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더언니 Oct 13. 2018

한국 사회에서 거절의 의미란

한국인이지만 한국 사회를 싫어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나로서는 있는 힘껏 견뎌야만 하는 분위기가 너무나 많았다.


한국에서 살아본 적은 없었지만, 알 수 있었다.


아마 어릴 때부터였던 것 같다.

학교에서는 한국인들은 한국인들끼리 꼭 뭉쳐다녀야 했는데,

수업을 단체로 땡땡이 치고 노래방에 가자는 상황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는 왕따를 경험하였고,

그러거나 말거나, 일본 아이 혹은 대만 아이들과 어울리며 밴드 활동을 하는 나를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여자 아이들은 '재수없어.' 라는 말을 나의 면전에 뱉고 지나쳤다.


어느 학교 나왔냐,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 라는 질문은 곧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간을 보는 의미였고,

그 분위기를 파악하는데에는 수 년이 걸렸다.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던 나의 스무살에는, 남자친구의 어머니의 '대학은 나와야하지 않겠나?'라는 말에 한 동안 마음이 무너져내림을 경험하였고,

학회 사람들이 모여있는 어느 뒷풀이에서 나의 직업을 '배우'로 소개하였을 때엔, 나에게 찬구와 물컵도 가져다 주지 않고 함께 말도 섞지 않는 차별을 겪다가도, 누군가 내가 프랑스 명문대 졸업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귀띔해주면, 그 즉시 사람 취급(?)을 해주는 것도 경험하였다.

어느 주재원이 '언어는 얼마나 잘 하세요?' 라는 질문에, '그냥 뭐. 많이 잘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내 기준에 잘한다는 것은 정말 네이티브 수준이기 때문)' 라고 대답하면, 나를 대놓고 깔보다가도 중국에서 석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과, 프리랜서로 동시통역을 한다는 것을 알게되면 갑자기 공손해지는 듯한 느낌을 수도 없이 받았다.


여자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일도 많았는데,

사내 유일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회식 때에 상무 옆에 앉아 술을 따라야 했으며, 회식을 거부할 때엔 섹시댄스르 추고가라는 상사도 있었으며, 출장 중 업무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며 새벽 3시까지 호텔 방에서 나가지 않고 쓸데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런 일도 없는데, 상사가 퇴근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퇴근을 할 수 없다던지, 사안을 결정을 하고 실무자로서 진행해야 하는 일들은 산더미인데, 난데없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는 와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다시 컨셉 페이퍼를 작성하게 한다거나, 확실한 가이드 라인도 없으면서 애매모호한 기준을 주며, 예를 들면, 밑도 끝도 없이 '힙하게 만들어와.' 라는 주문에 절망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물론, 개긴 적도 있다.


'그게 좀 더 정확히 뭡니까?' 라고.


그 결과 나는 참혹한 불이익을 받게 되었다.


차라리 내용으로 까면 이해를 하겠는데, 본인이 준  Time schedule 이라는 제목의 양식에 맞춰 내용을 기입하면, Time이면 time 이고, schedule이면 schedule이지, Time schedule은 어디서 나온 말이냐며. 그저 구리다는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기도 하고, 보고서 문구를 수정, 줄 간격과 오탈자, 여백을 잡는데 목숨을 걸고 찾아내서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인격 모독에 가까운 개망신을 주기도 하였다. 10만원 가량의 인쇄비를 사비로 결제하게 하고는, 지출결의서를 반려시키는 복수도 경험하였다.


그래도, 참았다.


이해할 수 없어도, 적응하고 싶었다.


내가 해외에서 겪었던 말도 안되는 사건에 비하면,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부당하다고 생각이 되어도, '이 정도는 다들 겪는 일이겠거니.' 하고 허허 웃으며 넘어갔다.

그래서 웬만하면 Yes라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여직원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룸싸롱이니 도우미 이야기를 한다거나, 몸에 붙는 원피스를 입고온 날이면 몇 분이고 나를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변태 이사를 견디기 힘들어 대표에게 이야기 했는데,


다음 날, 갑자기 경영난의 이유로 나는 권고 사직을 받았다.


갑자기 실직자가 되니 어안이 벙벙하였다.


나는 맞서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달아나야 하는 것인가.






내가 내린 결론은,


둘 다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그에게 더 이상 맞서지 않은 것은,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애초에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으며,

이 세상은 나 같은 여자 하나 없어진다 해도 별로 상관 없어보였다.


내가 한국 사회에서 겪은 이 일 또한 마찬가지다.


애초에 정상적이지 않은 조직에 억지 노력으로 나의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에겐 당장 살아낼 오늘과 내일이 더 중요하므로,

미워하기 보다는,

맞서기 보다는,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하나씩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옳다고 말이다.




다행히,


내가 아직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리고 내게는 정답이 아니라고 믿었던 한국 사회에 계속 남아있겠다는 의지는,

내가 당했던 경험들이 부당하다고 인정해주고, 앞으로 내가 걸어가려고 하는 길을 지지해주고 옳다고 믿어주는 사람들이 한국에 점점 많아지는 것을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이러 이러한 일들을 겪었고, 그럼에도 참았지만,

저의 윤리적인 가치에 반하는 일들을 겪었을 때에는 '아니'라고 말하였습니다. 라고 솔직하게 이야기 했을 때에, '잘 하셨습니다.' 라고 말해주는 사람들과, 나를 채용해줄 수 있는 조직이 꽤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그래, 나는 사회를 바꾸지 못한다.


나의 목소리는 너무나 작고, 나의 경험들은 어쩌면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상식에 동의해주고, 건강한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는 있는 것이다.



나에게 해를 입힌 사람들을 미워하는데에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럼 나의 억울함은 어떻게 풀죠?  


노자가 이렇게 말했다지. 누가 너에게 해를 끼치거든 앙갚음을 하려 애쓰지 말고, 그저 강가에 앉아 기다려라. 머지않아 그 사람의 시체가 떠내려가는 것을 보게 될지니.



실제로, 그러한 경험을 수도 없이 했다.


나에게 해를 끼친 명석한 두뇌를 가진 그녀는 공부를 그렇게나 잘해도 졸업을 못하게 되었고, -능력이냐 인격이냐 글을 보시면 됩니다.- 나를 추행하려 했던 유명 가수 그는, 사고를 당해 몸을 쓰지 못하게 되었으며, 나쁜 마음을 가지고 나에게 접근하려 했던 모감독 역시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분위기다.





지금 당장은 억울해도.

다 때가 있겠거니.


그렇게 믿으며 오늘을 위로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