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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실 Dec 12. 2020

퇴사 후 세계여행,
코로나 19로 인한 조기 귀국

진실의 세계여행 이야기

'퇴사 후 세계여행'

    누구나 한 번쯤 서점에서, 혹은 유명 블로그에서 이와 비슷한 글 제목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퇴사' 혹은 '여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길이 갔을 것이고, 이렇게 생각했겟지.

    '정말 부럽고 멋있다. 저렇게 과감한 결정을 하는 사람이 있네. 저런 용기는 어떻게 나올까?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내 지금 상황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야.'


    나도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과감한 결정을 한 특정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졌던 퇴사 후 세계 여행을 '나'의 이야기로 만들기로 결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지만.


    영국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인 우리 부부. 많은 국제커플이 그러듯 양 국가에서 결혼식을 했다. 2016년에 영국에서, 2017년에는 한국에서. 영국 결혼식 때는 우리 가족이, 한국 결혼식 때는 영국 가족이 먼 발걸음을 했다. 덕분에 결혼식 당일은 물론이고 식 후엔 여행을 함께 가는 등 먼길까지 찾아와 주신 손님을 챙겨드려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신혼여행은 자연스레 미뤄졌다. 그렇게 밀린 신혼여행은 결국 영국 결혼식 기준 약 2년 후인 2018년 9월에 실현될 수 있었다. 긴 연휴 기간에 영혼 끝까지 끌어모은 연차를 붙여 총 17일 동안 남미로 떠났다. 무거운 캐리어를 끄는 대신 20L짜리 각자 백팩을 하나씩 등에 메고 훌쩍 떠났다. 

    아마 이때였던 것 같다. '어느 정도의 시간과 돈만 주어진다면, 우리 둘은 백팩 하나씩 메고 어디든지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준비가 되었구나.'라고 느낀 순간이. 



Jimsil - 남편 이름 Jim, 내 이름 Jinsil을 합쳐 만든 우리만의 브랜딩. 여행할 때 항상 함께하는 백팩을 메고 있다.


    위에 잠깐 언급했듯이, 영국 결혼식을 마치고 우리는 한국에 왔다. 서울에서 신혼집을 구하고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며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같이 살면서 가끔은 서로 얼굴을 보기 힘든 날도 있었다. 이런 생활에 대한 나름의 보상으로 회사 휴가의 대부분은 해외여행을 가는 데 사용했다. 내 몸보다도 더 큰 백팩을 등에 메고 손을 잡고 나란히 걸으면 세상 어딜 가든 설레고 행복했다. 평소에 업무로 쌓였던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증발해버리는 듯했다. 그 순간만큼은 마치 열심히 살아온 우리 스스로에게 상이라도 내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여행을 하면 일상에 돌아가서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이걸 반복하면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목표가 무엇인지,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몇 년 동안 일하고, 틈틈이 여행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분명 마음 한편에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모습이 이게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 일지에 대해 한참을 고민했다. 


    평소에 바쁘게 일만 하는 삶을 휴가를 사용해 여행 다녀온 것으로 보상받는 게 진짜 우리가 원하는 삶일까? 여행을 힘든 상황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는 것이 여행을 사랑하는 우리의 태도가 맞을까? 혹시 나중에 가족이 더 커지게 되면 여행은 한동안 끝인 것일까? 그러다 나이가 훨씬 더 들고 다시 여행을 하려면 지금 우리가 원하는 여행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을까? 그럼 그전에 제대로 계획해서 여행을 다녀오는 게 좋을까? 


    이러한 고민과 생각들이 쌓이고 쌓여, 나중에는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더 늦기 전에 회사를 잠시 쉬고 길게 여행을 떠나면 어떨까?"라는 대화로 이어졌다. 그러다 결국 장난보다 진심의 무게가 더 커진 순간이 왔다. 


    그리고 정말 '퇴사 후 세계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과감한 결정을 한 특정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을 '나의 이야기'로 만들게 된 것이다.

앞으로 글에서 세계여행 준비 과정, 세계여행 이야기, 그리고 코로나 19로 인해 이 모든 것들을 접고 한국에 다시 돌아와야 했던 순간들을 생생하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왜 하필 그때 여행을 떠나셔서 고생만 하다 오셨나요


    우리가 세계여행을 떠난 2019년 12월은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기 전이었다. 여행 시작 후 몇 주 뒤 뉴스에서 코로나 19 관련 소식을 들었을 때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는 팬데믹일 것이라 상상도 못 했다. 그 어느 누가 알았으랴. 하지만 그때 떠났던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도 그때 떠난 덕분에 약 100여 일 동안 약 10개 국가를 여행했으며, 그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한 '세계여행'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팬데믹 속 세계여행'을 몸소 겪을 수 있었으니. 

몸 건강히 집에 돌아와 이렇게 다른 이들에게 내 여행기를 들려줄 수 있으니, 그래 그거면 됐다. 


    뒤돌아 보면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여행의 기억은 아니다. 처음엔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인종 차별을 당했고, 여행 중 혹여나 코로나에 걸릴까 두려웠고, 돌아와서는 여행을 끝내지 못한 상황에 억울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보면 가슴 한켠 아쉬움과 아픔이 느껴지는 이 이야기를 설레는 마음 한가득 품고 떠났던 2019년 12월로부터 약 1년 뒤인 지금, 조심스레 다시 꺼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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