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지 않는 사람들

의미 없는 요청과 '그냥'의 언어, 듣지 않고 들리지 않는 대화

by 샤누자오사무

요즘 이메일을 문자처럼 아무렇게나 쓰는 게 꼭 젊은 세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내 직속 매니저도 제목 없이 보내거나, 제목을 써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내용은 정리도 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쓴다. 점점 더 짧아졌다. 한때 이메일은 공적인 기록이자 증거의 무게를 지녔지만, 지금은 즉흥적 감정과 습관이 투영된 메모지에 가까워졌다. 질문해서 더 설명을 부탁해도 늘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 그렇게 좀 해~”라는 한 줄이 하루치의 계획을 지우고, 회의를 무력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스타일의 문제라 생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된다. 불명확함은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고, 책임의 부재와 무능함이 낳은 결과다. 말의 흐름이 흐릿해질수록 책임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결국 아무도 주인의식을 갖지 않는다. 명료하게 쓰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구조 속에서 침묵과 모호함이 살아남는 방식이 된다.


내 메일함은 그런 흔적들로 가득하다. 제목 없는 메일, 맥락 없는 지시, 책임 없는 말이 줄줄이 이어진다. 읽을수록 스스로 묻는다. 내가 이 조직에서 말의 무게를 너무 진지하게 붙잡고 있는 건 아닌가, 오히려 방식과 어긋나 고립되는 건 아닌가. 그러나 언어가 무너지는 순간 사람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래서 사소한 메일도 다시 읽고, 문장의 끝을 매만진다. 내가 사라지지 않도록 기록하는 일은 어쩌면 마지막 자구책이다.


회의가 끝난 뒤 돌아오는 길에도 수신함을 스크롤한다. 이해되지 않는 말들 앞에서 나는 내 언어를 다시 적어둔다. 혹시라도 언젠가,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증거가 필요할까 봐. 이 조직이 남긴 건 혼란이지만, 내가 남길 수 있는 건 기록뿐이다. 그 기록이 언젠가 나를 지켜줄지 모른다.


그러나 회의 자리에서는 기록조차 공허하다. “그냥 잘 되게 하면 안 될까?”라는 말이 반복된다. 말은 대화의 형태를 띠지만 실은 요청이다. “나는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결과는 좋아야 한다.” 질문을 하면 되레 따져 묻는다. “도대체 뭐가 필요하다는 거냐”고. 아니, 그걸 알아야 내가 설명을 하지 않나. 결국 도돌이표가 된다. 듣지 않는 자리에서는 내가 하는 일련의 설명이 ‘부정적’이라는 꼬리표로 돌아온다. 내가 무엇을 모르느냐보다 무엇을 끝내 들으려 하지 않느냐가 이 구조의 핵심이다.


말이 되지 않는 말을 반복해서 듣는 일은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그 사람과 얘기할 땐 뇌가 멈춘다. 무슨 반응이 나올지 알기에 말 걸기도 싫어진다. 질문하면 모른다고 한다. 그런데 모른다는 사람이 뭘 쉽게 해결하라 한다. 눈은 끝내 마주치지 않고, 말은 흘러간다. “도와달라, 우리는 팀이다”라는 말 뒤에 남는 건 결국 혼자 짊어진 책임뿐이다.


어드바이저가 일정을 꿰맞추고, 해외 동료까지 불러 모아 겨우 미팅을 열었다. 그는 사람 좋은 얼굴로 “what’s going on”이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어제 내가 아파서 결근했다는 사실에는 관심도 없었다. 회의가 시작되면 늘 그랬듯 안경을 벗고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things go hand in hand.” “this is the reality.” 몇 줄의 대사만 되풀이된다. 마치 버튼을 누르면 정해진 문장만 흘러나오는 인형 같다.


정작 우리가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다. 대신 콜에 없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세운다. “그 사람이 다 알 거야.” 그러나 그 사람은 이미 파트너십을 종료한 어드바이저이고, 사안의 핵심과도 거리가 멀다. 우리가 충분히 검토하고 논의했다는 설명은 허공에 흩어진다. 그는 “we need to level set”을 선언하고, 하고 싶은 말만 이어가다 시간이 차면 회의 도중에 나가버린다. 결과를 가져오면 일을 하겠다고, 일을 해야 결과가 생긴다는 순서를 거꾸로만 주장한다. 이해하지 못한 채 듣는 흉내를 낸다. 그래서 회의는 진행되지만 일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결과만 원하고, 시간은 소모되고, 사람들은 지친다.


회의가 끝나면 마음이 어수선하다. 며칠, 몇 주, 몇 달째 같은 문장이 반복된다. 사실 그는 그렇게 몇십 년을 살아왔고, 그렇게 그 자리까지 갔겠지. 오늘도 나는, 어드바이저도 설득하려 애썼다. 그러나 “현실이 이렇다”는 말은 답이 아니라 닫힌 문이다.


설득이란 결국 상대의 세계에 잠시 들어가 그 언어로 말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특히 그와 일을 해야하는 상황에는, 문이 잘 열리지 않는다. 아니 문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정제해 다시 건넨다. 혹시라도 문이 흔들릴까 해서. 그러나 문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끝으로 남는 건 피로와 체념이다. 매일 아침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피로가 시작되고, 미팅이 끝나면 마음은 어수선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기록을 놓지 않는다. 언어가 무너질 때 사람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단어의 자리를 다듬고 문장을 남긴다. 언젠가 내가 미쳤던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듣지 않는 자리에서 결과만 요구하는 문화는 사람을 지운다. 내가 배운 건 단 하나다. 설득은 질문으로 끝나지 않고, 먼저 듣는 일에서 시작한다. 듣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은 자주 소리만 낼 뿐, 아무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그럼 무엇을 원하나요? 그리고 또 묻는다. 우리는 정말로 대화하고 싶은가, 아니면 그저 결과만 원하고 있는가. 결국 사람은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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