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끝판왕이라는 말의 천박함에 대하여

가성비와 자기중심적 세계관

by 샤누자오사무

세상 어디에 가든 돈 없으면 힘들게 산다. 체제 이름이 뭐든, 국기가 어떤 색이든, 경제 구조가 얼마나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든 이 사실은 잘 바뀌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응당 그렇듯, 같은 물건을 한 군데에서는 싸게 팔고, 옆 가게에서는 비싸게 팔 수 있다. 비싼 것이 언제나 더 좋지도 않고, 싼 것이 언제나 더 나쁘지도 않다. 무조건 비싸다고 좋은 게 아니고, 무조건 싸다고 합리적인 것도 아니다.


흥미로운 건, 이런 구조 안에서 살아 남기 위해, 혹은 그 안에서 더 높은 자리를 향해 올라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그 체제를 향해 걸어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미국이든, 영국이든, 한국이든, 사람들은 그 안에서 나름의 성공을 꿈꾼다. 유학을 택하고, 이민을 고민하고,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주재원 발령을 기다리고, 스타트업 비자를 노린다. 자본주의가 싫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의 기회를 찾는다. 그러면서도 입 밖으로는 자주 이런 말을 꺼낸다. 런던은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다, 미국은 돈이면 다 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아닌 나라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가 서 있는 땅 대부분은 이미 그 질서 안에 있는데.


어디든 두고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가성비라는 단어가 거의 유일한 기준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싼 값에 많이 먹고, 많이 보고, 많이 누릴 수 있는 곳이 좋은 곳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미국과 영국은 자동으로 최악이 된다. 가격은 높은데, 내가 기대한 수준의 편안함과 재미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건, 가성비만 따지는 그 태도 자체가 오히려 더 극단적인 자본주의의 사고방식이라는 점이다. 얼마를 썼고, 그만큼 무엇을 건졌는지를 순간적으로 계산하는 습관. 싸게 누릴 수 있는 곳에서만 편안함을 느끼고, 그 가격에 맞춰 노동과 자원의 뒷면을 상상해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럼 거기에 가성비를 따지는 게 잘못이냐고 반문하겠지만, 문제는 가성비라는 한 줄짜리 잣대로 도시 전체, 나라 전체의 가치를 재단해 버리는 그 태도에 가깝다.


극단을 논하자면, 오히려 미국 쪽이 각종 면에서 더 앞서 있을지 모른다. 의료 접근성이 한 사람의 직장과 보험 여부에 강하게 묶여 있고, 교육과 주거, 교통까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이 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돈이 있으면 극적인 선택지가 열리고, 없으면 선택지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영국의 자본주의가 완곡하게 사람을 압박한다면, 미국의 자본주의는 훨씬 더 노골적이고 직선적이다.


영국은 또 다르다. GP를 보기 위해 몇 주씩 기다리는 것은 분명 고통스럽다. 다만 지갑 사정과 상관없이, 적어도 언젠가는 의사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결을 가진다. 이것을 사회주의에 가깝다고 부르든, 계급이 여전히 살아 있는 입헌군주국의 구조라고 해석하든, 최소한 미국식 돈이면 해결되는 구조와는 조금은 다른 방향이다. 부자와 서민의 경계가 아니라, 신분과 계급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더 답답할 수도 있고, 그래서 더 인간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묘하게 단순한 그림 안에서만 생각한다. 문제는 극단적인 표현이 생각보다 사람들을 쉽게 묶어 준다는 점이다. 런던은 먹는 것이 엉망인 도시다, 영국이 영국했다, 영국은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다. 이런 말을 할 때 사람들은 어떤 약간의 통쾌함을 느낀다. 나는 이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느낌,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는 자기확인.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이런 빈말에 가까운 유머를 반복해서 늘어놓는다고 해서 특별히 지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어느 위치에서 무엇을 보았는지에 따라 도시는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다. 원래 살던 곳의 물가와 환율만 들고 와서 비교하면, 어디든 불만이 앞서게 마련이다. 고향이 그리운 것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결국 내가 어디에 있어서 행복한지가 아니라, 내가 어떤 상태에서 살아가느냐가 더 크다. 스스로를 온전히 지탱할 수 있을 때, 어느 도시로 나가든, 어느 체제 안에 들어가든 덜 휘둘린다.


어디가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냐를 묻기 전에, 어쩌면 이런 질문을 먼저 던져봐야 할지 모른다. 나는 지금 세상을 어떤 좌표에서 보고 있나. 싸게 누릴 수 있는 것만을 기준으로 도시를 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편한 구조에만 착 달라붙어 있으면서, 그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소모되는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자본주의의 문제를 말하면서, 정작 가장 자본주의적인 마인드셋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마다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은 다르다. 고향이 그리울 수도 있고, 지금 사는 도시가 죽도록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다. 그 감정 자체는 아무도 비난할 수 없다. 다만, 그 감정을 극단적인 말로 포장해 타인을 깎아내리는 순간, 그 말은 통찰이 아니라 편협이 된다. 외국에서 살든, 고향에서 살든, 결국 중요한 건 한 가지일지 모른다. 나는 어디에 있어도 나답게, 조금 덜 좁게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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