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여행이란,
그 곳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최대한 한국인이 가지 않는 어느 볼품없고 한적한 동네에서 나의 낯선 시간을 붓는 것이다.
이미 꽉 채워진 스케쥴에 따라 관광명소나 맛집을 찾아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다.
화창한 어느 날,
샹드리제에 빼곡히 차있는 어느 카페에 앉아, 그 사람들이 마시는 커피를 마시고, 내가 가져온 한국어 책을 읽다가, 어느샌가 옆 테이블에 앉은 어느 미국인의 커피 주문을 나도 어설픈 불어로 도와주며 Hi, where are you from? 의 인사를 하는 것이다.
꼭 맛집에 찾아가지 않고, 현지에서 장을 보고 게스트 하우스에 모인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내가 만든 요리를 나눠먹는 것이다.
불어오는 더운 바람을 맞으며 스쿠터를 타고 여기저기 마음껏 달릴 수 있고.
어느 식당에 가서도 옆 테이블에 앉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물어보고, 그렇게 친구가 되고.
비키니를 입고 아무렇게나 마트에 들려 맥주를 사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Topless로 해변에 널부러져 있는 언니들을 응큼하게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옷이 필요하면 큰 보자기를 대충 휘휘 감고 다니면 된다.
신발이 필요하면 낙타가죽을 내려치며 열심히 신발을 만드는 아저씨에게 가서 짜이를 얻어마시며 신발 만드는 것을 구경한다.
실컷 물에서 놀다가 해가 저물면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도 해변가에 삼삼오오 모여 비치볼 혹은 부메랑 던지기 놀이를 한다.
더 어두워지면 모닥불을 피고 누군가는 기타를 치고. 북을 치고 나는 노래를 부른다. 이스라엘에서 온 언니들은 그 리듬에 맞춰 봉을 돌리며 해변을 무대삼아 뇌쇄적인 춤을 춘다.
다음 날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기차가 연착되어도 괜찮다.
그 자리에서 배낭을 배고 누워 책을 읽고. 그렇게 나른나른 또 잠이 드니까.
그렇게 몇 날 몇 일을 아무 생각 없이 보낸다.
바이야! 찌니 왈라 디지예~ (아저씨! 단걸로 주세요.)
끼뜨나 짜이해? (몇개 줄까?)
도왈라 짜이해. 끼뜨네까? (두개 주세요~ 얼마에요?)
띤쏘루피 (삼십루피.)
그렇게 낯선 곳에서 현지인들 속으로, 혹은 나도 다른 이방인들이게 또 하나의 배경이 되어주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천천히,
사진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그만의 공기를 다시는 잊지 않을만큼 충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나는,
몽롱한 정신에 붓는 진한 커피와 함께, 한 동안 멀리했던 과거의 시간과 화해하는 '가끔'이라는 시간이 좋다.
사람들은 날 히피라고 불렀다.
맞다.
나는 히피였다.
그리고,
단지 여행이라고 불리기엔 아까운,
나의 찬란하게 게으른 지난 여정이 몹시나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