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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더언니 Sep 08. 2015

힘을내요, 슈퍼 길치

나는 공증(?)된 길치이다.

상해에 이사온지 1년이 넘었어도 나는 아직 우리집을 찾아가지 못한다. 답답한 마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길을 잃었다고 말을 하는데... 어디야? 라고 물으면 '몰라'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내 자신이 한심하다. 옆에 뭐가 보이냐고 물어서 보이는데로 '맥도널드'라고 했을 뿐인데 수화기 너머로 화를 내는 상대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매일 가던 치과인데도 걷다보면 이상하게 벌판 비슷한게 나오기가 일쑤다. 분명 우리집으로 가는 골목을 하나 둘 세어가며 오른쪽으로 야무지게 꺾었고 두번째 집의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이상하게 대문 색깔이 다르다....... 그래서 우리집이 어디냐며 전화로 엄마에게 물으며 울기도 했다. 안개가 조금이라도 많이낀 날이면 나는 학교를 찾아가지 못한다. 게다가 학교 안에서까지 길을 잃어 교실을 못 찾아 지각하면 그렇게 민망할 수 없다. 한국 지하상가(특히 부평)에 들어가면 나는 두더지가 되어버리고.... 내려온 곳을 몇 번째 다시 올라가는지 모른다. 아무리 일찍 출발을 해도 지하철은 꼭 반대로 타는 날이 흔하다. 나는 이상하게 사람들이 많이 가는 방향으로 몸이 본능적으로 먼저 움직인다. 이런 나에게도 가끔 약속 장소 설명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생 통틀어 얼마 되지 않는 주옥같은 기회이기에 나는 나름 최선을 다하지만... 돌아오는건 짜증 뿐이다ㅠㅠ 구남 말했다. 내가 길을 잘 찾지 못하는 이유는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해서라고. 그러니 정신을 차리고 2번출구에서 내려서 왼쪽으로 쭉 오라는 엄청난 양의 설명을 하지만.... 나에겐 그 왼쪽이.... 그 쭉이.... 너무나 어려울 뿐이다........나는 아직도 그렇게 구박 받아야만 했던 지난 시간이 제일 억울하다. 지금 생각해도 천하에 나쁜시키. 여튼 그렇게 결국 5분이면 가는 곳이 30분을 걸어도 나오지 않을 때엔 택시를 타는데...


나는 원래 이렇게 릭샤나 택시 기사님들의 기가 막힌 호구가 될 팔자였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인도에서 길치로 살아가기란 분명 치명적이다. 가끔 일찍 퇴근하는 날에는 회사차를 타지 않고 오토릭샤를 타는데 이 기사들은 역시나 나를 '봉'으로 여기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결국엔 다섯배가 넘는 요금을 요구한다.   

아무리 몇 푼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화가 치민다. '속는다'라는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 그 동안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분이 나서 엉엉 울기도 해보고.. 화를 내며 욕도 해보고.. 싸우기도 많이 하고.. 결국엔 나만 속이 뒤집어진다.  


하루는 일찍 퇴근한 김에 회사에서 가까운 슈퍼에서 장을 봐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다. 릭샤를 잡았다. 분명 넉넉잡아 15루피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벌써 40루피나 나왔다. 크게 숨을 들이내쉬며 '그래. 갈 때까지 가보자. 100루피까지 봐줄께' - 이 곳에서 100루피면 엄청난 거리다- 라는 생각으로.. 마음껏 힌디 연습을 한다 생각하고.. 아저씨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오늘 날씨가 많이 덥네요'  

봉으로 여겼던 아가씨가 유창하게 자기네 말을 하니 깜짝 놀랬나보다.  


'어, 힌디 할줄 알아요?'  

나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 이어서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아이들은 몇살인지...  

뭄바이의 물가는 왜이렇게 비싸냐는 둥.. 이런 저런 질문을 해댔다. 내가 묻는 질문들에 입에 거품을 물며 대답을 열심히 하는 아저씨.  


내가 다 알아들을 턱이 없다.  


하지만 아이가 셋이라고..  

큰 아이는 열살 제일 작은 아이 이제 세 살이라는 말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래. 내가 비록 봉이 된다 하더라도..  

이 아저씨는 오늘 아이들에게 장난감 한개 정도는 사들고 갈 수 있겠구나..  

한 동안 거품을 물고 이야기하는 아저씨의 말을 듣고 있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물어본다.  


"당신은 크리스천 입니까?"  

"왜 그렇게 물어보는데요?"  

"난 무슬림인데 당신은 그런 것 같아요. 그렇게 생겼어요."  



  


아저씨는 사실 그 슈퍼마켓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면서 나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녔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제서야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릴라이언스 슈퍼마켓'이 어디있는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 바빴다.  


이렇게 멈추어 있는 동안에도 릭샤 미터의 요금이 계속 올라갔다.  -원래는 올라가면 안되는데 아저씨가 조작한 것임.ㅎ귀엽게 보였다ㅎㅎ- 어찌어찌 묻고 또 물어보아 70루피가 되어서야 도착한 어느 골목.  

여긴 아닌 것 같은데 자꾸 맞다고 우기는 아저씨에 말에 요금을 지불하고 내렸는데 내가 찾는 '릴라이언스 슈퍼마켓'이 아니었다.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그렇게 이미 릭샤는 떠났고, 어둑어둑해져 위험하기 전에 다시 새로운 릭샤를 잡아 집으로 향하는 것이 옳았다. 내가 계획했던건 이게 아닌데, 어쩔 수 없이 다른 릭샤를 잡았다. 우리집 목적지를 알려주니 또 같은 장소를 몇 번이나 돌고 있다.  


빙그레 웃으면서 'Are you happy?' 하고 물어봤다.  

자기도 찔리는지 머쓱하게 웃더니 집으로 곧장 향했다.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그러고 보니 그 날 내가 낭비한 시간과 돈.. 내가 계획했던 '장보기'까지..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된 일이 없었던 저녁이였지만..  


난 그보다 행복했던 나 자신을 기억한다.

참된 도인이 된 느낌말이다.   






'도를 아십니까?'  

'네... 전 이미 도인이에요..'  

'무슨 도... 말씀 하시는거죠?'  


'전 그리스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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