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인생 구경 말고, 내 인생 살기 연습
해외에 나와 살면 사람들은 보통 이런 것들을 먼저 묻는다. 어느 나라에 사는지, 어느 도시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연봉은 어느 정도인지, 거기 비자는 어떤 종류인지, 배우자는 무슨 일을 하는지, 아이가 있다면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어렸을 때부터 그런 질문들이 꽤 불편했다. 특히 나보다 한두 살 많은 사람들이 어린데 대단하다, 라고 말할 때. 그 말 속에는 겉으로는 칭찬 같은 모양이지만, 실제로는 나이를 기준으로 사람의 수준과 가능성을 가늠하는 시선이 숨어 있었다. 나이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나이로 네가 아직 뭘 모른다고 귀엽다는 듯 이야기하는 말들. 언젠가 살아보면 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같은 말들. 이상하게도 그런 말들은 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방향으로만 흘렀다.
우리가 익숙한 사회는 줄세우기와 급나누기에 능숙하다. 몇 살에 무엇을 했는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첫 직장은 어디였는지, 언제 결혼하고 언제 아이를 낳았는지. 숫자와 연표로 사람의 가치를 정리하려 든다. 줄을 세우고, 등급을 나누고, 서로를 은근히 경멸하면서 동시에 경멸받는다. 나이와 직장 이름, 연봉과 거주지로 사람을 재단하는 습관 속에서, 정작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 인간됨 자체에 대한 질문은 계속 뒤로 밀린다.
이런 문화에서 자라다 보니,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거의 없다. 나도 모르게 그 프레임으로 나를 본다. 이 나이에 이런 걸 하고 있는 내가 괜찮은가, 너무 뒤처진 건 아닌가, 너무 튀는 건 아닌가. 내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인생을 살게 된다. 다양한 삶의 방식이라는 걸 애초에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정형화된 패턴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걸 두려워한다. 결혼하지 않는 사람,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 남들이 부러워하지 않는 직장을 선택한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면 본능처럼 손가락질부터 나온다. 보상심리와 열등감이 섞인 시선으로 내려친다. 백년도 안 되는 인생을 남 눈치 보다가 끝내는 셈이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답은 단순하다. 이 흐름을 그대로 따라 살면 괴롭고, 반대로 살면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함부로 줄세우거나 급 나누지 않기. 남을 경멸하기 전에, 남의 경멸을 흘려보내는 법을 배우기. 나이 숫자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 머릿속에 박힌 프레임을 조금씩 넓혀 보기. 누군가의 연애와 결혼 상태보다 그 사람이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에 더 먼저 궁금해하기.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두려워만 하기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볼지 고민해 보기.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줄세우기 문화 안에서 살면서, 나 자신만 깨끗하게 빠져나가겠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아마 중요한 건 탈출이 아니라 방향일 것이다. 남의 삶을 줄 세우는 대화에 끼어들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도 좋다. 나이 물어보기 전에 살아온 이야기를 먼저 듣는 것. 연애와 결혼 여부로 안부를 대신 묻지 않는 것. 누군가의 선택이 내 기준에서 이해되지 않을 때, 이유를 한 번쯤 상상해 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남이 나를 줄 세우려 할 때의 태도. 나는 지금 이런 방식으로 살고 있고, 이게 나에게 맞는 선택이라는 걸 스스로 알고 있다면, 누군가가 후려치거나 손가락질하는 순간에 조금 덜 흔들릴 수 있다. 그 사람이 내 삶을 부러워하면서 직접 인정하기는 싫어서, 열등감과 보상심리로 이상한 말을 내뱉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이해하면, 약간의 연민이 생긴다. 나를 깎아내리는 그 말을, 나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 사람의 두려움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물론 말처럼 마음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남들의 기준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할수록 더 신경 쓰이는 날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손 놓고 살자는 말은 아니다. 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에 조금 더 깊게 몰입해 보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보자는 제안에 가깝다. 어떤 순간에는 남이 나를 어떻게 볼지가 덜 중요해지는 때가 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내 삶에 진짜로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누군가의 평가가 잠시 뒤로 밀리는 경험. 그 시간을 조금씩 늘려 가는 것.
그렇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부모님의 기대와 주변의 기준에 눌려 사는 사람들, 결혼과 출산, 커리어의 타임라인에 갇혀 숨 막혀 하는 사람들. 해외에 나와서까지 사는 나라, 도시, 비자 종류, 배우자의 직업과 신분, 자녀의 학교 같은 것들로 스스로를 평가받는다고 느끼는 사람들. 남들이 대단하다고 말하는 길을 일부러 골라왔는데, 정작 마음은 점점 비어 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너무 가벼운 위로를 건네고 싶지는 않다. 단지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이 문화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우리도 그 문화를 조금씩 재생산해 온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줄 세우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상처를 받으면서도, 다른 누군가의 삶을 평가하는 자리에 앉아본 적이 있다면, 우리는 완전히 무고한 입장은 아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조금씩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내가 당했던 방식으로 다시 남을 대하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것. 이 사소한 결심이, 생각보다 멀리 간다.
결국 행복해지는 길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줄 세우는 세계의 정반대 방향으로, 아주 조금씩 걸어 나가 보는 것. 남보다 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먼저 묻는 것. 나이에 맞는 삶 대신 나에게 맞는 삶을 찾는 것. 눈치 보며 살고 있음을 자주 자각하면서도, 오늘 하루만큼은 내 선택에 책임을 지겠다고 마음먹는 것.
어디에 살든, 어떤 일을 하든, 나이는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숫자는 자동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그 숫자 안에 무엇을 쌓을지는 매 순간 다시 선택해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백 년도 안 되는 인생을 소비하는 대신, 그 시선을 조금씩 흘려보내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줄세우기와 급 나누기에서 한 발짝씩 멀어지는 삶. 서툴지만 그런 방향으로 걸어갈 때, 비로소 내 인생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무대가 아니라, 내가 살아내는 시간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또다시 나이로, 직장으로, 도시 이름으로 나를 재단하려 들 때, 조금은 담담하게 이렇게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건 당신의 프레임이고, 나의 인생은 그보다 조금 더 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