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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더언니 Feb 11. 2022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그림 : 김석중 작가 : 일상 - 생성>

내가 아주 애기일 때부터, 나는 음악이 나오면 누구보다 빨리 반응했다고 한다.


엄마 등에 업혀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도 기사 아저씨가 틀어주는 라디오 트로트 소리에 신나게 춤을 추며 엄마 등에 토를 하고,

아침에 자다가도 티브이 음악 소리에 일어나서 몸을 흔들었다고 한다.



한글을 배우기 전부터, 아니. 말을 하기 전부터,

누가 알려주지도, 배우지도 않았는데 장난감 피아노로 동요 멜로디를 따라 쳤고,


한글도 '가나다라'가 아닌, '도레미파'로 배웠다고 했다.



나는 이것이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재능인 줄 일찍 알았다.

그래서 '나는 꼭 음악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입학 후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진로를 일찌감치 '연세대 작곡과'로 정하고,

서울 예고 입학을 위해 화성학을 배우며 피아노 실기 시험에 필요한 곡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배우면 배울수록 너무나 괴로웠던 것이다.

나는 분명 음악을 좋아하는데,

왜, 나는 지금 음악과 상관없는 것 같은 이것을 배우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론을 배우고 그것에 맞춰서 곡을 쓰고,

규칙에 맞춰서 곡의 진행을 I- IV - V - I 형식으로 끝내야 한다거나,

증 4도, 단 3도와 같은 화성학을 머리로 계산을 해서 표현을 하려고 하니 정말 짜증이 났다.



피아노를 치면서도, 왜 여기에서는 피아니시모로 표현을 해야 하는지,

나 같으면 이걸 변형해서 포르테로 표현하고 싶은데..라는 생각에 마음대로 치면

선생님은 손을 내려쳤다.


"뭐 하는 거야!!! 악보대로 쳐야지!!"



.

.

.

그렇게나 좋아했던 음악이 싫어졌다.


매일 피아노를 끌어안고 살았었는데, 너무나 꼴도 보기 싫어졌다.


억지로 배워서 하려니 도무지 신이 나지 않았다.


분명 나는 이것을 제일 잘하는데. 잘하는 것도 잘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니 무기력해지고,

나는 도대체 무엇을 잘하나. 회의감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날 우리 가족이 중국으로 이민을 간다는 말에 미련 없이 '그래!' 하고 털어내 버렸다.



그 뒤로 내 생에 음악을 전공으로는 생각도 하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전공을 하는 나의 또래 친구들은 다들 손목이 부러져라 피아노를 열심히 치고 또 치는데..

나는, 그 정도의 열정이 없으니까.

그래 안 할 거야. 나는 그 정도의 열심은 없어. 그런 애들은 따로 있는 거야.라고 마무리지었다.






그 뒤로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고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였다.


나는 비엔나 어느 공동 화장실에서 눈물이 났다.


그곳에는 공용 화장실에도 클래식이 흘러나왔는데,

모차르트의 모국이라서 그런지 모차르트 교향곡이 흘러나왔다.


양변기에 앉아있는데,

힘든 삶을 담담하게, 최대한 밝게,

아무렇지 않은 척 음악으로 말을 했던 모차르트의 마음이 느껴졌다.


내가 이전에 "왜 이건 포르테예요?", "여기서 왜 리타르단도로 끝나야 하죠?"라고 물어봤을 때,

그 어떤 선생님도 대답해주지 않았었는데..


그곳에 직접 가니까. 그 마음이 너무나 전해졌다.


간절한 마음, 아픈 삶을 음악이라는 반창고로 붙이고.

별일 아닌 듯 밝게 나아가려 했던 그 사람의 인생이 들려오는 듯했다.


"아, 그래서, 그래서. 그 마음으로, 모차르트가 이 곡을 이렇게 썼구나."라고 느껴졌다.

정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그랬다.


인생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환경을 겪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 것은 어김없이 피아노였다.


그렇게나 싫다고 생각하며 털어버렸는데,


그때마다 피아노가 너무 보고 싶었다.


집에 피아노도 없을 때가 많아서 어두컴컴한 교회에 들어가 피아노를 쳤다.

그마저도 형편이 안될 때엔 눈을 감고 상상으로 피아노를 쳤다.



이제까지 내가 배우고 쳤던 클래식이 아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 피아노로 쏟아져 나왔다.


노래에 내 마음이 담겨있으면 그것이 나의 음악이 되었고,

꾹꾹 눌렀던 감정을 하나하나 쏟아내며 몇 시간이고 울며, 웃으며 피아노를 쳤다.


억지로 연습을 하라고 해서 피아노를 쳤을 때엔 한 시간도 죽을 것 같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피아노를 칠 때면, 밤을 새도 전혀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렇게 음악의 끈을 간당간당 놓지 않고 살다가,


상하이에서 평생 음악만 했던 사람들과 함께 합주를 하게 될 기회가 많아지게 되었다.


누구는 악보를 열심히 보며, 누구는 악보를 열심히 외워서.

나 같은 경우는 악보를 못 보니까, 그냥 귀로 들리는 대로 물 흐르는 듯이.


"와, 방금 네가 쳤던 그 코드 뭐였어?!"라고 물으면 나는 내가 지금 방금 쳤던 그 코드의 이름조차 몰라서

창피할 때가 많았지만.


어쨌든, 같은 공간에서 같이 음악을 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비록 그들만큼 나는 인생을 바쳐 음악을 하지 않았지만,

고통스럽게 죽어라 연습을 하지도 않았고,

그들만큼의 지식은 없지만,

나는 야매로 내 마음대로 피아노를 치지만.


나는 분명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확실히 음악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또한 나처럼 피아노를 듣고 칠 수 있는 사람은 너무나 드물어서,

나는 그곳에서 참 유용한 사람이 되었다.


깊지 않은 얕음으로,

오히려 클래식, 재즈, 뉴에이지, ccm까지 커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왜'라는 질문을 다른 사람보다 많이 한다.


이해를 하지 못하면 하기 싫어하고,

"그냥 해~"라고 하면 버티게 되고,

열정을 쏟다가 멈추는 경우가 많다.


꼭 내가 알아야 직성이 풀리고,

데이고 화상을 입고 몸에 붕대를 칭칭 감아보고 나서야.


"와 이거 진짜 불 맞아요. 졸라 뜨거운 거 맞아요. 이거 보세요."

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똑똑한 사람은 그것이 불이라는 것을, 뜨겁다는 것을,

불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멀리서만 봐도 '피해야지.' 하는데,


나는 그런 똑똑한 사람이 아닌 미련한 사람이라,

"왜???"라는 질문에 대답을 해주지 않으면 곧 흥미를 잃어버린다.


그렇다고 아예 끈을 놓는 것은 아니다.


내가 피아노를 놓았다고 생각했지만 놓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놓지 않고 간당간당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왜'라는 것에 대해서 어떤 계기로 건드리고, 파고, 또 이해가 되기 시작하면,

또 다른 차원의 내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내가 가진 경험이 또 다른 시야, 또 다른 능력이 되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내 인생에서 완전히 놓은 것은 없다.


뭐든 멈추지 않겠지.



음악도,

미술도,

글쓰기도,

신학도,

언어도,

사업도,




그리고 지금 고군분투하는 마케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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