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프라이데이와 예쁜 쓰레기 사이에서
땡스기빙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블랙프라이데이가 온다. 예전에는 미국만의 풍경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전 세계가 한꺼번에 같은 말만 외치는 것 같다. 지금 안 사면 손해라고,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이 가격에 못 본다고, 각종 화면과 알림들이 동시에 소리를 질러댄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조명이 켜지고, 온라인에는 카트에 물건을 담으라는 추천 목록이 줄줄이 뜬다. 어느 나라에 살든, 그날만 되면 한 번쯤은 소비의 대열에 끼어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세상 모든 것들이 사라고 부추기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돈을 덜 쓰면서 행복해질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을 무작정 내친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니다. 언젠가 반드시 반작용이 온다. 참다 참다 한 번 무너지면,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카드를 긁게 된다. 그래서 결국 필요한 건, 내 필요와 욕망과 예산 사이에서 조율하는 힘이다. 모두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포기해야만 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사를 하면서 이걸 더 절감했다. 이번에 집을 옮길 때, 너무 많은 물건을 버리고 나니, 물건을 이고 지고 산다는 게 얼마나 피로한 일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박스를 접고, 나르고, 풀고, 다시 접는 과정에서, 내가 가진 것이 곧 짐이라는 걸 몸으로 배웠다. 그래서 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 1년 동안은 생필품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사지 말자고. 안 사는 쪽으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데, 또 살다 보니 여기저기서 틈이 생긴다. 이건 생활 필수품이라고, 저건 있으면 일상이 조금 더 편해진다고, 그런 이유를 붙이다 보면 어느새 짐이 조금씩 쌓인다. 뉴욕에서 보낸 이삿짐은 아직 대서양을 건너는 중인데, 아마 곧 도착하면 상자를 열다가 또 왕창 버릴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많이 들고 다녔을까, 이게 다 정말 필요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명품도, 보석도, 다 왜 사는지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다. 예쁜 것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 좋은 것을 걸치고 싶어 하는 욕망은 분명 이해가 된다. 고단한 날, 나를 위해 뭔가를 하나 사 주고 싶어지는 마음도 그렇다. 리테일 테라피라는 말처럼, 물건을 사면서 잠깐 숨을 고를 수 있는 순간이 있다. 시발비용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붙이고, 그 돈을 감정의 처리비용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비판적인 마음이 든다. 사는 데 그렇게까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예쁜 쓰레기들이 분명 어떤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것도 안다. 그 상반된 마음 사이에서 늘 흔들린다.
그래서 완벽하게 소비를 끊겠다는 다짐 대신, 차라리 이런 기준을 하나 더 생각해 보게 된다. 이 물건이 나를 진짜로 더 잘 살고 싶게 만드는가. 아니면 잠깐의 공허함을 덮어 줄 위로에 가까운가. 그 둘을 가르는 선은 늘 애매하고, 판단은 자주 틀리겠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게 한 번은 물어보려고 한다. 결국 덜 쓰면서 행복해진다는 건, 단순히 돈을 아끼는 기술이 아니라,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일이니까. 결국 또 이렇게 나를 마주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