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율과 비효율의 균형
뉴욕에서 살던 밤을 떠올리면, 먼저 소리가 난다. 사이렌, 경적, 어디선가 새어 나오는 음악,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연 가게의 웃음소리. 창문을 닫아도 완전히 차단되지 않던 소음이 있고, 두꺼운 블라인드를 내려도 끝까지 막히지 않던 불빛이 있었다. 잠들기 직전 눈을 감으면, 눈꺼풀 안쪽에까지 네온사인이 남아 있는 느낌. 뉴욕의 야경은 그 자체로 별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아도, 아래에서 빛나는 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불빛 아래에 서 있을 때 인간적인 온기를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늘 누군가를 추월해야 할 것 같고, 뒤처지면 안 될 것 같고, 살고 있다는 감각보다 버티고 있다는 감각이 더 앞서곤 했다.
런던으로 옮겨온 뒤의 밤은 다르다. 도심 한복판은 여전히 붉은 버스와 헤드라이트로 소란스럽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공기가 바뀐다. 나뭇가지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스친다. 불을 끄고 누우면, 굳이 눈을 가리지 않아도 될 만큼 어둡다. 창문 밖으로 번쩍이는 간판 대신, 운이 좋으면 희미한 별 하나가 보인다. 퇴근길에 올려다본 하늘이 생각보다 넓다는 걸 깨닫는 저녁이 있다. 날씨가 허락하는 날이면, 이 도시에서도 별이 보인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다.
인간다움이란 뭘까. 예전에 누군가, 인간을 동물과 다르게 만드는 건 별을 보며 우주를 생각하는 존재라는 말을 했었다. 밤이 긴 이곳에서, 퇴근길에 고개를 조금만 들면 그 말을 떠올리게 된다. 고갱의 그림 속 문장처럼,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우주 안에서 우리는 정말 혼자인지. 거창한 철학자가 아니어도, 하늘에 박힌 작은 빛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들이다.
조금 더 내려다보면, 이 질문은 우주가 아니라 내 삶과도 연결된다. 보이는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영향을 받고,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것들과 얽혀 있다. 사람 사이의 감정도 그렇고, 도시의 공기도 그렇다. 야경이 화려하다고 해서 그 아래에서의 삶이 환한 건 아니고, 하늘이 어둡다고 해서 반드시 우울한 것도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생각보다 더 많은 방향을 정한다. 그 보이지 않는 층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어쩌면 인간다움의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
예전에 썼던 말이 떠오른다. 좋은 것이란, 나를 잘 살고 싶게 만드는 것이라고. 좋은 사람을 만나면 조심스레 내 말투를 돌아보게 되고, 좋은 글을 읽으면 나도 한 줄이라도 쓰고 싶어지고, 마음에 드는 옷을 입으면 오늘 하루를 조금 더 정돈해서 살고 싶어진다. 별도 그런 것 같다. 퇴근길에 문득 보이는 작은 별 하나가, 내 삶 전체를 바꿔놓지는 못해도, 내 안의 흐물흐물한 의욕을 살짝 일으켜 세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주 잠깐이라도 묻게 만든다.
문제는 언제나 속도다. 어디든 빨리 도착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그 길 위의 풍경은 아무 의미가 없다. 계획표와 성과표만 들여다보고 살다 보면, 길가에 괜히 피어 있는 꽃도, 이름 모를 가게도,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오후도, 전부 쓸모없는 장면처럼 보인다. 효율이 기준이 되는 순간, 이런 것들은 죄다 삭제 대상이 된다. 그런데 정작 살아 있다는 감각은, 이런 비효율적인 장면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뉴욕에서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자꾸 잊어버렸고, 런던의 느려진 밤이 그걸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느리고 비효율적인 삶만이 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너무 큰 질문들만 붙잡고 있으면, 현실이 금방 비관적으로 변한다. 우주와 존재 이유를 생각하다가, 정작 오늘 내 통장 잔고와 내 몸 상태를 잊어버리기 쉽다. 비효율을 사랑해야 한다며 모든 걸 흩뜨려 버리면, 기쁨과 행복은 항상 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늘은 열심히 올려다보는데, 바닥을 잘못 디뎌서 자꾸 넘어지는 느낌. 이런 상태에서는 타인에게 다정해질 여유도 생기지 않는다.
결국 다정함은 여유에서 나온다. 돈, 시간, 체력, 정신력. 이 네 가지 가운데 최소한 둘 이상은 남아 있어야 웃으면서 안부를 물 수 있다. 모두 소진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져도 말끝이 날카롭게 변하고, 마음속에서 짜증이 먼저 튀어나온다. 효율이라는 건 결국 여유를 확보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계획을 세우고, 일을 정리하고, 일정에 맞춰 움직이는 이유는 기계처럼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타인을 위해 남겨둘 여백을 만들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효율과 효율은 서로 싸우는 개념이 아닌 것 같다. 한쪽이 다른 쪽을 몰아내야 하는 적이 아니라, 어느 날은 한쪽에 조금 더 기대고, 다른 날은 반대쪽을 붙잡으며 살아가야 하는 두 개의 축에 가깝다. 어설픈 균형이라도 어떻게든 맞춰야 한다. 일을 정리해 두어야 밤하늘을 볼 힘이 생기고, 별을 한 번쯤 올려다봐야 다시 내 할 일을 버텨낼 이유를 찾게 된다.
뉴욕의 불빛 속에서 나는 늘 바쁘게 움직였다. 불을 꺼도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는 방 안에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할 틈 없이 다음 날 알람만 맞추고 잠들었다. 그때의 나는 어쩐지 살아간다기보다, 다음 날에 밀려가는 느낌이 더 강했다. 런던의 어두운 밤에 누워 있으면, 예전에는 하지 않던 생각이 조금씩 떠오른다. 오늘 내가 본 사람들, 지나친 풍경, 아직 말하지 못한 마음, 언젠가 가보고 싶은 곳. 인간다움이란 거창한 게 아니라, 이런 사소한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성질일지도 모르겠다.
별을 본다고 세계의 비밀을 알게 되는 건 아니다. 다만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아주 조금 더 진지하게 떠올리게 된다. 그 잠깐의 멈춤이, 내일의 속도를 결정하기도 한다. 오늘 밤도 불을 끄면 방 안이 금방 어두워진다. 나뭇가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스친다. 그 사이에서 나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살아야 하고, 얼마나 비효율을 허락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둘을 오가면서 얼마나 인간답게 남아 있을 수 있을지를 조용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