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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더언니 Sep 03. 2015

미래의 아이들에게 쓰는 편지

스무 살부터,

일년에 한 번 정도..  
미래의 내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아직 얼굴도 모르는 나의 자식이 스무 살이 될 때에, 엄마의 스무 살을 마주하게 하고..
다가올 인생의 많은 날들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됐는데...



지난 날의 편지를 읽어보며, 오히려 내가 더 위로받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작년 이맘 때쯤,
모든 푹풍이 나에게로 온 것 같은 느낌.
아직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 때,


울면서 썼던 그 글을 한 번 옮겨볼까 한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혹은 딸.



엄마는 스물 여덟이 되었어.



엄마가 스무 살 때엔,

지금 스물 여덟 쯤이면,

아가인 너를 (너희들을) 안고..

사랑하는, 따뜻한 아빠랑 오손도손 장도 보고 소풍도 갈줄 알았지.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인생은 오지 않고..

내가 생각했던 꿈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내가 계획했던 이상적인 삶의 스케쥴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지.



내가 결혼을 언제할지,

심지어 너희의 아빠가 누가 될지..

아직도 몰라.





엄마는 지금 서울 어느 갤러리에서 일하고 있어.

1년 전만해도, 아니, 반년 전,

아니다..

3개월 전만해도,  내가 이 곳에서 일하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지:)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다가 보면,

내가 원했던 방식이 점점 사그러져가고..

내 안에 또 다른 소원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한단다.

그리고 기도로 얻게된 이 소원은 내 기분이나 감정, 환경에 상관없이 늘 따뜻하게 지속됨을 알 수 있단다.


아무리 버림받고, 상처를 많이 받고,
수도 없이 좌절과 실망을 겪더라도..
내가 여전히 위로의 사람으로 따뜻하게 살아가길 꿈을 꾸는 것은..

오히려 이 소망이 매일매일 자라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꾸는 꿈이 아닌,

'내가' 원래 가졌던 소망이 아닌,

기도로 받은 소망이기 때문에 그러하단다.






그렇기에..

엄마는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곳이 '부르신 곳'임을 확신하고 있어.









비록...  



제발 '한국'만은 아니길 바랬는데,

나에게는 제일 낯선 땅은 한국이고..

마음 붙일 곳도 없어 제일 외로운 땅은 이 땅이니까.

나중은 몰라도, 아직은 젊은 나이에..

제발 한국에서 만큼은 살고 싶지 않았는데..



어쩌다보니,

이 곳에서 그럭저럭 살고 있는 나를 보며,



하나님은 나를 '사람으로' 다듬어 가심을 느낀단다.

  





아직 잠도 설치고,

외로움을 제일 친한 친구로 두게된 지금의 나날들을 억지로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있어.



묵묵히..당당히.. 담담히..

사람에게도 기대지 않고..

엄마는 지금의 시간들을 통과할거란다.



그래야 너희들의 힘든 나날들을 온 마음으로 이해하고 같이 아파할 수 있을테니까 말이야..

더 꼭 안아주면서 다독여 줄 수 있을테니까 말이야.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눈물이 더 많이 나는 지금의 나날들 가운데서도..

엄마가 감사해하고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꾸었던 꿈이 얼마나 별게 아니었는지 이제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고,

내가 믿었던 '대단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영원하지 않고,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다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야.









엄마가 죽을 때까지 간절히 바라는 하나가 있는데..

눈에 보이는 '무엇'을 이루기 보다,

지금 내 안에서 꿈틀대는 '갈망'과 '배고픔'이 평생 유지되길 바랄 뿐이야.

그래야 환경에 상관없이, 좋은 것이 오던지 나쁜 것이 오던지..

겸손하게,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행복'할 수 있거든.



엄마가 말하는 이 '행복'이란 '즐거움 혹은 만족'이 아닌걸 알지?



정말 기적은,

세상이 말하는 것처럼 잘 먹고 잘 살게 되는 성공이 아니란다.

편안하게 사는 것이 아니란다.

부러움을 받는 삶이 아니란다.



배고픈 상황이던지, 편안한 상황이던지,

어떤 삶이 주어져도 잘 누리고 다스릴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기적이야.

'부러움'을 주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쉼을 줄 수 있는 생명이 있는 삶이 기적이지.

비록 어쩔 때엔 겨울을 맞이하여 잎사귀가 다 떨어져 나가 초라해보이고 죽어있는 것 처럼 보여도,

따뜻하고. 생명이 있는 삶. 늘 자랄 수 있는 삶이 진짜 기적이야.



한 때 화려하기 그지 없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을 떼어내고 조명을 받지 못하면..
그저 생명없는 플라스틱 신세가 되어 창고에 갇혀있게 되듯이..

겉에 붙어있는 장식은, 아무리 화려한 스펙이나 외모는 너의 본질이 아니란다.

땅에 뿌리를 박고 자라야지 생명이 있을 수 있지..

그게 본질이야.



그렇게 자라나면서..

내 기질, 취향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었는데 사랑하게 되는 것이고..

정말 싫었던 사람을 안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이고,

예전엔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했었는데, 이제는 안타까움으로 공감해줄 수 있고,

아무리 많은 고통이 와도, 내 안에 부정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차서

눈물 속에서도 감사할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사는 삶.   





우리 아들 딸 만큼은..



세상에서 말하는 가치관과 성공관이 아닌..

머리로 행복한 삶이 아닌,

가슴이 행복한 삶을 살고..

따뜻하게 그렇게 주변인들을 섬기며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아직 얼굴도 모르는 딸아, 내 아들아.



너희가 무엇을 이루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존재 자체가 엄마를 행복하게 한단다.



우리가 만날 날을 기다리고...

기대하며...

엄마는 그렇게 오늘도 지금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치며 살아갈게.




Ps. 네가 아픈 그 나날들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네 편이고..
널 사랑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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