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금방 그친다

낯선 곳을 천국으로 만드는 일

by 샤누자오사무

누가 영국은 날씨가 안 좋고, 비싸기만 하고, 음식이 맛없다고 했을까. 떠나오기 전, 수없이 들었던 말들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단호했다. “거긴 비만 오잖아.” “음식은 기대하지 마.” “집값은 미쳤어.” 그때는 나도 웃으며 대꾸했다. “뭐, 어딜 가도 장단은 있겠죠.”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불안이 남았다. 어쩌면 정말 그런가 싶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이곳에서 산다.

비는 정말 매일 내린다. 하지만 금방 그친다. 비는 잠시 스쳐갈 뿐이고, 해는 자주 나타난다. 흐림이 길어질 때도, 곧 구름이 열릴 거라는 걸 안다. 그 짧은 순간의 햇살이 이렇게 반가운 건, 늘 비가 있기 때문이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도리어 이 도시의 리듬이 그렇게 생긴 것 같다. 맑음과 흐림이 공존하는 하루, 그 사이의 색들이 예쁘다.


음식은 어떠냐고? 과일이 놀랍도록 맛있다. 감자는 더 좋다. 삶든, 구웠든, 으깼든, 그 고소하고 단단한 식감이 좋다. 사람들은 “영국 음식은 맛없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지만, 정작 이곳의 식탁엔 제철과 지역이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있다. 요란하지 않고, 과장하지 않고, 그저 담백하게 익숙하다. 그런 맛은 서서히 믿음을 준다.


물가도 생각만큼 버겁지 않다. 물론 올랐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뉴욕에서의 그 불합리한 구조를 떠올리면, 여기는 아직 현실적이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거의 모든 대체품을 찾을 수 있다. 시장에선 흙이 묻은 채로 진열된 채소들이 반짝이고, 사람들은 비닐봉지 대신 천 가방을 쓴다. 불편함이 아니라, 조용한 질서가 느껴진다.


대중교통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은 깔끔하고, 버스 노선은 세밀하게 얽혀 있다. 물론 예고 없이 지연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뉴욕에서도 매일 벌어지는 일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여기는 불편함이 덜 불친절하다. 사람들은 불만 대신 농담을 던지고, 기사들은 여유롭게 웃는다. 시간은 조금 느리지만, 덜 거칠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왜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세계를 그렇게 쉽게 단정할까.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다른 누군가의 시야를 가릴 때가 많다. 경험 없는 확신만큼 위험한 건 없다. 타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평가는 늘 한 조각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조각 하나로 전체를 그려버린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어디든 누군가에겐 지옥이고 누군가에겐 천국이다. 그걸 가르는 건 날씨나 물가, 음식이 아니다. 그곳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내느냐, 그것뿐이다. 결국 천국은 주어진 공간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태도다.


익숙한 것에 매달리면 안전하지만, 거기엔 함정이 있다. 내가 편했던 건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많은 안락함이 불합리의 결과로 유지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조금 불편해도 괜찮다. 불편함이 나를 깨어 있게 한다면, 그건 나쁜 일이 아니다.


영국의 하늘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한다. 금세 흐려지고, 또 금세 맑아진다. 그게 이곳의 일상이고, 그래서 이곳이 좋다.

비가 온다고 하늘이 나쁜 건 아니다. 흐리다고 세상이 멈추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날씨를 탓하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잊는다.


결국, 내가 있는 곳이 천국이 된다.

천국을 고르는 건 날씨가 아니라 시선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우산을 접으며 생각한다.

이곳의 비는 금방 그친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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