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본다’는 말의 진짜 의미

이곳의 삶이 내 안에서 번역될 때

by 샤누자오사무

하루키가 “이윽고 슬픈 외국어”에서 썼던 문장이 있다. “스쳐가는 사람에게는 스쳐가는 사람의 관점이 있고, 그곳에 뿌리내린 사람에게는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의 관점이 있다. 양쪽 다 메리트가 있고, 보이지 않는 사각이 있다.” 이 말은 지금의 나에게 너무도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여행자와 거주자 사이, 그 중간쯤에 서 있는 기분이다. 나는 아직 이곳의 시민도, 완전한 이방인도 아니다. 하루의 절반은 설레고, 나머지 절반은 낯설다. 길을 건널 때마다, 버스 노선을 익힐 때마다,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한다. 아직은 모든 것이 처음이지만, 동시에 조금씩 내 일상이 되어간다.


얼마만큼 자신의 관점과 진지하게, 그리고 동시에 유연하게 관계 맺을 수 있을까. 그 질문이 요즘 내 하루를 이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나도 매일 달라진다. 어제의 판단으로 오늘의 풍경을 설명할 수 없고, 오늘의 감정으로 내일의 의미를 미리 예측할 수도 없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판단이 아니라 ‘유예’에 가까운 일이다. 확신보다는 관찰, 결론보다는 여백. 그래서 나는 여전히 글을 쉽게 쓰지 못한다. 모든 것을 정리하려는 대신,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를 오래 붙잡아두려 한다.


이곳에서 그런 시도를 다시 해보려 한다. 이제 막 물가를 계산하고, 버스 노선을 익히고, 하늘의 변덕을 받아들이는 단계다. 아침엔 햇살이 쏟아지고, 점심엔 비가 내리고, 저녁엔 다시 구름이 걷힌다. 그 불규칙한 리듬 속에서도 어떤 질서가 있다. 사람들은 비가 내리면 우산 대신 재킷의 모자를 뒤집어쓴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걸어간다.


낯선 곳의 생활은 언제나 신선하다. 그러나 그 신선함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삶이 피곤해진다. 나는 그 설렘에만 기대지 않기로 했다. 새로움은 아름답지만, 금방 바래기 마련이다. 그 대신, 속해서 살아가는 감각을 배우려 한다. 단순히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곳의 언어, 습관, 하늘빛이 내 안에서 천천히 녹아드는 과정을 보고 싶다. 사소한 장면들이 나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그 변화가, 익숙했던 감정들이 낯선 문법으로 다시 쓰이고 있다.


어쨌거나 새로운 장소에 있고, 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삶이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한 일의 한가운데에 있다. 아마 이 시도의 끝에는 또 다른 내가 있을 것이다. 익숙함을 경계하고, 낯섦을 오래 붙드는 사람. 그게 내가 얻고 싶은 단 하나의 성장일지도 모른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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