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남는 것은 사람
어제 저녁은 이제는 떠난 회사에서 만난 동료들과의 자리였다. 웃으며 반가워야 할 첫인사가 곧바로 독처럼 흘러나왔다. “Sean did not do much anyways.” 그렇게 대놓고 말했다더라. 그 자리에 있던 친구는 아직도 분이 안 풀린 듯 전해주었고, 나는 그 말을 곱씹을수록 씁쓸함보다 차라리 무감각에 가까운 공허함이 먼저 찾아왔다. 그가 총애하는 오른팔이라는 컨트랙터는 디테일을 쥘 줄 모르는 사람이다. 높은 곳만 휘젓고, 실제로 무게를 들어 올리는 건 언제나 다른 이들 몫이었다. 결국 내 자리는 채워질 필요가 없다고 판단된 셈이다. 남이 한 일을 자기 공처럼 삼킨 채. 쓰레기라는 말도 아깝다.
고작 형식적인 감사의 말조차 건네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가 회사를 나설 때는 공지 한 줄이라도 “thanks for the contribution” 같은 인사말이 따라붙곤 했는데, 이번엔 그것마저 없었다. farewell도, 짧은 메시지도 없었다. 떠나는 이의 무게를 대하는 방식은 곧 남아 있는 사람들의 눈에 그대로 각인된다.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고 했다. 끝까지 그렇게밖에 못하는 사람. 개는 끝까지 개다.
동시에 전해진 소식은 더 참혹했다. 팀의 세 명이 PIP에 들어갔다. 살아남은 경우를 본 적 없는 절차라 사실상 해고 수순이다. 그 중 가장 치명적인 건 전사 페이롤을 책임지는 담당자. 새로 데려온 사람이 첫 월급부터 망쳐버려 전 직원의 급여가 미지급되는 사태가 났다 한다. 한 사람은 assistant controller 자리에 뽑혔다가 서서히 일이 줄어들어 지금은 AP manager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 되었고, 또 다른 주니어 직원은 비자까지 얽혀 있어 잘리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비극이 예고된 무대 위에서 사람들은 억지로 연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남은 사람들마저 의욕이 바닥났다. “배우는 것도 없고, 동기부여도 없고,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말은 같은 톤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다른 팀으로 옮기려는 이조차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없다고 했다. 불편한 질문을 피하기 위해 대화를 회피하는 방식. 문제의 매니저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쁘지 않았던 팀 분위기가 한순간에 무너졌다고 한다. 누군가의 독이 이렇게 조직 전체를 병들게 한다는 걸, 모두가 다시 실감하는 중이었다.
나는 HR과의 exit interview에서 그를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했지만, 어떤 변화도 없었다. 어차피 듣지 않으려는 귀에 말이 닿을 리 없다.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나 역시 마음속에 오래 쌓아두었던 비리와 의혹들을 조금은 흘려주었다. 이 회사가 상장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말, 상장한다 해도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의심. 언젠가 드러나고 말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서 마음에 남은 건 다른 것이었다. “그래도 너희를 만난 건 잘한 일이었다.” 결국 독은 사라지고, 좋은 사람만 남는다. 그 믿음이 이 모든 부조리를 견디게 한다. 조직은 썩을 수 있고, 권력은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남는다. 다시 만나자는 약속 하나가, 온갖 분노와 냉소를 잠시 덮었다.
결국 어제의 저녁은, 떠남의 기록이자 남음의 다짐이었다. 독은 이미 증명되었다. 그러나 독을 견디며 살아남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야말로 앞으로도 내가 이어가고 싶은 인연이다. 그런 사람들과 다시 웃으며 만나게 될 날이, 이 모든 더러움 속에서도 유일한 희망처럼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