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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더언니 Jul 24. 2019

하나의 직업이 다가 아닌 세상이 올까

N 잡러의 세상을 꿈꿉니다.

상해에 있을 때다.


누가 나의 직업을 물어보면

나는 무엇이라 대답할지 애매하였다.





대학원생, 댄서, 배우, 모델, 미술 칼럼니스트, 작가, 블로거, 비즈니스 통역사, 영어 선생님, 피아노 선생님, 국제학교 코디네이터, 뮤지션, 비누 장수.




실제로 이 많은 직업 모두, 

내가 가지고 있는 직업이었다.



나는 학교에 다니며 유학생 댄스 동아리에 가입하였고, 가끔이지만 외부 행사 공연 요청 있을 때 (아주) 작은 보수를 받았다.


끼가 많은 것을 알았던 유학생 사무실에서는 나를 유학생 대표 모델로 추천하였고,


나는 피팅 모델이 되기도 하며, 상해에 위치한 밴쿠버 필름 스쿨에 계시는 피터 (나비효과를 찍으셨던) 감독님의 캐스팅으로 SHVFS의 소속 배우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우연하게 중국의 천만명이 시청하는 예능 프로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고정 패널이 되기도 하였다.


학교의 과제로 인하여, 글을 쓰고 신문에 기고를 하며 나는 미술 칼럼니스트가 되었고, 동시에 작가라는 타이틀도 얻게 되었으며,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었던 나의 블로그는 어느샌가 파워블로그가 되어, 나에게 상해 맛집 포스팅을 의뢰하는 식당들이 줄줄이 생기게 되었다.


처음 상해에서 먹고 살 방법이 막막하여 한인 커뮤니티에 '영어 과외합니다'라고 올렸던 작은 광고가 어머님들 사이에서 인기글이 되어 나는 국제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영어 선생님이 되었고, 아이가 나의 수업을 좋아하고 잘 따르자 어머님들은 나에게 국제 학교 코디네이터 일을 이따금씩 맡기셨다.


국제 학교에서 그 모습을 보게 된 어느 아버님께서는 나에게 비즈니스 회의 통역을 맡기셨고, 나를 찾는 크고 작은 기업들이 많아졌다.


상해에서 제일 큰 외국인 교회에서는 흑형들과 백인 언니 오빠로 구성된 찬양팀에 유일한 여자 키보디스트이자 동양인으로 세션을 맡았는데, 그게 또 나의 밥벌이가 되어 자신의 아이를 가르쳐 달라는 부모님이 계셨고, 나는 또 그렇게 피아노 선생님이 되었고 매주 정기적으로 호텔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취미로 시작한 나의 비누 덕질은,  한 달에 한번 열리는 외국인 플리마켓에 참여하고, 또 신기하게 입소문이 퍼져서 한국인 마트에서도 나의 비누를 팔겠다, 식당에서도 맞춤형 초를 제작해달라, 유아용 비누, 탈모 비누 등등 점점 확장을 하게 되어, 그렇게 나는 비누 장수가 되었다.





참 써놓고 나니 많기도 하다.


이렇게나 많은 일들을 하고도,

내가 사랑하는 반려묘와 늦장을 부리며 나는 10시에 기상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들으며 신나게 청소하고 요리할 수 있었으며, 식물을 가꾸고, 전시를 보러 다니고, 발레도 배우고, 이따금씩 살사 파티에 다니며 참 풍요롭고 여유로운 일상을 보냈었다.



말로만 듣던 프리랜서의 삶은 이런 것이구나,


"사람이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를 몸소 체험하던 지난 4년이었다.







지금은 평범한 중소기업을 다니고 있다.


물론, 지금도 중국어와 영어로 해외 바이어와 소통하고 값을 흥정하며, 글 쓰는 것은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어 입사 후 10개도 넘는 정부 지원 프로젝트에서 성공적으로 투자를 받기도 한다. 블로그를 해왔던 경험 때문인지, 마케팅과 기획안 및 제안서를 작성할 때 알고리즘을 쉬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으며, 상품 설명에 대한 콘텐츠 디자인의 업무도 종종 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가끔 그때를 꿈꾼다.

훨씬 가짓수가 적은 일을 함에도,

나는 매일 아침 7시 40분에 어김없이 일어나야 하며, 지금처럼 몸이 다쳐 침대에 누워만 있을 때에는 글을 다고 해서 '작가'라는 또 다른 직업이 나를 대신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지금 해외 비즈니스 팀의 업무를 맡고 있는 회사원이다.





비누도, 춤도, 연기도,


하고 싶은 모든 것이 나의 직업이 되었던 그 날들,

그때의 N 잡러였던 프리랜서 생활이,





오늘은 좀 그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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