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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더언니 Oct 07. 2017

인정받기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냥 내버려두기만 해도 충분히 행복해요.

#

나는,




처음 나를 보는 사람들이 말하는 씩씩하고 재주가 많아 보이는 나는, 사실,


하자가 -굉장히- 많다.


어떤 일을 시키면, 빠릿하게 캐치하지 못하고 손이 굼떠서 스무 살 커피숍에서 알바를 할 때에 사장님께 '늘보'라고 구박을 받은 적이 있다.

눈치가 없어서 상대가 원하는 혹은 상황에 맞는 이야기를 하지 못할 때도 있다.

나는 길을 심각하게 찾지 못한다. 그래서 분명 일부러 일찍 집을 나서도 약속 시간에 늦기 일쑤이며,

분명 엄청 바쁜 삶을 사는 것 같고 여러가지의 일을 하는 듯 보이나 돈을 버는데엔 젬병, 오히려 까먹는데엔 신공이며,

조금만 서운하거나, 화가 나는 상황이 오면 눈물부터 저절로 나와 상대를 당혹케 한다.



서른이 넘어서도 이 지경인데,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이런 하자가 많은 나를 두고 늘 걱정이 많으셨다.



너는 왜 이렇게 눈물을 참지 못하니,

너는 왜 이렇게 이성적이 못하고 쓸데 없이 감성적이니,

너는 왜 밥을 흘리며 먹니,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다니기에 왜 이렇게 길을 찾지 못하니,

너가 길을 못 찾는 것은 노력하지 않아서란다.

너는 왜 이렇게 어리버리하니.

너는 왜 쓸데없이 나대길 좋아하니.

너는 왜 이렇게 오지랖이 넓니.

너는 왜 이렇게 눈치가 없니,

너는 왜 이렇게 계획이 없니,

너는 왜 이렇게 잠이 많고 게으르니, 남들은 야근하며 살잖아.

너는 왜 등신같이 늘 당하기만 하니, 너도 좀 실속있게 챙겨 봐.

너는 화장도 그렇고 왜 옷을 그렇게 꼭 요란하게 입어야 하니.수수하면 얼마나 좋아.



나는 그렇게 늘 혼나는 삶에 길들여져 자라왔고, 혼자가 되어 독립적인 삶을 사는 성인이 되었을 때에도, 그 잔소리는 여전히 '남자친구' 혹은 '친구'라는 타이틀과 함께 늘 나를 따라다녔다.




처음에는 무조건 좋다고 다가왔다가도, 한 없이 어리버리하고 눈치 없는 나를 답답해하여 화를 내고 결국 떠나는 남자친구를 수도 없이 마주할 때에도,

엉성한 계획에 당장의 진로가 막막하여 '넌 좀 계획 좀 하고 살아.' 라고 친구가 화를 낼 때에도,



왜, 나는 이럴 수 밖에 없을까,

왜 나는 늘 인정받지 못할까. 라는 질문에 오랜 시간동안 고통스러워 해야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올 때면,

잠들기 전이면,

오늘도 사람들이 정의했던 '부족했던 내 모습'이 더 많이 떠올라 펑펑 눈물을 쏟으며,

'나는 아무래도 이 것 밖에 안되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았다.




아직도,


나는 그렇게 울 때가 많다.

그래서 아플 때가 많다.




#

여전히 그 기준에 못미치는 나를 마주할 때면 한 없이 무너지는 때가 있긴 하지만,


'도저히'라는 상황을 직접 맞닥뜨린 뒤, 나는 조금씩 인정받기를 포기하며 살고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기준을 하나하나 포기하며 살게 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다.


'빨리 돈을 벌어 모아 시집을 가야지.'

라는 어른들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였을 때에, 나는 철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 나는 더 행복하며,


'좋은 대학 나왔으면 좋은 곳에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야지.'라는 부모님의 바램과 달리,

나는 현재 돈을 지지리도 못벌고 있지만 확실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으며,


월급이라는 '따박따박' 안정적인 수입은 없어도, 내 학비 생활비는 스스로 충당하고 앞가림은 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너는 참 다재다능해서 매력적이야.' 라고 다가오는 남자들의 콩깍지가 벗겨지고, 화려한 것처럼 보였던 나의 모습보다 지지리도 모자란 모습이 진짜 나임을 발견될 때에도, 여전히 나의 '진짜'를 사랑해주는 사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었으며,



손이 굼떠도,  

내 비누를 정성스럽게 만들고,

요리를 할줄 알고,

비록 전공자보다는 못쳐도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피아노가 내 곁에 있고,


눈치가 없어 등신같이 당하기 일쑤여도,

나는 내 할 말은 글로 적어낼 수 있으며,

누가 울면 같이 울어줄 수 있고,

누가 웃으면 더 크게 기뻐해줄 수 있다.



길은 찾지 못해도,

하염없이 걷다가 가끔씩 선물처럼 다가오는 풍경에 감사할 수 있으며,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고 나대는 듯 보여도,

그렇게 소개팅을 해주어 결국 결혼하여 행복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보면 여전히 '잘한 일'임을 느낀다.


나의 부족함 보다도,


지금 이대로도 감사할줄 아는 여유가 더욱 소중하며,


나는, 그 소중함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포기'하며 얻을 것이다.


하자가 많은 나는,

이렇게 인정받기를 포기하며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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