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선택권을 되찾는 연습
요즘 고민 상담류 콘텐츠가 이렇게까지 꾸준히 잘 된다는 건, 우리가 얼마나 끝없이 불안해하면서도 스스로 결정 내리는 걸 두려워하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이직을 할까요, 결혼을 해야 할까요, 유학을 가야 할까요, 아이를 낳을까요, 어떤 직업이 저한테 맞을까요. 고민의 결이 너무나 개인차가 큰데,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비슷한 방식으로 묻는다. 이력이나 배경 설명도 없이, 마치 객관식 문제의 정답을 고르듯이 다들 자신의 불안을 들고 줄을 선다.
물론 묻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 확인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다만 요즘 풍경을 보고 있으면, 정답을 타인에게 외주 주는 문화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 안에서 씨름해야 할 질문들까지 전부 상담 콘텐츠에 올려 두고, 댓글과 DM, 영상 속 멘트들을 보며 안심하려 한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하세요”라는 말을 듣고 겨우 결정을 내리고, 또 다른 사람은 “그러지 마세요”라는 말을 듣고 다시 뒤로 물러선다. 정작 중요한 건, 그 선택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인데, 그 부분은 자꾸 비어 있는 채로 남는다.
이런 풍경 뒤에는 선택의 책임을 지기 두려운 마음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줄을 세우는 세상에 오래 있다 보면, 나도 내 선택을 스스로 신뢰하기 어렵다. 틀리면 어쩌나, 뒤처지면 어쩌나, 남들 기준에서 이상한 사람이 되면 어쩌나. 그러니 내가 결정한 길보다 남이 내려준 정답이 더 안전해 보인다. 틀려도 나만의 책임이 아니라고 느낄 수 있으니까
사실 진짜로 필요한 건, 훨씬 깊이 들어가는 상담일 것이다. 깊이 있게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들어 보고, 그 사람의 성향과 두려움과 욕망을 함께 짚어 가면서 건네는 조언이라면 분명 가치가 있다. 그 사람에게 맞는 답을 함께 찾아가는 시간. 하지만 그건 질문하는 사람과 답하는 사람에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한다. 때론 감정 노동도 뒤따른다. 그래서 결국 현실에서는 짧고 자극적인 한 줄 해결책이 반복 재생되고, 점점 더 표준 답안을 닮아간다. 질문도, 대답도.
하지만 결국 그 길을 살아내는 건 나다. 멀쩡한 어른이 되어서는, 자기 인생을 사는 동시에 자기 인생을 남에게 계속 위탁하는 셈이다. 이러다 보면 줄세우기와 상담 중독이 한 몸처럼 돌아간다. 세상이 정해 준 틀에 맞추어 살려다 보니 늘 불안하고, 그 불안을 견디지 못해 또 정답을 찾아 나선다. 그러다 보면 정작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미세한 감각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견딜 수 있는 것과 도저히 못 견디는 것에 대해 귀 기울일 기회가 줄어든다.
그래서일까, 남에게 조언을 구하고 남에게 조언을 해가는 이 구조 안에서, 정작 단단해져야 할 건 빠져나가는 것 같다. 내 판단을 믿고 스스로 결정한 일에 책임을 져보는 경험. “틀릴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나는 이렇게 해보겠다”라고 말하는 연습. 이게 없으면, 줄세우기 사회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 줄을 세우는 사람만 바뀔 뿐, 나는 여전히 줄 안에 서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줄세우기를 거부하는 삶, 남의 시선을 덜 신경 쓰고 나에게 맞는 삶을 찾는 일은, 결국 한 가지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내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에 대해, 마지막 결정권을 내 쪽으로 다시 가져오는 일. 조언을 듣더라도, 그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지는 결국 나라는 감각을 놓치지 않는 것. 정답을 잘 찾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는 것. 그 과정이 서툴고 느려도, 남의 확신을 빌려와 사는 것보다는 조금 더 나에게 가까운 삶일 거다. 남들이 나를 어디에 줄 세우든, 나는 적어도 내 안에서만큼은 줄을 좀 덜 세우고 살 수 있기를. 그게 아마 진짜 원했던 어른의 모습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래서 계속 고민만 하고 있는 사람들, 결정 앞에서 몸이 굳어 버리는 사람들에게 굳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거다. 조언을 구하는 것 자체는 괜찮지만, 언젠가는 그 모든 조각들 위에 내 결정을 얹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 남들의 말은 재료일 뿐이고, 책임은 결국 내 몫이라는 것. 남이 내 삶을 줄 세우는 것도 괴롭지만, 더 괴로운 건 평생 동안 내 선택을 남에게 아웃소싱하는 삶이다.
정답을 정해 달라고 애걸하는 태도에서 조금씩 나와 보는 것. 불안해도, 모른다고 말해도, 가끔은 틀려 가면서도, 내 발로 한 번 걸어 본 선택들을 늘려 가 보는 것. 그 과정이 서툴고 오래 걸리더라도, 거기서 비로소 나만의 삶이 조금씩 모양을 잡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기 좋은 인생 말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인생. 남이 내려준 정답 말고,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답. 다르게 말하면 어쩌면 진짜로 배워야 하는 건 덜 불안한 선택자가 되는 법일지도 모르겠다.