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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더언니 Sep 13. 2015

능력이냐 인격이냐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

살면서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 중에 하나.



그리고 ‘내 남자친구’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가장 중요한 질문.


능력이냐, 인격이냐?


‘돈이면 다야.’ 혹은 ‘공부만 잘하면 돼’라고 강요하는 물질 만연주의 세상 속에서, 

일찍부터 사회에 노출되었던 나는 너무나 더러운 세상을 필요 이상으로 빨리 봐버렸으며,

이 짧은 질문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능력이라고 답하는 것에 대하여 이제 나는 아무렇지 않다. 



어느 순간 나의 대답은 0.01초의 망설임 없이 ‘인격’이 되어버렸다.




살다 보면 정말 내 머리와 가슴의 영역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류의 사람을 만날 때가 더러 있다.



그 때마다 “이만하면 괜찮지…” 라고 생각했던 내 성격이 얼마나 더러운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데,

이렇게 인생의 악역을 만나는 것은, 어쩌면 나의 한계를 인정하게 하는, 

반갑지 않지만, 그러나 꼭 필요한 기회가 아닌가 싶다. 



 



인도에서 만난 그녀는 아직까지도 내 인생의 최고의 악녀로 꼽힌다. 



80명 가까이 되는 같은 반 인도 친구들 중에 유일한 외국인이자 한국인이었던 나와 그녀.  



그녀는 참 똑똑했다. 


미국에서도 살았기에 영어는 물론이며, 인도에서 명문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으며,

명문대인 우리 학교까지 당당하게 입학하였다. 

(나는 아직도 내가 그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을 정말 기적으로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언어 연수는커녕 정규 영어 수업이라곤 받아본 적 없이 바로 학교에 들어가, 

버벅거리는 영어를 겨우 구사하는 나와 다르게, 그녀는 모든 발표도 척척, 과제도 척척, 2시간 동안 10 페이지가량의 에세이를 써야 하는 시험지에도 누구보다 빼곡히, 논리 정연하게 서술하여 제출하였다.


그녀와 나는 늘 비교 대상으로, 교수님들은 “얘는 같은 한국인인데 영어 잘 하는데, 너는 왜 영어를 못해? 너 장애가 있는건 아니니?” 라는 말에 많은 굴욕을 당하기도 했었고, 내가 나름 열심히 써냈던 과제를 반 아이들 앞에서 큰 소리로 읽으며 깔깔대며 웃기도 하였다. 

어떤 날에는, 밤새 정성스레 작성한 레포트에 내 이름만 보고는 뒷장은 넘겨보지도 않고 표지에 ‘2점’이라고 채점하는 교수님을 보기도 했다. 10점만점 레포트였다. 



수치심에 나오려는 눈물을 종이 울리는 시간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 꾹 참았다가, 화장실에 도망치듯 들어가 그제서야 소리 없이 쏟아내고... 다시 수업 종이 울리면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자리에 앉기를 밥 먹듯이 하였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나는 바보는 아니었나보다. 



내 영어는 다행히 점점 늘었다. 




발표를 할 때면 거울 앞에 서서 미리 작성한 스크립트를 100번이고 외우고 또 외웠다. 

시험 때만 되면, 귀찮을 만큼 교수님들을 찾아가 괴롭히고 또 괴롭혀서 내가 모르는 문제 유형들을 더 많이 달라고 졸라서 집에서 몇 번이고 풀어보고,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지나가며 던지는 질문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 작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Public Speaking이라는 과목에서는 전체 학년 중 유일하게 만점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쯤이였던 것 같다. 



그녀는 점점 드라마에 나오는 악녀가 되었다.



무려 기말의 60%를 차지하는 조별 발표를 준비하며. PPT를 담당한 그녀는 역시나 나에게 야무지게 잘 만들어진 파일을 넘겨주었고. 나는 역시나 미련하게 슬라이드 한장 한장 빼곡히 무슨 말을 할지 적고, 또 백번을 되내이며 발표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발표 날.  



생전 처음 보는 슬라이드가 내 앞에 떴다. 



멍한 표정으로 서있는 나에게 그녀는 말했다.


'이거 언니 분량인데.. 말해요, 어서' 



그리고 그녀의 이런 비슷한 류의 엿먹이기 프로젝트는 그 뒤로도 많이 반복이 되었는데, 

그녀는 나에게 괴롭힘을 주기 위한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프랑스에 가는데 필요한 서류를 몰래 숨겨놓기도 했고, 사고가 나서 학교에 나가지 못했을 때엔,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는 없으니 편히 쉬라고, 걱정 말라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그녀의 속내는 너무 뻔했다. 차마 입에 담기도 더러운 소문을 학교에 퍼뜨려, 길 가다가 ‘How much are you?’라는 어이 뺨 때리는 질문도 받았다. 



 
그녀는 정말 최선을 다해 나를 괴롭혔다.



 



화가 나는 것이 정상적인 첫번째 반응이다. 

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하고 싶기도 하였지만, 참았다.


억울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도 정상적인 반응이지만, 하나님은 아실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이 울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나는 조용히, 가만히 있었다.



그냥 그래야만 될 것 같았다.


가끔씩 걸려오는 부모님의 전화에 ‘잘 지내니?’라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기 위해서는, 더욱이 그래야만 될 것 같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과거의 모든 고통이 결국 지나가듯, 그 지옥 같았던 학교 생활은 드디어 끝났고, 

나는 외국인 최초이자 마지막 –아직까지는- 프랑스 교환학생으로 선발이 되었고 더 좋은 학위를 취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인도 친구들에게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그렇게나 똑똑한 그녀였지만 시험 자격을 박탈당하여 학년에서 제명을 당했고, 결국 그 해 졸업을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 



인도 친구들이 이 소식을 전하며 나에게 해준 말이다. 그리고 네가 믿는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 것 같다고도 했다.



 



능력이냐, 인격이냐.



인격이다.



나에게 해를 입히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어도, 존경할 수 없어도, 복수가 아닌, 불쌍히 여기려는 마음을 순간순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격이다.



특히나 그 후로 나의 대답은 더욱 더 그러하다.


 

지금 당장은 불공평해보여도, 억울하여도, 내가 꼭 지금 다시 갚아줄 필요는 없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께서 더 잘 갚아주신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인과응보'라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결국 그 누군가, 그 어떤 것이, 꼭 '내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능력이냐, 인격이냐.



조금은 능력이 없어도.


사람이 기댈만한 따뜻한 인격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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