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의 첫 대화들

낯선 곳의 일상 속에서 깨닫는 안정의 다른 형태

by 샤누자오사무

영국에 오겠다고 마음을 굳힌 건 단순한 직업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래된 피로가 축적되고, 삶의 균형이 무너지고, 일과 사람 사이에서 진심을 믿기 어려웠던 시절을 지나면서 나는 결국 한 가지를 깨달았다. 더 잘 살고 더 오래 버티려면, 나는 나를 다시 세울 수 있는 장소로 옮겨야 했다. 환경이 바뀌어야 마음도 바뀐다. 그 변화는 거대한 혁명이 아니라, 아주 작고 조용한 재배치에서 시작된다. 하늘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사람들의 말투가 달라질 때 비로소 다시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택은 도피가 아니라 회복에 가까웠다. 특히 회사에서 경험한 차이는 이 결정을 정당화해주는 듯했다. 첫 1:1에서 윗윗 매니저와 나눈 대화는 오래간만에 누군가가 나의 전문성을 ‘사용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내가 왜 뽑혔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했고, 무엇을 기대하는지 단호하면서도 따뜻하게 전달했다. 회사 내부의 일을 외부로 흘려보내지 말 것, 그리고 시스템과 데이터의 기반을 새로 정비해줄 것. 내가 이전 직장들에서 해왔던 익숙한 작업들이었지만, 이번에는 그것들이 ‘누군가의 무관심을 떠맡는 일’이 아니라 ‘미래의 기반을 만들기 위한 일’로 들렸다. 그 차이는 크다. 같은 일을 해도 사람에 따라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는 것을 실감했다.


직속 매니저와의 첫 대화 역시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는 과정의 속도보다 나의 호흡을 먼저 물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며, 이미 잘하고 있으니 부담 갖지 말라고 덧붙였다. 시스템 접근 권한을 받고, 동료들과 미팅을 잡는 일 같은 아주 사소한 일조차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라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힘이었다. 전 직장에서 혼자서 설명하고 설득하고 끌어안아야 했던 짐들이,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공동의 과제가 되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한 사람의 매니저가 아니라 일종의 ‘안전장치’처럼 다가왔다. 언젠가 부담되는 순간이 오면 자기가 옆에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런 말을 믿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더 잘 살기 위해’ 영국으로 온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왔다. 전 회사에서의 일상은 기술적인 문제보다 관계의 문제에 가까웠고, 업무보다 태도의 무게가 더 무거웠다. 능력을 보여줄 기회는 있었지만, 사람으로 존중받는 일은 드물었다. 고된 일보다 고된 사람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웠다. 결국 나는 내 노동의 의미가 사라지고, 감정의 회복력이 바닥나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이곳으로 온 것이다. 안정은 적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좋은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환경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며.


영국에서의 일상은 그 점에서 훨씬 다르다. 과도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설명을 생략하지 않고,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관계적 소음이 적다. 시스템이 조금 느려도, 그 느림이 무책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맡은 일에 대한 무게를 기본값으로 깔고 있고, 매니저는 팀의 일을 ‘함께’ 챙기는 사람이다.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그 단순함이 조직을 크게 바꾼다.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일이 ‘나를 갉아먹는 무언가’가 아니라 ‘내가 기반을 쌓을 수 있는 도구’로 느껴졌다.


이곳에서의 삶은 아직 시작 단계고, 매일 작은 새로움들이 마음을 흔들지만, 동시에 스스로에게 부드럽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시기라고. 낯섦 앞에서 주눅 들지 않아도 되는 시기라고. 영국으로 온 이유는 결국 명확하다. 나를 소모하는 곳을 떠나, 나를 확장시키는 곳으로 왔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날은 아직 멀었지만, 중요한 건 판단보다 방향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조금씩 나를 회복해가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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