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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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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더언니 Mar 09. 2021

호구의 나날

오늘도 잘 웃는다.


그리고 대부분 친절하려고 한다.



누군가 앞에서 나를 위해 문을 잡고 기다리면, 얼른 다시 잡고 고맙다고 인사한다.

버스를 탈 때에도 기사님께 인사하고,

누군가 길을 물어볼 때에도 최대한 친절하게 대답해준다.

당근 거래에서 3만 원에 올린 새 제품을 다짜고짜 만원으로 깎아달라는 말을 들을 때에도 (화는 나지만)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배달음식을 시켜먹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도 웬만하면 5점을 준다.

정 아니다 싶으면 사장님께만 보이게 의견을 쓰는 것으로 소심하게 나의 할 말을 한다.



사람은 매일 무엇인가를 심으며 살아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친절을 베푸는 것이 언젠가는 나에게 복이 되어 돌아오리라 믿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웃으며 이야기하여 상대방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볼 때,


나는 그것이 너무나 좋다.






그런데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친절하지 않다.



사정이 있다고 해서 믿어주고, 또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 다였는데 사기를 치는 사람도 있고,

잘 웃으면 그래도 되는 줄 알고 무례하게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


도저히 상식적이지 않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은데,

직장을 다니며 지냈던 원룸을 이제야 빼게 되어 인터넷에 매물을 올렸는데, 약속 시간을 잡고 스케줄을 비워놨는데 잠수를 타는 사람이 태반이고, 새벽 두 시에 문자가 와서 지금 집을 보러 가도 되냐는 사람도 있었다. 그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고 싶은데 건물주에게 허락을 받아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나의 친절과 호의를, 줄곧 권리로 생각하고, 이용한다.



웃으면 괜찮은 줄 알고 자꾸 선을 넘는다.








사실, 괜찮지 않다.


나라고 상처 받지 않는 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는, 이런 나를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호구 같은 나를,


남에게 피해 입히지 않으려 그래도 조금은 더 생각하려는 나를.

그리하여 스스로 더 떳떳하기 위해 조금 더 능력을 쌓아가려는 나를.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에 못 미친다 하더라도,

나를 좋아하는 '내가' 남잖아.




손해 보는 것.

당장 지는 것 같은 이 게임을,

나는 나만의 방식대로,


그냥 이대로 살아가려고 한다.








너, 속이며 사는 사람아.


인생을 남에게 기대어 사는 사람아.

내 눈에 흐르게 했던 그 눈물을 보고 기뻐하지 말아라.

당장은 네가 이기는 것처럼 보여도,

당장은 잘 넘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떳떳하지 못한 인생,

숨이 멎을 때 그 인생을 함께 울어주는 이가 없으리니.

 

네가 가진 것이 가진 것이 아닐 것이고,

네가 얻은 모든 것이 다 헛될 것이니.


너, 속이는 사람아.


나의 눈물은 멎겠지만,

너는 정녕 피를 흘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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