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더언니 Jun 22. 2018

스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다

기획자가 되었습니다.

대학을 나와 회사를 다녀보았고, 평범하게 결혼을 꿈꿔보았었다.


몸이 아팠고, 회사를 그만 둔 뒤 10년을 알고 지내왔던 그에게서 결혼 전 더 이상 돈을 벌지 못하는 이유로 이별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마음대로’ 살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열심히’가 아닌, 하고 싶은 모든 것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음악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어 아직도 악보를 볼줄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피아노를 치고 있고, 그림을 그리지 못하지만 미대생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어느 언어를 똑바르게 혹은 완벽하게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글을 쓰고 지내며, 내가 걸어보지 않았던 다른 삶의 길을, ‘배우’라는 직업을 통하여 맛보고 행복해하고. EU나 ASEAN과 같은 국제 기구의 짧은 프로젝트의 일을 맡을 때면, 흠뻑 일에 젖어 있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 날, 훌쩍 떠난 여행에서 만난 지나가다가 춤을 추는 사람의 몸짓이 행복해 보이면, 함께 발을 맞추어 춤을 추기도 하고, 동네 꺄르르 웃으며 지나가는 아이들이 너무 예뻐보일 때면 그냥 이유 없이 수퍼에 데려가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도 하였다.


어딘가에 묶여야 하는 회사를 굳이 다니지 않고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햇볕이 가득한 테라스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커피를 마시고 여유를 부리더라도 먹고 살만한 방법은 충분히 있었으며, 지금 당장 내옆을 지켜주는 반려 동물과, 작은 텃밭의 식물과, 가족들과 친구들 만으로도 내 인생은 꽤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토록 좋아하는 상해에서, 내가 꾸며둔 예쁜 공간에서, 요리를 하여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상처 많은 나를 사랑한다는 그 남자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지금처럼 나의 일상을 따뜻하게 이어나갈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렇게 오랜만에 안정적인 삶을 살던 나에게,

별 일 없는 나날을 보낼줄로만 알았던 나의 삶에, 계획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예물도, 식장도, 스드메도, 다 정해놓고 결혼 날짜를 코앞에 두고,


나를 사랑한다는 그 남자의 모든 것이,

정말 이름 빼고 모든 것이.

그의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그의 출생지도, 그의 배경도, 그의 학벌도, 그의 친구도. 정말 그의 이름을 뺀 모든 것이.


드라마와 같이 거짓임을 알게되었다.


그의 정체를 알게된 후, 그는 나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나는 너를 반드시 죽일거야.’



나는 그대로 그 모든 것을 버려두고, 내가 좋아하는 그 모든 것,

내 공간에 옷걸이를 걸고, 아침에 식물에게 물을 주고 인사하며,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청소를 하다가 피아노를 치고 싶으면 쪼르르 달려가 한참 동안 마음을 쏟아붓는 그 모든 순간을 버려두고 한국에 도망 왔다.


크고 많은 일들을 인생에서 겪어왔고, 그 때 마다 나는 덤덤했지만, 한 동안 바람이 대문을 스치는 소리에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이 깨기도 하였고, 어디선가 부산 사투리가 들려오면 눈물부터 나기 시작했다.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인생, 나는 괜찮다고 정의했던 이 인생이.

저 멀리 브라질에 계셔 나와 연락이 잘 닿지 않는 부모님, 가끔씩 만나는 내 친구,

내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도, 당장 누군가가 나를 찾지 않는 나의 환경이. 나의 인생이. 그 누군가에게는 타겟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 있겠니.’ 라고 말씀하셨던 나의 부모님께.

“두고 봐, 난 잘 살거야.” 라고 소리쳤던 나였지만,

그 일을 겪고난 뒤, 나는 나를 지켜줄 무엇이 필요했다.


‘조직’이라는 것을, 너무 무서워하는 나이지만, 나와 맞지 않다고 ‘정의’를 내렸었지만. 나는 그 정의를 벗어나 나 자신을 바꾸는 결단을 내렸다.

변화와 성장은, 눈에 보이는 그 무엇, 내가 원하는 꿈을 찾아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속한 가장 기본적인 자리,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을 위해 나는 최소한 나의 존재가 안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임을 깨달았다.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선 것이다.


-   ‘대부분의 우린 내 사랑하는 이들을 차마 밟고 넘어설 수 없어 끝끝내 스스로 꿈을 내려놓고 만다. 하지만 괜찮다. 얼마 되지도 않는 드라마틱한 성공담에 기죽어 스스로 좌절과 패배감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꿈만큼이나 사람도 소중했을 뿐이다. 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나를 바꾸는 결단, 꽤 괜찮고 폼나는 일이다.’ – 응답하라 1994 中





나는, 내가 그렇게나 적응하지 못했던 ‘한국’ 이라는 나의 나라에서,

내가 정답이 아니라고 정의했던 ‘조직’에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변하고 있다.










PS. 전에 썼던 글이 저도 모르게 메인으로 올라왔었나 보네요.


댓글은 다 읽고 있으나, '정상이니?'라고 묻는 저의 기준은, 이런 정상적이지 않은(약쟁이, 일부다처제, 분노조절장애 등)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해외에서 오래 살며 많은 일을 겪은 저의 주관적인 경험을 토대로 작성된 글입니다.


정상으로 보여도, 처음부터 물건을 집어던진다거나, 약을 한다거나, 그런 사람은 없으니까요. 조금 빨리 알았더라면 좋았을텐데. 곰탱이처럼 미리 알지 못한 저이지만, 마음을 다하여 글을 썼습니다.


어떤 비난이나 비판을 받는다고 해도, 이 글을 읽는 언니는 제가 받은 상처를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여전히, 앞으로도 상처를 가득 안고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글을 쓰겠습니다.



저의 매일의 꿈은,



그 어떠한 형태로든 '어제보다 더욱 사랑' 이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 사회에서 거절의 의미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