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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더언니 Oct 10. 2017

가슴이 뛰는 것을 찾는다는 것 1

이 시대에 필요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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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려고 해보지 않은 일이 거의 없는 나에게 가장 반가운 일중에 하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짭짤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아이가, 더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이들을 가르치며 돈을 벌기 원했다. 처음엔 공부나 피아노를 가르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목적도 없이, 방향도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입시를 위해 달려가는 수 많은 아이들을 보고 고민하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적이라는 아이들을 보고 안타깝게 여기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이 분명 있는데도, 부모님의 심한 반대로 혹은 집안 사정 때문에 울게될 때, 나도 같이 울게 되었다.


 

그래.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한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가고, 열심히 돈을 번다.

열심히 공부를 하지만 시험 성적이 너무 엉망으로 나왔다고 자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인생에서,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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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 분이 우리를 지으실 때 각자에게 맞는 달란트, 재능을 주셨다고 믿는다.

그 재능을 통하여 자기에게 맞는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며, 그 것을 통하여 사람을 섬기며, 모든 좋은 결과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영광을 돌리고, 그래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통로가 되도록 재능을 주셨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모두가 꼭 목사나 선교사가 되지 않더라도, 각자에게 주어진 재능, 소질은 사명과 같으며 부르심과 같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은 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사업가로 부르심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만드는 일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요리를 좋아한다. 의사가 될 사람이 주위의 권고로 판사가 된다면, 그는 정말 행복할까? 돈을 많이 벌고, 편안한 노후가 있어도, 그는 아프고 다친 사람들을 보면 평생 마음이 이상하게 저며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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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즐겨보았던 드라마 중 종영된 ‘오 나의 귀신님’을 시청하며 느꼈던 사실이 있는데..


인간의 본질, 인간이 죽으면 남게 되는 것은 ‘소원’ 이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모든 귀신들의 공통점은 ‘억울하다’라는 것인데, 가슴 속에 이루지 못한 소원이 곧 ‘한(恨)’이 되어 이 세상을 떠돈다는 것이다. (시집 못가고 죽는게 진정 여자한테는 한이 맺힐 일인가보다.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모든 처녀 귀신들 및 김슬기가 한을 풀어야 한다며 그렇게나 돌아다녔나 봄.)


이렇게 ‘소원’은 곧 영혼과 직결되는 가장 원초적인 요소이며, 가슴이 뛰는 것을 찾는 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히 부끄럽지만) 나는 내 꿈이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것 인줄 알았다.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 인줄 알았다. 타임즈 1면에 당당하게, 세상을 변화시킨 혹은 영향력 있는 100인 중에 한 명이 되는 것이 나의 꿈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공부도 나름 열심히 했고, 야무진 야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포장했지만, 인생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서, 내 꿈은 바뀌게 되었다.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변하게 되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립보서 2장 13절>


 


나도 몰랐던 내 꿈은 사랑이었다.


​그 것이 어떤 형태로이던, 무슨 일을 하던, 어디에 있던, 나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뛴다. 사랑에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을 보면 위로하고 싶고, 그럼으로써 나의 아픔이 치료가 된다.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고, 글을 쓰게 되었고, 피아노도 마음을 담아 치게 되었고, 통역을 할 때에도 말이 아닌 마음을 전하길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고,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꼭 기도를 하고 시작한다. 진짜 꿈은 ‘내’가 주체가 된 것이 아닌, 하나님께 받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 꿈을 찾기까지, 내가 만난 하나님은, 정말 인격적이셨다. 그렇게나 방황하는 때에도 억지로 시키시지 않고 오래 참으시고 늘 기다려주셨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목사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있다.


“목사의 부르심이 있는 사람은 목사가 되고 싶은 소원이 일어날 것입니다. 설교하고 말씀 전하는 것을 생각하면 흥분되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때려서 가고싶지 않은데 할 수 없이 억지로 신학교에 간다면 그것은 부르심이 분명하지 않은 것입니다.


선교사의 부르심이 있는 사람은 선교지와 선교지의 영혼에 대한 소원, 그리움이 일어날 것입니다. 중국의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허드슨 테일러는 밤낮 없이 중국의 영혼들을 생각하면 밥도 먹기 어렵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그의 안에서 강한 소원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부르심입니다.   


교사의 부르심이 있는 이들은 교사의 소원이 일어나고 요리사의 부르심이 있는 사람은 요리에 대한 소원이 일어나며 발명에 대한 부르심이 있는 사람은 하루 종일 발명에 대한 생각이 끊이지 않고 소원이 일어납니다. 글에 대한 부르심이 있는 사람은 하루종일 글이 떠오르기 때문에 잠자는 것도 힘들어지고 합니다.


사람은 날 때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며 또한 이렇게 소질과 재능을 타고 납니다. 어떤 이는 손에 재주가 있어서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을 잘 하고 잘 만듭니다. 어떤 이는 입에 재능이 있어서 음식 맛의 분별에 탁월하며 요리에 소질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혀의 재능이 있어서 언변이 뛰어납니다.


어떤 이는 발에 재능이 있어서 움직이고 활동하는 것을 잘합니다. 어떤 이는 학자의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논리 전개에 탁월하고 진리와 지식의 탐구에 행복을 느낍니다. 어떤 이는 깊은 진리를 탐구하는 쪽 보다는 가르치는 것에 재능이 있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눈에 재능이 있어서 보고 분별하는 것에 탁월하며 어떤 이는 귀에 재능이 있어서 음악성에도 뛰어나고 절대음감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사람의 안에 심어놓으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에게 맡겨진 소질과 일이 있으며 그것을 통해서 먹고 살게 되고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자기가 잘 하는 일, 자기가 하면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는 일.. 그것이 바로 그의 부르심이고 사명이고 달란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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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그렇다. 하나님은 이렇게 소원을 주어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일을 맡기시는데,


“If you wake up in the morning and you can't think of anything but singing first., then you're supposed to be a singer…”


영화 시스터액트2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대사다.


 

이 원리는 기독교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영역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는 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을 가만히 지켜보면, 어떤 아이는 어릴 적부터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아이는 조용히 저 쪽에 혼자 않아 책 읽기를 좋아한다. 어떤 아이는 마구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내가 감당이 안될 지경이다. 어떤 아이는 낯을 가리고 어떤 아이는 아무에게나 다가가 안겨서 사랑을 받는다. 이렇게 아이 때부터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행동, 끌리는 것이 있는데, 나는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심어놓으신 것이라고 믿는다.


자랄수록 사람의 좋아하는 성향은 드러나게 된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 중 하나는 수학은 정말이지 질색이라고 말하면서, 쿠킹 시간이 되면 가슴이 너무 뛴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키가 어렸을 때부터 컸으니 모델이 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하고, 그림에도 관심을 가진다. 그런가 하면,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고 기술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 (얘네들은 나도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 신기한 부류의 아이들) 말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도 있고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 소원하는 것과 소질은 다른 것인데.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


가령, 나는 노래를 좋아하는데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나의 노래를 듣고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제발 피아노만 쳐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피아노만 죽어라 친다. 나는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소질은 없는 것이다. 그 것은 취미일수는 있지만 사명이나 달란트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내가 요리를 좋아하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사람의 목구멍이 힘들게 꿀렁거리는 것을 발견했다면, 나는 요리에 소질이 없는 것이다.


우리의 사명은 남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고 즐거움을 주게 된다.


소원과 소질은 다른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 두 가지는 비슷하게 같이 나타나는 것이 보통인 것 같다. 보통,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잘 하게 되어 있으며, 잘 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사람들에게 면박을 받으면서 그림 그리는 것을 계속 좋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림을 그릴 때 사람들이 기뻐하고 자꾸 그려달라고 요청한다면 그 아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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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국제학교 상담 통역을 맡을 때,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문제 아이들의 모든 증상들은 거의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는 것이다.


ADHD 즉 산만한 쪽, 혹은 자폐 쪽이다.


나도 어릴 때 사실 산만.. 주의력 부족.. 쪽이었는데, ADHD로 반응하는 것은 외향적 기질의 아이이고 자폐 쪽으로 반응하는 것은 내향적 기질의 아이일 가능성이 많다.


이 시대의 환경, 특히 교육환경은 아이들을 미치게 만드는 많은 요소들이 있는데, 이렇게 외부에서 억압이 있고 고통이 있을 때 아이는 산만한 쪽으로 반응하거나 자폐 쪽으로 반응한다.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다.


예전 나와 같이 살았던 룸메는 홀로 세살배기 아이를 키웠던 동갑내기였는데, 나는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룸메가 이 아이에게 줄곧 너는 예쁘게 자라서 꼭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을 가라, 의사가 되라, 판사가 되라. 라며 주입을 시키는 것을 목격하곤 했다.


이 아이는 정녕 주의력 결핍 증상을 보이면서 어수선하게 행동하였고 가끔은 먹던 밥상을 엎어버리곤 하였다.


집에 피아노가 없으니, 아무 텅 빈 교회에 들러서 마음을 놓고 울며 숨어서 피아노 치기를 한참 할 때였다.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수원 어느 작은 교회에서 고개를 쳐박고 피아노를 치고 있었는데.. 그 교회 목사님 부부가 내게 다가왔다. 목사님 사모님께서 나에게 하셨던 말씀은 딱 단 한마디였다.


"우리 수지(가명)가 이런 언니를 보면 참 좋아할텐데..."


아, 네. 하고 만나본 아이는 언뜻 보기엔 평범한 중학생이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고 홈스쿨링을 한다길래, 나도 MK 출신으로서, 학비가 없어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나의 어렸을 때의 사정이 이 PK 아이와 오버랩이 되어 덜컥 영어 과외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아이와 수업을 하면 할 수록, 대답을 잘 하지 못하고, 어떤 문장을 가르쳐주어도 응용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아이는 어릴 때부터 자폐 성향이 너무 강해 학교를 보내지 못했다며 어머니는 내 앞에서 엉엉 우셨다.



내가 가르쳤던 이 중학생 아이는 자아 속으로 숨어버리고 도피하는 자폐증상을 보였던 것이다.


이 외에도, 나에게는 수 많은 경험담들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어느 쪽이든, 그들은 피해자였다. 이 시대에 아이를 억압하고 괴롭히고 병들게 하고 죽게 하는 요소는 가득한데 어른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면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을 하고 계속 다그치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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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교육이란, 바로 이 달란트, 부르심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부르심에 대해서 가르치고 그의 소질과 재능, 달란트가 무엇인지 함께 찾아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격려해주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왜 너는 이렇게나 별나니? 왜 이렇게나 별나게 노니? 좀 평범하면 안되니? 하고 이야기하는 어른들이 많았다. 한 때는 그 말에 주눅이 들어서, 하나님께 왜 나는 정말 이렇게 좋아하는 것이 다른 아이들이랑 다르냐고 울며 따지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정말 열이 받는다. 아니,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각자 다양하게 지으셨는데. 모든 사람은 별난게 당연하지 않나. 우리는 서로 같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다른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하고 섬기며 부족한 부분을 도우며 사는게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 다르며 다르기 때문에 서로 유익이 된다.그러니 모두가 같아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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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을 어떻게 찾을까? 나에게 가슴이 뛰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이 글을 쓰는 나도 아직 찾아 나가는 과정에 있다. 모든 것을 멈췄을 때, 나는 남들과 비슷해지려고 노력하고 거기에 맞추려던 나를 발견하였고. 그 때서야 하나님은 내게 어떤 속성을 주셨는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가? 그러한 것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내가 만나는 아이들을 그렇게 관찰하고 있다.


내일도 나는 아이를 만난다.


기도하고 자야겠다.


​하나님, 단순히 이 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배움으로써, 하나님과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아이가 될 수 있게 해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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