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도가 조금 낮은 나라에서 일한다는 것

과장된 효율과 무심한 평정 사이에서 일하는 법

by 샤누자오사무

미국 기업 문화에 적응해서 살다가, 정확히 말하면 뉴욕 시티라는 기이한 생태계에 적응해서 살다가, 영국에 와서 일을 시작하니까 이상하게 시간이 한 칸 밀린 느낌이 든다. 다들 분명 오늘을 살고 있는데, 시스템은 5–10년 전 어딘가에 멈춰 있는 것 같다. 모니터 해상도는 미세하게 흐리고, 팬트리에는 화려한 간식이나 스타트업 굿즈 같은 건 없다. 오피스 스피릿이라는 이름의 플라스틱 텀블러도, 로고 박힌 후디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책상, 의자, 컴퓨터, 그리고 오래된 카펫. 딱 일을 할 만큼만 갖춰져 있고, 그 이상은 없는 사무실.


생각해보면, 여기서는 “굳이 안 써도 되는 시스템”은 진짜로 안 쓴다. 바꾸지 않아도 돌아가는 건 그대로 둔다. 뉴욕에서라면 이미 SaaS 세 개를 얹어서 자동화하고, 대시보드 세 장을 뽑아서 회의 때 돌려봤을 부분이 여기는 그냥 공유 폴더와 엑셀에 얌전히 누워 있다. 한때는 “툴을 쓰는 나”를 보여주기 위해 툴을 쓰는 문화 속에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보여줄 것도, 과시할 것도 없이, 그냥 이메일과 공유 폴더에 다시 돌아온 느낌이다. 촌스럽다고 말하기엔 애매하고, 효율적이라고 말하기에도 어딘가 수상한, 그런 중간 지점.


재미있는 건, 한 사람이 하던 일을 여기서는 여러 사람이 나눠서 한다는 점이다. 누가 봐도 한 명이 해도 될 것 같은 일을 n명이 잘게 나눠 맡는다. 그래서 누구 하나가 짐을 다 짊어질 필요는 없다. 누가 빠져도 어느 정도는 커버가 된다. 시스템은 낡았는데, 역할은 이상하게 세분화되어 있다. 그 덕에 “히어로”는 나오기 어렵고, 누가 밤샘했다고 해서 영웅담이 되지도 않는다. 대신 다른 팀에 뭔가를 부탁하려면 아주 구체적으로 요청해야 한다. “이쯤 말하면 알아서 해주겠지”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라면 슬쩍 시스템에 들어가 뒤적거리며 확인했을 것을, 여기서는 그런 행동이 약간의 ‘권리 침해’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보를 너무 많이 요구하는 사람, 필요 이상으로 들여다보는 사람. 그리고 더 웃긴 건, 내가 이걸 조절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정도면 됐다”를 정하는 기준은 내가 아니라, 법이다. 미국 법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절차와 규율이 다르다는 걸, 매번 아주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한다. 그게 내 업무 부담을 묵직하게 늘려놓는다.


회의는 또 다르다. 스몰톡이 없다. 날씨 얘기도, 주말 계획도, 어제 본 드라마 얘기도 없이 바로 안건으로 들어간다. 뉴욕에서라면 회의 30분 중 앞 10분을 얼음 깨는 데 쓰고, 뒤 10분을 잡담으로 마무리했을 텐데, 여기는 직선으로 갔다가 직선으로 끝난다. 그래서 회의는 훨씬 효율적인데, 대신 쉬는 시간은 철저하게 지킨다. 커피 마시는 시간, 점심 시간, 퇴근 시간. 그 시간만큼은 누구도 빼앗지 않는 것 같다. 일을 대하는 태도도, 쉼을 대하는 태도도, 묘하게 단단하다. 바쁘다면서도 급한 티를 그렇게까지 내지 않고, 힘들다면서도 극적으로 힘들어하지 않는다. 이게 영국식 평정인지, 그냥 각자 체념을 잘한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내게 가장 큰 문제는 액센트다. 엄청나게 말이 빠른 것도 아닌데, 일상 대화는 아직 한 80% 정도밖에 안 들린다. 중요한 20%가 꼭 농담, 뉘앙스, 눈치가 필요한 부분이라 더 골치 아프다. 업무 용어, 숫자, 규정 이야기는 오히려 괜찮다. 보고서, 이메일, 메모에는 자막이 달려 있는 것처럼 어찌어찌 따라갈 수 있다. 그런데 복도에서 하는 짧은 농담, 회의 끝나고 나가면서 툭 던지는 말, 점심시간에 슬쩍 오가는 한마디들이 자꾸 반쯤만 들린다. 사람들 목소리가 크지 않아서 더 잘 안 들리고, 괜히 다시 물어보기엔 맥락이 이미 지나가 버린 뒤다. 웃어야 할지, 고개만 끄덕이면 될지, 반박을 해야 하는 타이밍인지도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어쩌면 지금 나는 여기의 리듬에 반 박자 늦게 올라탄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스친다.


가끔은, 뉴욕에서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그렇게까지 빨리, 그렇게까지 많이 할 필요가 있었나 싶어진다. 매일 새 툴을 깔고, 매분 슬랙 알림이 울리고, 회의에 회의를 덧대고, 자기 자신을 브랜드처럼 포장하던 시간들. 여기 와서 보니, 그게 꼭 “앞서가는” 문화라기보다는 단순히 과한 에너지 소모였던 건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영국의 이 특유의 무덤덤함, 괜히 떠들지 않고, 괜히 나서지 않고, 그래도 해야 할 건 꾸준히 해나가는 태도를 보고 있으면, 이게 말로만 듣던 stoicism인가 싶다.


어쩌면 나는 지금, 두 가지 과장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과하게 장착된 뉴욕식 효율과, 과하게 눌러 담긴 영국식 평정 사이. 하나는 너무 빠르고, 하나는 너무 느리고, 둘 다 완벽하진 않다. 다만 분명해진 건 있다.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꼭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의 이 느슨하고 낡은 것처럼 보이는 시스템 속에서도, 누군가는 나름의 속도로, 나름의 방식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사이에서 나는, 아직도 자판을 두들기며 생각하는 중이다. 어디까지 바꿔야 하고, 어디까지는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지. 뉴욕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고, 영국을 완전히 닮을 수도 없겠지만, 둘 중 하나만 정답이라고 믿는 시기는 이미 지난 것 같다. 지금은 그저, 해상도가 조금 떨어지는 모니터 앞에서, 속도를 반 칸쯤 늦춘 채 일하는 나를 관찰해보는 중이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걸, 조금씩 인정하면서.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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