀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녀도 평소 교회를 다니지만, 이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나님의 존재에 잔뜩 의심을 품고 있었는데, 나를 보니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말레이시아에 도착하였고, 비행기에서 내릴 때 그녀는 나를 안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반가웠어. 오늘 너를 만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셨나봐. 내가 잘은 모르지만, 네가 어디를 가던지 너의 하나님이 지켜주시길 바래. God bless you all the time.' 

정작 나는 울지 않는데 그녀는 오히려 눈물을 쏟으며 말이다.




그녀의 말은, 마치 천사가 나에게 해준 말만큼이나 큰 위안이 되었다. 비록 나에게 닥친 상황은 아직도 '길바닥 신세'이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상황이나 환경에 상관없이 평안해졌다.


그래, 전에도 이 평안을 여러 번 경험한 적이 있다.


내일 당장 짐을 싸서 쫓겨나는 상황에서도.
아무 것도 모르고 보았던 시험 시간에도.
인터뷰를 볼 때에도.
11시 58분. 등록금 마감시간 2분 전까지도.
프랑스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지금 껏 걸어왔던 모든 길이, 나에겐 우연이라는 이름의 기적이었으며, 이 기적이 나에게 올 때엔 늘 이 평안이 먼저 내 마음에 있었다.





주머니의 20달러로 나는 말레이시아 스타벅스 그린티 프라프치노 벤티 사이즈를 주문하였고, -어차피 돈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이왕 맛있는 음료수 사먹는 김에 많이 마시고 싶었다- 그 곳의 와이파이를 쓸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TOP URGENT라는 제목으로 그 동안 알아보았던 수십명의 집주인들에게 미친듯한 메일을 랜덤으로 발송하였고, 그 중 나의 딱한 상황을 알게된 집주인 한분이 바로 답장을 해주었고 기차역으로 픽업도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 집에서 1년동안 무탈하게 지냈다.



그 뒤로, 나에게 가장 맛있는 음료는 그린티 프라프치노 벤티 사이즈가 되었고, 꼭 이렇게 공항 스벅에 조용히 혼자 앉아 그 때를 기억하고, 지금도 잘 살아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눈에 보이는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지키는 일이다.

나는 지금 껏 폭풍같이 몰아치는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내 마음이 평안할 수 있다면... 이윽고 문제도 가라 앉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하였다.

사람과의 관계가 엉망이다. 더군다나 누가 나를 비방한다. 일이 끊겼다. 돈이 없다. 아니 내쫓기는 상황이다. 몸이 아프다.
갑자기 되는 일이 단 하나도 없다.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다.


나의 변호를 하지 않고 될 수 있으면 조용히 있는다. 
사람을 탓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당한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혹은 발버둥치며 환경을 바꾸려 노력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마음에 집중한다.


나는, 무엇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는가.
가슴이 막힌 것을 다른 어떤 것으로 채우려 기대하고 있지는 않는가. 

사람으로.
혹은 물질로.
아니면 눈에 보이는 다른 어떤 일로.


아무 것도 되지않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이 평안을 찾을 수 있다면, 그리고 기억할 수 있다면..  사람의 행복의 조건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된다.


말은 쉬운데 어렵다는게 가장 큰 함정....쿨럭..

아마 이 훈련을 나도 죽을 때까지 반복하겠지만..

확실한 것은, 

나는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이 어제보다 더 행복한 오늘을 사는 내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I love my life, I always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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