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츤데레와 영국의 느긋한 친절 사이

다른 도시에서 느끼는 다른 온기

by 샤누자오사무

뉴욕에서 오래 살다 보면, 도시가 얼마나 시끄럽고, 거칠고, 동시에 또 얼마나 친절한지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횡단보도 초록불이 켜지기도 전에 차가 앞으로 조금씩 기어 나오고, 사람도 차도 서로 눈치를 보다가 먼저 움직이는 쪽이 이기는 게임처럼 굴었다. 버스는 시간표와 거의 상관없이 오고, 지하철은 오래된 기계 위에 새 기술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다들 잘만 타고 다녔다. 위험하면 같이 욕 한 번씩 하고, 누군가 넘어진 사람을 보면 툭툭 일으켜 세워 주고, 그런 식의 즉흥적인 온기가 있었다. 겉으로는 까칠한데 막상 다가가면 도와주는, 좀 어설픈 츤데레같은 도시.


미국 행정은 또 다른 차원의 세계였다. 비자를 준비하는 데에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걸렸다. 서류를 뽑고, 파일에 꽂아서 들고 다니고, 복사하고 또 복사하고. 온라인 시스템은 분명 있다고 들었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항상 종이 서류가 필요했다. 주토피아에 나오는 느릿느릿한 나무늘보가 실제로 어디에서 왔는지 굳이 상상해 볼 필요도 없었다. 창구에 서 있는 직원의 속도와 표정을 보면, 농담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런던에 와서 처음 놀랐던 건, 오히려 이런 부분이었다. 비자 절차가 대부분 디지털화되어 있고,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된다는 사실. 미국보다 훨씬 느릴 거라고 막연히 짐작했는데, 어떤 부분은 정반대였다. 덕지덕지 기계 위에 새 기술을 붙여 놓은 뉴욕의 지하철을 떠올리면, 여기가 더 필요한 데에 기술을 정확히 쓰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굳이 화려하게 바꾸지 않아도 되는 건 그대로 두고, 꼭 바꿔야 하는 부분에만 조용히 새 시스템을 얹어 놓은 것처럼.


거리에서 체감하는 차이도 있다. 관광객으로 왔을 때도 기억에 남았던 장면이다. 빨간불이든 초록불이든, 사람이 길을 건너려고 발만 내디디면 차가 먼저 멈추던 순간들. 경적을 울리지도 않고, 창문을 열고 뭐라고 소리치지도 않고, 그냥 멈췄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인데도, 뉴욕에서라면 먼저 울렸을 소리가 여기서는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가 몸에 밴 사회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런던의 버스는 모두 낮은 바닥으로 되어 있어서, 휠체어를 탄 사람이나 유모차를 끄는 사람, 거동이 불편한 어른들이 자연스럽게 이용한다. 버스 기사들은 그들이 승하차할 때까지 기다려 주고, 승객들은 당연한 시간을 받아들인다. 누군가 조금 더디게 움직이면, 한두 명이 나서서 밀어주거나 자리를 비켜준다. 그 장면이 특별한 이벤트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장면처럼 흘러간다.


뉴욕에도 휠체어가 탈 수 있게 설계된 버스가 있고, 기사들이 경사로를 내려주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어딘가에서는, 이런 배려가 약자를 위해 사회가 효율을 희생하는 것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반면 여기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기 위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속도처럼 받아들여진다. 약간의 불편함에 날을 세우는 대신, 그 시간 동안 함께 기다려 주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


화장실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자주 본다. 휠체어 겸용 화장실을 몇 번 쓰게 되었는데, 세면대, 비누, 손 건조기까지 모두 휠체어 높이에 맞춰져 있었다. 뉴욕에서도 겸용 칸을 써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까지 높이가 완전히 맞춰져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때 조금 놀랐고, 조금 감동했다. 특별 대우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 사람을 같이 상상하고 설계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게 맞는데, 하는 생각이 뒤늦게 따라왔다.


거리에는 눈에 띄게 많은 전기 트럭과 전기 자전거가 다닌다. 뉴욕에도 공용 자전거가 있지만, 거기는 편의성과 속도가 먼저 떠오른다. 여기에서는 편의보다 환경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물론 실제 의도가 어떤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보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껴진다. 편리함뿐 아니라 환경을 함께 생각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다. 이동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 시스템과, 환경을 고려한 교통수단이 도시에 고르게 섞여 있다.


이 도시가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버스가 늦는 날도 있고, 행정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런던 사람들도 버스와 기차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그래도 시간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뉴욕의 버스를 떠올리면, 이곳의 대중교통은 충분히 안정적이고, 무엇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런던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이 모든 것들 뒤에 조용한 스토아주의 같은 것이 깔려 있는 건 아닐까 싶어진다. 불편을 완전히 없애려고 하기보다, 어느 정도의 불편은 같이 감수하며 사는 것이 삶의 일부라고 받아들이는 태도. 행정은 느리고, 버스는 가끔 늦고, 비는 자주 오고, 예측할 수 없는 요소들이 많은데도, 그 안에서 서로를 조금씩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연습을 오래 해온 사회 같다. 그래서인지, 시민의식이라는 단어가 과장되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렇다고 뉴욕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뉴욕에는 뉴욕만의 매력이 있다. 상냥하다고 말하기에는 거친데, 그렇다고 차갑다고 하기에는 이상하게 또 따뜻하다. 겉으로는 투덜거리고 욕을 하면서도, 진짜 위험한 순간에는 몸부터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 계산이 빠른 대신, 마음도 빨리 움직이는 도시. 런던이 조용한 존중을 닦아 온 곳이라면, 뉴욕은 서툴지만 정이 많은 츤데레 같은 곳에 가깝다. 둘을 비교하면 한쪽이 더 나아 보이는 순간이 있지만,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뉴욕과 런던을 자꾸 비교하게 되는 이유는, 둘 다 내 삶의 중요한 시간이 묻어 있는 도시라서일 것이다. 한 곳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다른 한 곳은 몸과 마음의 힘을 조금 덜 써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뉴욕은 겉으로는 퉁명스럽고 정신없이 돌아가지만, 안쪽에 정이 많은 친구 같고, 런던은 말수가 많지 않은데 묵묵히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 같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문화는, 속도와 효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온기를 품고 있다는 것. 그 온기를 닮아 가고 싶다는 마음이, 이 도시들을 조금 더 사랑하게 만든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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