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가질수록 덜 느껴지는 이상한 순환

덜 갖고도 충분히, 그게 어른의 이사

by 샤누자오사무

이사를 준비하며 처음 든 생각은 이거였다. 짐이 미쳤다. 대체 언제 이렇게 불어난 걸까. 다 들고 갈 수도 없고, 버리자니 또 아깝다. 결국 쌓인 건 물건이 아니라 미련이다.


살다 보면 참 이상한 순환 구조가 생긴다. 공간이 넓어지면 마음도 커지는 게 아니라, 짐이 먼저 커진다. 방이 하나 더 생기면 그 방을 채워야 할 이유가 생기고, 수납장이 늘면 그 안을 채워야 할 책임감이 생긴다. 사람은 늘 부족해서 더 가지려는 게 아니라, 여백이 불편해서 채우려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예전엔 세상이 훨씬 불편했는데도 더 자유로웠다. mp3 플레이어 시절만 해도 그랬다. 좋아하는 노래 열 곡을 고르고 또 골라서 넣었다. 용량은 늘 모자랐고, 그래서 더 정성스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스트리밍이 있다. 모든 노래가 손 닿는 곳에 있다. 덕분에 아무 노래도 내 것이 아니다. 귀는 넓어졌는데, 마음은 좁아졌다. 선택이 늘었는데, 애정은 줄었다.


짐도, 사람도, 관계도 다 비슷하다. 하나둘 모으는 동안엔 뿌듯한데, 막상 이사하려고 포장지 앞에 앉으면 정신이 멍해진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들고 살았을까. 그리고 다음 이사 때 또 같은 후회를 반복한다. 반복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정체성을 만든다. “살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산 걸 유지하기 위해 사는 것 같다.” 이런 문장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건 단순히 개인의 게으름이나 미련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놨다. ‘소유’를 곧 ‘성장’으로 등치시키는 방식. 더 큰 집, 더 비싼 가전, 더 최신의 무언가. 광고는 늘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나은 삶’의 기준은 우리가 정하지 않는다. 시장이 정한다. 우리는 그저 따르다가 숨이 차서 멈춘다.


짐을 싸며 버리는 건 단순히 물건을 줄이는 일이 아니다. 내 안의 문장을 정리하는 일이다. ‘이건 나중에 필요할지도 몰라.’라는 말에는 늘 불안이 들어 있다. 그 불안을 버리지 않으면 공간은 절대 비워지지 않는다. 버리는 건 용기다. 덜 가지겠다는 결심은 결핍이 아니라 자유다.


이사 트럭이 떠나는 날, 나는 또 한 번 다짐할 것이다. 다음엔 조금 덜 사자. 다음엔 조금 덜 쌓자. 그리고 그 다짐은 아마 또 깨질 것이다. 그래도 된다. 삶은 원래 그렇게 조금씩 낭비되면서 나아가는 거니까.


결국 우리가 짐을 줄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 더 가볍게 떠나기 위해서다. 어딘가로 옮겨 다니는 한, 짐은 계속 생긴다. 다만 그 무게를 줄이는 방법을 배우는 게 어른이 되는 과정 아닐까.


이사를 끝내고 나면 방은 잠시 비어 있다. 그 빈 공간이 좋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느낌. 어쩌면 그게 우리가 끝없이 짐을 버리고 또 쌓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다는 증거, 아직 시작할 수 있다는 신호.


이번엔 그 빈자리를 좀 더 오래 두려 한다. 꼭 채우지 않아도 괜찮은 자리. 손 닿는 만큼의 물건과 마음만 남겨두고. 그래야 다음 이사 때, 조금은 덜 지치지 않을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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