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셀을 싫어하고 AI를 사랑한다

도구가 주인이 된 풍경, '간단하다'는 구호가 만든 허무와 위험.

by 샤누자오사무

엑셀도, 기본 시스템도 없이 구글 드라이브 하나로 회계와 재무를 굴리라는 말은, 애초에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고백과 같다. 오가며 서식이 깨지는 파일들을 붙잡는 동안 책임은 증발한다. “CEO hates Excel”이라는 문장이 자랑처럼 떠돌 때면 실무의 언어는 조롱거리가 되고, 심장은 스스로를 방치한다. 숫자와 문서가 회사의 심장이라면, 최소한의 도구를 거부하는 태도는 그 심장을 내버려 두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쪽에서는 AI 찬양이 종교적 구호처럼 울린다. 전사 미팅에서 “인류의 99.99%보다 탁월하다”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오간다. 그래서 탁월하지 않은 사람은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나는 그 말 앞에서 숨이 가라앉는다. 그리 탁월하지는 않지만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해내는 사람들의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그들의 세계에서 그런 존재는 이미 지워진 듯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LLM을 쓰라는 구호는 거칠 것 없지만, 답이 아니라 검증이 결여된다. 챗봇이 던진 문장을 사실처럼 들고 와 반박을 거부하는 순간, 우리는 결과가 아니라 우연을 다루게 된다. 법률 문서까지 무심히 도구에 던지고 “요약해줘”라고 말할 때, 이미 기준은 무너진다. 문서의 무게는 사라지고 요약된 문장만 진실처럼 떠돈다. 그 무게 없는 문장으로 굴러가는 회사는 모래 위에 쌓인 성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는 묻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나는 긴 이메일 안 읽는다”는 매니저의 말은 합리의 종지부가 된다. 세무 이슈를 꺼낼 때마다 “That doesn’t make sense”라는 말로 문이 닫히면 대화는 시작되지 않는다. 모른다면 적어도 듣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그 모름을 뚫고 문제를 올리는 일이지만, 그조차 ‘부정적’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남는 것은 답답한 침묵뿐이다. 무엇을 알지 못하는가보다, 무엇을 끝내 들으려 하지 않는가가 더 본질이다.


회계와 세무, 법률은 규정과 수치, 문서와 책임의 세계다. 잘못된 한 줄의 판단이 회사를 흔들 수 있기에 신중함이 생명이다. 그러나 지금의 인공지능은 그저 참고 자료일 뿐이다. 설계와 검증은 더 엄격해져야 하는데, 이곳에선 “무조건 쓰라”는 구호가 규범이 되었다. 매주 “AI를 어떻게 썼는지” 실적을 제출하고, 보고서에는 억지로 “활용 사례”를 끼워 넣는다. 쓰임이 없는 기능을 돌려보고, 결과가 없어도 흔적을 만들어야 한다. 성과가 아니라 흔적이 평점을 좌우하는 구조. 결국 본질은 뒷전이 된다.


더 위험한 건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판단마저 도구에 맡기는 일이다. 법인 설립, 기부금 공제, 지분 기부 시기 같은 사안이 “챗봇이 이렇게 말했다”는 근거로 오간다. 세무·법무 전문가의 견제는 생략된다. 아니, 책임져야 할 이들이 앞장서서 도구만 쓰라 한다. 책임이 필요한 순간에 책임의 언어가 사라진다.


사람을 다루는 자리도 예외가 아니다. 채용과 면접, 인사 정책에까지 인공지능이 들이밀린다. “처리 속도가 빨라졌다”는 자축이 전부다. 사람의 결을 세밀하게 읽어야 할 순간, 기계의 속도가 맥락과 책임을 대체한다. HR은 “적응하라, 아니면 떠나라”를 구호처럼 내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 중심’이어야 하는 영역부터 기계로 바꾼다. 빠름은 늘 편리하지만, 빠름이 항상 옳음은 아니다.


보안을 책임져야 할 자리에서조차 무지는 용기를 가장한다. 기밀 문서를 요약하라고, 계약 초안을 만들라고, 인공지능에 던지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이미 있는 기능조차 이해하지 못해 다시 만들라고 한다. 자동 메시지를 끝없이 쏟아내며 그것을 ‘혁신’이라 부른다. 결과보다 포장이 중요해지고, 본질보다 장식이 앞선다. 결국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AI로 했다고 말할 수 있느냐”가 기준이 된다.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는 나였다. 팀에서 AI 결과물을 취합해 영상으로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왔다. 보여주기용 이벤트의 전형. “그거 간단하잖아, you are good at those videos.” 간단하다는 말 속에 시간과 노력이 증발한다. 동료들은 “당신이라면 할 수 있다”는 말로 한발 비켜선다. 누구의 일도 아닌 일이 내 일이 된다. 그 사이 주니어 동료들은 속삭인다. “우리가 일을 하러 온 건지, 인공지능을 쓰러 온 건지 모르겠다.” 지금의 풍경을 가장 정확히 요약한 말이다.


그의 무지와 무능은 나를 더 무력하게 만든다. 내가 쌓아올린 신뢰를 조금씩 갉아먹고, 내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품으로 만든다. 일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소진되는 날의 끝은 늘 같다. 머리는 멍하고, 숨은 짧다. 떠나고 싶은 마음과 버텨야 한다는 책임감이 가슴을 동시에 당긴다. 내일은 분석의 첫 단계를 다시 설명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내 질문을 내 목소리로 적어둔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내 말을 잃지 않기 위해.


인공지능은 도구다. 도구는 일과 사람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도구가 주인이 되었다. 전략이 아니라 정치, 개선이 아니라 연출, 학습이 아니라 흉내. 빈 수레가 굴러갈수록 더 큰 소리를 내고, 소리의 크기가 내용의 무게를 속인다. 가장 비극적인 건, 이 연극 속에서 책임감 있는 사람이 가장 먼저 번아웃된다는 사실이다. 본질을 아는 사람이 가장 먼저 침묵한다.


나는 여전히 안다. 회계와 법무, 세무의 세계가 왜 존재하는지. 우리가 문서와 절차, 서명을 중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조직을 지탱하는 건 구호가 아니라 신뢰이고, 신뢰는 일관성과 책임에서 생긴다. 도구는 그다음이다. 지켜야 할 순서는 언제나 같다. 내일의 회의에서 또다시 “활용 사례”를 묻는다면, 적어도 나는 기록하겠다. 무엇이 비어 있고 무엇이 무거운지, 어디부터 다시 쌓아야 하는지. 빈 수레의 소리가 잦아든 뒤에도, 사람의 목소리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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