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주소가 아니라 내가 살아낸 시간들
나는 내 발로 집을 나온 지 오래다. 어린 시절의 이사는 그저 부모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일이었다. 이사할 때마다 짐가방 두 개면 충분했고, 그 안에 담긴 건 크게 소중하지도 않았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이 늘 마음을 편하게 했다. 그 집이 완전한 안전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한 발을 내디딜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난 뒤의 이사는 달랐다. 편입을 위해 아무 연고도 없는 도시로 짐을 옮겼을 때, 수하물로 맡겼던 가방 하나가 아예 사라졌을 때, 나는 처음으로 이주라는 말을 실감했다.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생활을 시작해야 했고, 필요한 것을 조금씩 모아가며 살림을 꾸렸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성인이 된다는 건, 누군가 차려준 집이 아니라 내가 만든 생활에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돈이 없어서, 형편이 안 돼서, 오래 쓰지도 못할 물건을 어쩔 수 없이 들고 다녀야 할 때가 있었다. 어떤 것은 원치 않아도 버려야 했고, 어떤 것은 뜻밖에 오래 곁에 두게 되었다. 예상은 늘 빗나갔다. 짧게 쓸 줄 알았던 게 길어졌고, 오래 쓸 줄 알았던 건 허망하게 사라졌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하나 배운 건, 결국 사람도 사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더 집중하려 한다. 오래 갈 줄 알았던 관계도 쉽게 흩어지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만남이 오래 남는다. 내가 결정한 일이 비록 누군가의 눈에는 최선처럼 보이지 않아도, 그 순간의 나는 분명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 믿음이 없으면 매번 무너진다.
아쉬움과 서운함은 늘 따라붙는다. 하지만 거기에 오래 매달리면 결국 나 자신을 잃는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지키는 일이다. 현재를 살아내는 힘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하루를, 내 앞의 일을, 내 곁의 사람을 정성껏 대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게 내가 배운 방식이었다.
예전에는 열심히만 하면 괜찮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열심히만 해서는 금방 무너진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자책하기 전에, 잘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잘한다는 건 단순히 성과를 내는 게 아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포함된다는 것을 조금 늦게 깨달았다.
나는 내가 만든 세계에서 살고 있다. 내가 내린 선택과 결정이 모여 지금의 집이 되었다. 집은 주소가 아니라 내가 살아낸 시간들이었다. 그 안에서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처음 내 발로 집을 나섰을 때의 두려움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러나 최근의 직장 생활, 내 또래의 친구들과의 대화를 떠올리면, 지금의 나는 부족하지 않다. 어렵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크게 힘들지도 않다. 그 미묘한 균형 위에서 살아간다.
가끔 부모님이 뉴욕에 처음 왔을 때 이야기를 꺼내신다.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단칸방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도 못 했다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 지금을 보면 넘치도록 과분하다고 말한다. 아마 내가 느끼는 마음도 그와 비슷한 결로 닮아있다.
나는 여전히 큰 꿈을 꾼다. 그리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이 순간에 충실하는 일이 곧 나를 앞으로 밀어줄 것이다. 그 믿음을 놓치지 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