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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더언니 Oct 08. 2015

나우루이야기

복받는것보다중요한것


나우루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다. 바티칸씨티, 모로코 다음으로 작은 나라.

차로 20분이면 다 돌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인구는 9000명, 적을 때에는 재생산 한계선인 1500명까지 내려갔다.

지리적 위치 때문인지, 나우루는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철새들의 중요한 기착지였고 수 천년의 세워동안 쌓인 새들의 배설물은 높은 순도를 가진 인산염, 즉 비료를 만들어 순도 100%에 가까운 인광석인 생산했다.


예전 나우루는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아주 중요한 봉으로, 그들은 원주민들에게 이익의 2%정도의 아주 적은 급부를 주고 엄청난 양의 인광석을 캐내어갔지만, 나우루의 4000여명의 주민들은 1968년에 독립하고 인산염 산업을 국유화 하였다.

나우루의 미래는 아랍 산유국과 같은 풍부한 매장 자원에 의하여 국민 모두가 부유하게 살 수 있는, 완벽한 낙원 그 자체가 될 예정이었다.


한 동안은 그랬다.

적어도 인산염이 고갈되기 전까지는.


나우루 정부는 인산염 산업의 이익을 국민들에게 분배했다.

1970~1980년대에 나우루는 세계에서 일인당 소득이 가장 높은 국가에 속했다.

국민 대부분은 정부 기간에 고용되어 있었는데 일을 한다기 보다는 실은 에어컨 바람을 쐬기 위해 사무실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일을 하지 않아도 국가에서 돈을 주었기 때문이다.

인광석의 채굴은 주변의 다른 섬나라들과 중국인 노동자들이 와서 했다.


최신식 설비를 갖춘 병원이 들어서고 국비로 자녀들을 호주로 유학을 보냈다.

남태평양 전역에 취항하는 항공사(에어나우루)가 설립되어 방만하게 운영되었으며 어떤 때에는 승객 한 두명을 태우고 비행하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전자기기, 자동차, 보트들이 섬에 들어왔다.

나우루 사람들은 작은 섬을 고급차로 하루에서 몇 바퀴씩 돌아보며 인생을 즐겼다.

차가 고장 나면 그냥 그 자리에 버리고 왔다.

1970년대 서구 사회에서도 한 가정에 차 한 대밖에 없을 때에도 나우루의 어떤 가정에서는 6~7대씩 차량을 소유했고,

축제 때 휴지가 없을 때에는 달러를 사용하기도 했다.

한 경찰 서장이 타던 람보르기니 자동차는 차체가 너무 낮아서 야자 열매에 치여 호주에 헐값에 팔아버리기도 했다.


정말 헐....

하지만 그렇다고 넋놓고 흥청망청 쓴 것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인산염이 고갈될 미래를 준비하여 호주와 같은 1세계의 부동산에 과감히 투자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나 그렇듯, 돈 주변에는 사기꾼들이 꼬이는 법.

나우루도 국고를 엄격하게 관리하지 못하여 상당한 국부가 허공에 날아갔다.

인산염 생간이 하향세를 이루고 국가 재정에 압박이 오자, 정부는 국유재산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전의 소비 성향을 고치지 못했고, 집안 청소하는 방법도, 요리하는 방법도 다 잊어버렸다고 한다.

원래 어업으로 먹고살던 나라에 어선들이 사라졌고, 심각한 무역 불균형은 재정 파탄으로 이어졌다.

 



이제 이 섬나라가 사는 법은 이렇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한 500명의 보트 피플들이 침몰하는 배에서 구조를 요청했다.

난민들은 자신의 미래를 호주에서 찾고자 했지만 호주의 보수당 정권은 단호히 거절했다.

대신 호주 정부는 나우루 정부에 난민들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상당한 재정적 지원을 약속했다.

나우루는 이제 섬의 일부를 난민 수용소로 만들었고, 망명자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평양 한 가운데 섬에서 기약도 없이 몇년 씩이나 썩게 되었다.


이 섬나라가 사는 법은 또 이렇다.

일본은 국제포경금지 규약을 부수기 위해 돈으로 태평양 섬나라들을 매수했다. 나우루도 기꺼이 일본을 위해 손을 들어주었다.

2006년 포경금지 모라토리엄은찬성 33표 반대 32표로 철회되었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 당시 나우루를 점령했고,

1200명의 주민을 먼 트루크 제도로 강제 이주시키고 남은 500명의 주민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했던 나라다.


이 섬나라가 사는 법은 또한 이렇다.

중국에 의해 유엔에서 독립국가로 인정받을 수 없게 된 대만 역시 남태평양에서 친구들을 찾았다. 대만은 재정 지원의 대가로 나우루를 오랫동안 동맹으로 곁에 둘 수 있었지만 중국이 더 큰 금액을 제시하면 동맹을 잃어야 했다.


이제 나우루는 세계에서 물리적으로 가장 고립된 곳 중 하나이며 GDP가 연간 3700달러(2006년 기준)가 채 안되니...

세계 빈곤국 중 하나가 되었다.

오직 한대의 항공기가 비정기 적으로 운항하며, 항구는 아이들의 수영장으로 변했다.

석유와 전기가 끊기는 날이 많고, 담수화 공정으로 생산되는 물도 부족할 때가 있다.

은행에는 돈이 없고, 인산염 광산 등의 사회기반 시설은 녹이 슬었으며, 주택과 자동차는 수리를 못하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나우루 국민들은 과거 풍요로운 식습관과 운동부족 때문에 상당수가 만성적인 성인병의 위험에 처해있다.

국민의 78.5%가 비만(그 다음이 통가,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미국 순이란다) 이며 당뇨병은 위험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부패한 전직 대통령들의 상당수가 당뇨병으로 사망했다. (당뇨는 남태평양 군도에 일반적으로 퍼져있는 질병이다)





내가 기억하는 나우루는, 어릴 적에 집에 빼곡히 꽂혀져 있는 세계 지리 백과사전 시리즈 중에 짤막하게 소개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가 다였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해변에 웃통을 벗은채 물고기를 입에 물고 있는 천진난만하게 웃는 소년도 얼핏 기억이난다.

그래, 어쩌면 그 것이 나우루의 때묻지 않았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처음 인류가 남태평양의 외딴 섬에 거주하기 시작했을 때에 그곳은 정말 먹을 것이 지천에널려있는 작은 낙원이었을지도 모른다.

풍성한 야자나무 숲과 열대어들과 갖가지 새들이 날아드는 곳, 어쩌면 그것 역시도 근대의 판타지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의 그 판타지들은 지금의 나우루가 처한 최근 30~40년의 역사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야기 출처 :

https://m.blog.naver.com/lacommune/130086685689





나우루. 그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수 천년 동안 쌓아왔던 축복이 고작 30년만에 끝나버린 저주로 변하였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앞두고, 철없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의 마지막 남을 인생을 다해 간곡히 부탁하였다.


'저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망할까 심히 걱정되니..'


이 모세의 한탄은 실로 나우루를 두고 한 말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사람들은 고난이 있을 때 망하지 않는다. 잘 먹고 잘 살 때에 썩어가며 부패한다.


누구나 복 받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눈에 보이는 형통을 찬양하지만..

​정작 자신이 그 복을 받을만한 그릇인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나 이집트에서의 탈출을 원해서, 홍해를 가르면서까지 극적인 기적의 맛보았으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변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렇게나 싫어하시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하였고, 여전히 철 없이 불평하였다.


부끄럽지만, 나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나 원해서 기도하고 응답받았던 모든 좋은 것들이 내게 다가 왔을 때,

나는 내적인 바닥을 한 없이 쳤으며, 그 복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고 내 멋대로 살았다. 학비가 채워질 때까지 마음을 졸이며 하나님을 눈치보다가, 정작 학비가 채워져서 학교를 다니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마음 껏 놀았다. 프랑스에 가기를 그렇게나 원했으면서도 정작 가서는 하나님과 상관 없는 나날을 보냈다. 상해에 그렇게나 오길 바래서 왔으면서도.. 지난 나의 1년 역시 크게 요동을 쳤다.


이를 악물고 애를 쓰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지만 나는 여전히 연약하다.

여전히 넘어지며, 여전히 지금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누구나 머리로는 '나의 문제는 이거야, 이 것만 고치면 돼..'라는 것을 알지만 안다고 고쳐지는 것이 아닌 부분이 누구에게나 있다.

(나는 그 것을 중독이라고 부른다.) 그 연약함.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되는 그 것.


그것으로 인하여 나에 대한 '무한한 긍정'은 나에 대한 '끔찍한 절망'으로 바뀌게 되고, 그 실망과 절망이 그럭저럭 받아들여지고 바뀌게 될 때,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위를 보게된다. 그리고 '얼마나 많이 넘어지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점점 '얼마나 빨리 일어나느냐'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타원을 그리며 성장해나가고 있고...

 

마침내 복 받을만한 그릇으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사람들은 자신이 풍요롭지 못하다며 떼를 쓰지만.

나는 안다. 어쩌면 나에겐 풍요롭지 않았던 나의 삶 자체가, 배고팠던 지난 모든 과거의 기억들이..

하나님이 망하지 말라는 세심한 배려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상형이 뭔가요?'

누가 내게 물었을 때, 나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나보다 고생 많이 해본 남자요. 그래서 존경할 수 있는 남자요."


그 절망을 많이 맛본 사람. 그래서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안되기 때문에 위를 볼 수 밖에 없는 사람.

풍요롭지 않지만 오직 그 분 때문에 풍족하게 살 수 있는 삶. 그런 사람을 늘 원하고 있지만...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 함정^^^


눈에 보이는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보다, 그 복을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

그 것은 나의 그릇을 넓히는 것이다.

마치 사과 하나를 달라고 엉엉 울며 떼를 쓰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 나무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같다.



이 나우루 이야기는 내일 우리가 들어갈 저 가나안 땅을 앞두고, 모두에게 말씀하시는게 아닌가 싶다.


역시 주님은 날 너무 사랑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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