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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더언니 Sep 03. 2015

고통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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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고 싶었다.
 
 
쉴 새 없이 들락거리던 페북을 탈퇴하니, 900명 가까이 되었던 친구들의 목록은 그렇게 한 순간에 사라졌다.

온갖 예쁜척 귀척으로 사기성 짙은 나의 카톡 프사는 이내 사라졌고, 나는 모든 단톡방에서도 나왔다.
 
 
그렇게나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발랄했던 내가, 모든 연락을 다 끊었다.
 
아무도 모르게 지내고 싶었다.
 
 
 
 
#
하지만 교회는 갔다.
 
대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교회.
 
 
설교는 한국 교회라면 흔히 들을 수 있을법한 번영의 하나님, 믿고 기도하면 복을 줄거라는 내용이었는데,
​나는 목사님의 설교보다도 등 뒤에 십자가만을 뚫어져라 보며 한참을 울었다.
 
목사님의 설교보다도, 초라한 십자가가 나에게 더 큰 위로였다.
 
끝나고 사람들이 모여 서로 기도제목이 무엇이냐고 묻는데,   
 
사람들은 취업준비,
시험 합격,
나를 짜증나게 하는 상사가 나를 괴롭히지 않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제목을 내놓았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조용히 말했다.  
 
 
“살다 보면 죽고 싶을 때가 가끔 있는데, 지금이 그래요.
하는 일마다, 손대는 일마다 기가 막히게 막히고, 내가 마지막까지 믿었던 단 하나의 그 것도 어이없게 떠나가더라구요.
​이제껏 늘 떠돌아 다니느라, 아니 어쩔 때엔 쫓기느라 짐도 풀지 않고 한 달에 한번 이사를 갈 때도 있었고,
1년을 살았다면 정말 오래 산거에요.
​지금 내 욕심이라고는, 이젠 그 삶이 지긋지긋 해져서...
​박스가 아닌, 옷걸이에 내 옷을 걸고, 내 공간에 내 물건이 오랫동안 있는 것을 보는 것인데.... 그게 그렇게나 큰 욕심인가요?”
 
 
 
 
 
 
 
순식간에 사람들은 조용해졌다.
 
 
 
내가 이런 실례되고 사회성 없는 발언을 하다니.
 
 
 
그도 그럴 것이,
 
예고 작곡과를 준비하던 나에게 난데없이 중국 행, 돈이 없어서 학교도 다녔다 말았다 하길 밥 먹듯이 하고, 수시로 이사하고, 그 와중에 먹고 살려고 4시반에 일어나고, 존나 안 해본 일 없이 닥치는 데로 다 해보며, 잡상인 취급 당하고 온갖 사람에게 무시와 수모는 다 당하면서, 결국 9년만에 대학 졸업장이라는걸 가졌는데, 직장 다니다 아프고, 꼴랑 가졌던 몇 푼 없어지고, 일도 안 구해지고, 또 존나 어이없게 파혼당하고,
 
참나, 그래도 뭐 좀 해보겠다고 편의점에 가서 알바를 하려고 해도 어제 사람이 찼다고 빠꾸를 먹으니.
 
 
나는 이런 내 인생에 대해서 누군가 에게는 말해야만 했다.
 
누군가 작정하고 나를 이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가서 엿 먹이지 않는 이상 어쩜 내 인생이 이렇게나 기구할 수가 있을까.
 
 
 
나는 정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 잠을 자는 것 뿐이었다.
곰팡이가 가득한 어두컴컴한 방 침대 위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시 눈을 떠서 한참을 다시 울고... 그렇게 눈물이 배개를 적셔 울다 지쳐 잠들기를 몇 달은 한 것 같다.
 
 
심각한 무기력증과 우울증으로, 먹는 것도, 화장실을 간다라는 것도 내게는 사치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밖에 나가 길을 걸을 때면 자연스럽게 차들이 나를 치는 상상을 하게 되었고, 눈 앞에 보이는 모든 높은 건물들의 꼭대기가 얼마나 포근해 보였는지 모른다.
 
 
 
 
 
 
#
한 마디로 제 정신이 아니었다.
 
스물 세살만 같았어도 이런 나를 억지로 부정하고 억지로 극복하고 벗어나려고 부던히 노력하고 최대한 밝으려고 노력 했겠지만.
 
그 때 내게는 그러할 힘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제 정신이 아닌 채로 실컷 울었고, 나는 실컷 어두워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그래, 나는 어쩔 수 없어.. 이 끔찍한 내 모습이 진짜 모습이구나.'
 
 
진저리 치게 싫은 내 모습을 '아니야, 이건 내가 아니야. 라던 노력을 멈추고, 포기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한계를 인정하기 시작했던 그 때 부터,
 
나는 내 안의 떠오르는 슬픔이라는 감정들을 관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또 다른 어두운 나'로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그 때부터였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슬픔과 고통을 피하지 않고 묵묵히 견디되, 나를 행복하게 하는 사소한 것들이 눈에 더 크게 보이게 되었다.
 
날씨도, 꽃도, 바람도, 하늘도, 그냥 나를 위한 것이라고 내 멋대로 생각하게 되었고..
지나가는 아저씨가 수레를 끌고 가면 같이 밀어주기도 하고, 경비 아저씨에게는 최대한 밝게 인사하였다.
​어느 할머니가 짐을 들고 계단을 올라갈 때면 모르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지하철 타는 곳까지 배웅해 드렸다.
​새벽부터 나와서 길에서 우유를 파시는 어머니를 보면 이상하게 눈물이 났고,
​청소하시는 어머니들의 거친 손이 큰 존경으로 다가왔다.

한 번은, 밤 12시가 다되어 미니스커트를 입고 큰 반려견과 같이 경복궁 근처를 산책하는 시각 장애가 있는 예쁜 아가씨를 보게 되었는데, 나는 혹시나 그녀가 취객에 밀쳐지지 않을까 걱정되어 몰래 옆을 조용히 걷고 있었다.
​하지만 아가씨는 곧 나의 발자국을 캐치하고 ‘누구세요?’ 라고 묻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짧은 거리를 걷는 동안 참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내가 “이름이 뭐에요?” 라고 내가 물었을 때 그녀는 이제껏 살면서 옆에 걷고 있던 강아지 '포비'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먼저 물어봐 주었던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며 무척이나 고마워하였다.
​그 후에도 우연히 그녀를 또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는 통인 시장 근처 여느 슈퍼에서 물건을 사는 목소리만으로 나 인줄 알고 다시 내게 인사를 했다.
​그 때 나는 이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하루하루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어떤 형태로던 어제보다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 나의 하루하루의 꿈이었기에 80도 되지 않는 쥐꼬리만한 월급이었어도 괜찮았다.
​당장은 먹고 살만하였고, 가끔 편의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사먹을 수 있었다.
​아직 슬픔이 쌓여있더라도 점심 시간마다 피아노와 함께 목 놓아 울 수 있었던 문을 열어두었던 근처 고마운 교회도 있었다.
 
                                                                                               
죽도록 힘들었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
이대로 살아갈만 하구나...
 
모든 것이 그러려니,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게 될 쯤,
​나는 생각지도 못하게 그렇게나 바라던 상해에 왔고,
​지금 이 곳에서 누리고 있는 이 모든 사소한 행복들이 사실은 얼떨떨 할 만큼 분에 차게 감사하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벌레도 고통을 싫어하기는 마찬가지다. 바퀴벌레를 죽이려 들면 미친 듯이 어둠 속으로 도망가는 것이 그들의 본능이다.
 
누구나 고통을 싫어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지나간다.
​고통을 피하면 피할수록 비슷한 문제로 나를 언젠가 더 크게 조여오는 것이 인생이다.
지금 느껴야 할 고통이 있으면 그대로 견디는 것이 답이다.
 
​네모가 세모로 되려면 전기이던 망치이던 어떤 종류의 충격이 있어야 변할 수 있듯이, 고통은 어떻게든 사람을 변하게 한다.
​그 것이 좋은 변화이던 나쁜 변화이던 선택하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마음에 온전한 선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고통을 통해서 점점 눈에 보이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의 행복을 위해 살게 된다.
​화려한 행복이 거짓이었음을 점점 알게 된다.
 

고통 속에서도 충분히 행복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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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돌이켜보면 내가 겪었던 이런 모든 일들은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나란 사람은 그 분이 보시기에 워낙에나 연약하고 부족해서 더 큰 은혜로 채워주실려고 지금까지 하드 코어로 인도하신 듯 하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굳이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아도 대충 말하면 알아듣는데 나는 워낙에나 띨띨한갑다

스더야, 그러니까 그 날을 기억하자.

힘들어도 행복했던 순간을 잊지말자. 앞으로 어떤 고통이 와도 도망가지 말자.

평생 더 아프더라도 사랑하며, 그렇게 진짜 행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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