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와 회의가 늘어날수록 본질에서 멀어지는 하루
월요일 아침, 달력에 또 하나의 회의가 끼어들었다. 예고도 맥락도 없는 자리였다. 이름은 ‘weekly status update’였지만, 사실상 비슷한 회의가 이미 여러 개 겹쳐 있었다. 매니저는 여섯 명을 불러 세워놓고 30분 동안 차례차례 발언을 시켰다. 길게 말할 수도, 간단히 자를 수도 없는 애매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우리가 보고 있는 진행 상황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원하는 건 단 하나, 자신이 보기 편한 트래커에 붙일 수 있는 문장 조각들이었다. 그러나 그 트래커는 금세 잊히고 흩어졌다. 한 번도 업데이트되지 않았고, 이후 회의도 열리지 않았다. 결국 모두가 알았다. 이건 일의 진척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보여주기용 ‘빈 껍데기’일 뿐이라는 것을.
회의는 언제나 그가 총애하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그 사람이 늦으면 회의 시작조차 미뤄졌다. 30분 중 20분은 그에게 쓰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배경이었다. 둘이서만 이야기하면 충분할 일을 굳이 여섯 명을 붙잡아 두고, 공허한 말잔치를 벌였다. 내게는 질문조차 오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던진 마지막 물음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았고,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그 순간 나는 작은 아이콘일 뿐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말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말의 무게는 사라지고, 남는 것은 겉모습뿐이었다. 대화는 다리를 놓지 못한 채 메아리만 남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말하지 않는 것을 택했고, 그 택함이 곧 생존의 방식이 되었다. 결국 회의는 말의 장이 아니라 체념의 장으로 굳어졌다.
회의실은 사람으로 가득했지만, 정작 내용은 공허했다. 질문이 오가도 답은 늘 “그건 그냥 그렇게 해두자”라는 말뿐이었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시선을 피했다. 말은 쏟아졌으나 실질은 남지 않았다. 조직은 그렇게 공허한 언어 위에 세워졌다. 대화의 형태를 띤 요청은 사실상 회피였다. “나는 모르고 싶다. 그러나 결과는 좋아야 한다.” 그 속내를 알기에 설명은 늘 공중에 흩어졌다. 설명할수록 더 피곤해졌고, 그 피로는 팀 전체에 내려앉았다. 정직하게 진실을 말한 사람이 오히려 부정적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더 말하지 않게 되었고, 공허한 언어만이 쌓였다. 이 침묵은 조직의 가장 확실한 합의였다.
이런 자리는 피로만 남긴다. 누구도 얻는 것이 없는 회의. 그러나 이건 우리 부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CEO가 보내는 주간 메일에는 늘 퇴사자 명단이 붙었다. 다섯, 여섯, 이번 주는 일곱. 숫자는 늘고 이름은 줄어들며 회사는 점점 비어갔다. 그럼에도 회의는 멈추지 않았다. 피드백 세션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았고, 둥글게 앉아 팀워크와 소통, 앞으로의 방향을 말하라고 했다. 모두가 눈치챘다. 듣고 싶은 말만 듣겠다는 자리라는 걸.
정직한 말은 위험했다. 불편했고, 불이익을 예고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난한 말만 남겼다. 회의록에는 “오픈된 피드백 세션 진행 완료”라는 문장 하나가 덧붙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트래커가 또 만들어지고, 매트릭이 제안되고, 회의가 늘어났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진짜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걸. 불편한 척은 하지만 정작 진짜 불편한 건 감추어진다. 리더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팀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끝나고 나면 또 하나의 트래커가 남는다.
트래커가 만들어지고, 미팅이 늘어나고, 성과는 정량화되지 않은 매트릭으로 환원된다. 이는 조직이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이었다. 책임은 개인에게, 피드백은 전체에게, 권한은 리더에게만 남는다. “같이 일하는 게 중요하다”라는 말은 반복되지만, 정작 팀을 혼자 끌고 가는 건 늘 같은 사람이다. 혼자서 기준을 만들고, 혼자서 예외를 정한다.
재택근무 규칙도 마찬가지였다. 분기마다 주어지던 재택근무 주간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대신 “금요일은 모두 재택”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함께 얼굴 보고 일하는 것이 so much valuable하다.” 그러나 현실은 더 엉뚱했다. 팀 대부분은 월요일이나 다른 날을 골라 무작위로 빠졌다. 어차피 이틀 정도는 자리를 비우는데, 굳이 금요일을 지정해 강제할 이유가 있을까. 자유롭게 하루를 고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이곳의 규칙은 언제나 논리나 효율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 우스운 건 규칙을 만든 매니저 본인이었다. 그 규칙을 정한 주, 목요일에 재택을 하느라 나오지 않고 금요일에 출근했고, 그 다음 주는 아예 이틀째 무단 재택이었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과의 1:1은 다 진행했다. 그러나 내 미팅만은 취소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얼굴 보고 하는 날로 다시 잡겠다.” 하지만 다시 잡히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면 오해의 여지는 없다. 그는 나를 피하고 있었다. 싫어한다는 게 드러났고, 굳이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결국 규칙과 트래커는 이곳에서 사람을 가르는 도구였다. 명분은 얄팍했고, 자의적인 규칙은 위선을 드러냈다. 모두가 알았다. 진짜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는다는 걸. 진짜 불편한 건 꺼내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오늘도 질문은 삼켜졌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한 조직. 본질은 사라지고, 트래커만 남는 제국. 여기서는 업데이트와 회의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본질에서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